진실은 하나고 거짓은 여러 개다. 거짓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진실이 드러나는 건 쉽지 않다. 역사에서 이런 일은 한두번 반복된 게 아니다. 1945년, 종전을 앞뒀던 미 해군의 인디애나폴리스함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십년 후 어린 소년에 의해 진실이 드러났지만 거짓 희생양이 됐던 군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우리라고 이런 일이 없을까. 1945년 6월 미군은 처절한 전투 끝에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은 항복을 거부하고 결전을 부르짖었다. 연합군 수뇌부는 고뇌에 빠졌다. 일본을 점령하려면 7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는
제2의 냉전은 다시 시작했는가. 러시아는 중국ㆍ북한의 손을 잡고 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침공 위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ㆍ미ㆍ일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이 과거사 문제에서 한발짝 물러나도 일본은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일본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지금 동북아에는 신냉전이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중국, 북한과 동맹을 강화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 아래 대만의 독립을 부정
# 1990년대 체첸과 러시아는 전쟁과 테러를 반복했다. 러시아 탐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이때 민간인까지 학살한 푸틴의 만행을 고발했다. 폴릿콥스카야는 2006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2024년.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아직도 대통령은 푸틴이다. 러시아는 22년 전 걷던 길을 아직까지 맴돌고 있다.1991년 냉전이 종식되고 소비에트연방의 공화국들은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다. 연방의 맹주였던 러시아는 냉전 후 소비에트연방을 유지할 힘을 상실했다. 그나마 옛 소련의 국토와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은 푸틴이 권력을 장악한 러시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도덕적인 러시아는 가능한가?” 솔제니친은 ‘제국’의 환상에 빠진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한 국가들을 힘으로 지배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질 비극을 예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1918~2008년)은 1918년 12월 11일 러시아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는 솔제니친이 태어나기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는 올해 초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황은 냉전시대만큼이나 위태롭다.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과 장강명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흡수통일을 가정하며 우리가 전쟁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이듬해 독일이 통일에 성공했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했다. 서독의 헬무트 콜(1930~2017년) 총리는 붕괴 직전인 소비에트연방의 혼란을 놓치지 않고 고
전쟁은 누군가 ‘미사일 스위치’를 눌러야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벌과 풀이 사라지는 시대. 꽃이 피지 않고 과일이 열리지 않고 곡식이 영글지 않는 시대. 그리고 그 모든 멸종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불안해진 식량 수급에 그간 쌓아왔던 민주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사라지고 인간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스스로 불러온 전쟁이다.코로나19가 휩쓴 시대에 ‘인류의 절멸’을 다룬 두편의 소설을 다시 펼친다. 이 소설들은 인간이 멸망하기 전에 앞서 사라지는 것들을 응시한다. 노르웨이 작가 마야 룬데(1975년~)의 디스토피아 소설 「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자의 딜레마와 후유증을 그린 소설이다. 1947년 미국 남부 출신 청년 스팅고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한다. 스팅고는
# 정치적 선동은 쉽다. 그게 거짓이라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면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반박에 설득력이 있어도 선동을 부추긴 쪽은 불리하지 않다. 반박과 재반박이 거듭할수록 ‘거짓 이미지’만 남기 때문이다.# 이런 선동은 나치 선전장관인 요제프 괴벨스가 주로 썼던 전략이다. 그런데 적대적 사고와 언어가 판치는 대한민국 총선 정국에서 여야 정치권이 ‘괴벨스의 선동 전략’을 꺼내 들고 있다.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독일 라인란트 출신의 한 청년은 애국심에 불타 군대에 자원했지만 참전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골수염을 앓아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가 최초로 사용한 단어인 ‘로봇’과 인간 같은 곤충들, 인간에 의해 강제로 대량 증식된 도롱뇽, 전염병을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는 독재자는 세계대전 당시의 세계와 지금 우리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년)’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다. 자원을 낭비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는 인간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디스토피아 영화의 고전이
1945년, 1만명의 독일인이 소련의 잠수함 공격으로 나치 간부의 이름을 딴 구스틀로프호號에서 사망한다. 「양철북」으로 나치즘을 비판했던 작가 귄터 그라스는 구스틀로프호 사건을 바탕으로 「게걸음으로」를 썼다. 그가 ‘네오나치’를 옹호했다는 주장이 일면서 독일 사회에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합의점을 찾아갔다. 골목에서 벌어진 참사를 두고도 ‘합의점’을 못 찾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1945년 1월 소련군 공세에 밀린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소련군은 점령 지역에서 가혹한 보복행위를 일삼았다. 겁에 질린 독일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웃음이다. 권력자들은 웃음거리로 전락할 바에는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광기’에 휩싸인 그에게 스크린 안에서 독재자를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찰리 채플린은 ‘공포’였다. 속 시원한 ‘풍자’마저 어려워진 우리나라에서 권력자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희극배우 찰리 채플린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채플린은 1889년 4월 16일에 태어났고 히틀러는 나흘 후에 태어났다. 두 사람은 비슷한 콧수염을 길렀고 예술가를 꿈꿨다.
1950년대부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세계를 두 동강 냈다. 내 편이 아니면 다른 편이며 적을 끝장내기 전에는 나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인류에게 남은 건 절멸밖에 없어 보였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네빌 슈트의 「해변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증오하는 상대를 박멸하려는 이들로 넘쳐나는 우리네 정치꾼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1952년 11월 1일, 미국은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을 태평양 에니위탁 환초에서 시행했다. 2년 후인 1954년 3월 1일엔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 ‘캐슬 브
과거를 따져 묻지 않은 채 미래를 지향할 수 있을까. ‘그땐 몰랐다’는 말이면 그게 뭐든 면죄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과거를 따지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말은 가해자들이 즐겨 구사하는 언어다. 자국이든 타국이든 과거를 ‘묻어놓고’ 미래를 보자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독일의 법대 교수이자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1995년)」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파격적인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1958년 서독 노이슈타트. 비 오는 어느 날
이언 매큐언이 2012년 발간한 「스위트 투스」는 1960년대 CIA가 은밀하게 추진한 ‘문화전쟁’을 풍자한 소설이다.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하는 CIA 직원 세리나 프룸과 그가 포섭해야 하는 신인작가 톰 헤일리의 사랑을 통해 CIA의 문화전쟁을 풍자한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나라의 ‘끝나지 않는’ 문화전쟁이 오버랩된다.영국 역사학자 프랜시스 스토너 샌더스는 자신의 저서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그린비ㆍ2016년)」에서 냉전 시기에 문화와 지식인을 둘러싸고 전개된 ‘소리 없는 전쟁’을 폭로했다. 미 중앙정보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것을 잊는다. 기억은 불안정하고 우리는 이 불안한 기억을 취사 선택한다. 하지만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응시하는 자만이 용서를 바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생체실험을 진행한 규슈대학 의학부가 2015년 그 자료를 전시하기로 결정한 건 함의가 크다.1945년 6월, 미군의 B-29 폭격기 한대가 일본 규슈(九州) 상공에서 격추돼 승무원 12명이 포로로 잡혔다. 미군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일본 군부는 재판도 없이 미군 8명의 처형
# 2023년 3월 눈을 감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일본인으로선 두번째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를 불편하게 여겼다. ‘제국 일본’의 잘못을 끈질기게 직시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작가 오에는 역사를 숨기지 않고 바라보는 용기를 가져야 희망을 품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보수든 진보든 집권만 하면 역사를 바꾸려 하는 우리네 권력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2023년 연말, 한 작가를 다시 기억한다. 지난 3월 3일,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사망했다. 오에는 가와바타
언젠가부터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구조가 자연스러워졌다. 이긴 자들은 그 승리를 공정ㆍ합리ㆍ효율이란 이름으로 포장했다. 어쩌면 이 포장술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펼쳐졌던 우생학적 논리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이런 사회는 괜찮은 걸까. 새 기획물 ‘전쟁과 문학’ 첫번째 편 ‘나치의 혈통관리로 본 우생학의 위험성’을 펼쳐보자.19세기 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 저변에는 특정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유럽 제국은 이 사고를 ‘과학’으로 포장했다.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세계는 다시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가자 지구에서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9ㆍ19 군사 협정이 파기됐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믿음을 파괴한다. 무수한 전쟁을 겪었던 인류의 역사가 그 증거다. 그래서 전쟁을 논할 때면 자연스럽게 과거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전쟁과 문학’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었던 가장 예민한 사람(작가)들과 그들의 기록을 응시한다. 작가들은 전쟁이라는 비극에 맞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잠깐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늘 그렇듯 맑은 날에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비 오는 날은 길다. 이런 날에는 시원한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여름을 맞아 찾아온 문예지들을 둘러본다면, 후덥지근한 여름의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인문잡지 《한편》 : 제 8호 ‘콘텐츠’콘텐츠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웹툰이나 드라마를 떠올릴 수도, 어떤 사람들은 미디어라는 단어와 헷갈릴지도 모른다. 사실 학계에서도 과거에는 콘텐츠와 미디어를 엄격하게 구분했지만, 스마트-멀티미디어
“기사에 나온 투자 레버리지 사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투자금 명목으로 ○○스탁에 입금한 돈 600만원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기사에 나온 수법이랑 똑같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월 19일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장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이정현(가명·44)이라고 밝힌 피해자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11월 18일 보도한 ‘투자금의 10배 빌려드립니다, 레버리지 사기의 교활한 실체’를 읽은 뒤 자신이 레버리지 사기의 덫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다행히 이씨는 ‘지급정지 신청’ 제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