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문 작가가 지난 16일 죽었다. 자살로 알려졌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작가다. 1992년에 발간된 이 소설은 ‘후일담 문학’으로 분류된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뤄진 1990년대에 자신이 관통해온 운동권 세대의 방황을 그렸던 작가였다.그래서 나에게 박일문 작가의 죽음은 한 세대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글이 발표되고 10여년 뒤 그는 성범죄로 교도소에 갔다. 그가 운동권 성폭력 실명공개의 대표 사례로 뽑혔음을 생각했을 때 그의 삶은 어떤 면에서 ‘클리셰(clich·진부한 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주
1997년 재기발랄한 형제감독 조엘 코언(Joel Coen)과 이단 코언(Ethan Coen)이 각본을 쓰고 감독해 제작한 ‘파고(Fargo)’는 범죄물이지만 재기발랄한 감독들이 즐겨하듯 범죄물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 현실의 허무맹랑함과 어이없음을 마음껏 조롱한다.영화의 시작에 앞서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안내문’이 화면 가득 뜬다. “이 이야기는 실화(true story)다. 영화에 그려진 사건들은 실제로 1987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 “세계에서 네번째로 산업이 크고, 수출도 많이 하는데 억울하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중독 물질로 몰리고, 각종 사회적 문제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정치권은 사사건건 이 산업에 메스를 대려고 한다.”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여론이 불거질 때마다 업계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 하지만 게임을 향한 부정적 인식은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약탈적인 수익 모델 개발에만 치중해온 게임사의 탐욕도 여기에 한몫했다. 더스쿠프가 두 얼굴의 게임을 취재했다. ‘視리즈 게임 갑론을박’ 두번째 이야기다. “아시안게임 출전 종목 메달 획득” “한국 콘텐
코모두스 황제와 노예검투사 막시무스는 AD 180년 어느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 한복판에 서서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결국 두 사람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어쩌다가’ 두 사람이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맞서고 그렇게 죽게 됐을까. 누구 탓일까.대중예술에서 극작가와 감독의 시선은 주인공 편향적이고 선악善惡 대결구도에 맞춰져야 한다. 영웅은 절대선이어야 하고, 빌런은 절대악이어야 한다. 막시무스는 강직하고 사심 없고 당당하다. 반면 코모두스는 무능하고 욕심 많고 사악하기 짝이 없다. 막시무스뿐만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1. 일제 협력에 대한 변명의 논리해방 후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학병수첩'(, 1946)에는 “조선의 해방은 미국이 준 바도 아니요, 중국이 준 바도 아니요, 또는 소련이 준 바도 아니요, 하늘의 선물이다.”1)라는 해방에 대한 서술자의 평이 달려있다. 당시 전쟁의 흐름이나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관계 등을 전혀 고려치 않고, 혹은 무시해버린 채 해방의 공을 ‘하늘의 덕’으로 돌려버리는 진술은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희생과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최근 ‘공공배달앱’이 배민·요기요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광고료·수수료가 ‘0원’이라서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주목함은 물론, 각 지자체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자영업자들 역시 ‘빨리 전국 지자체에 도입하길 바란다’며 반긴다. 하지만 공공배달앱이 막강한 마케팅 능력과 자본을 가진 민간 배달앱과 맞붙으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공공 배달앱의 명암을 취재했다. [※ 이 기사는 4월 6일 발간된 시사경제지 더스쿠프에 실린 콘텐트입니다.]배달앱 ‘배달의민족(배민)’은 지난 1일부터 새로운 수수료 정책
‘조커(joker)’는 ‘정의의 사도’ 배트맨의 대척점에 선 최악의 악당이다. 배트맨 시리즈는 썩 단순명쾌한 ‘선악 구도’로 짜여있다. 당연히 요한복음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 실현된다. 어두운 하늘에 배트맨이 아침 해처럼 떠올라 조커가 드리운 무거운 어둠을 걷어낸다. 하지만 조커는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악당 조커는 어찌 보면 영웅 배트맨의 존재 이유다. 조커가 없다면 배트맨은 할 일이 딱히 없다. 조커의 난동과 포악성이 극에 달할수록 배트맨의 활약이 절실하고 그만큼 눈부시다. 회색과 대비된 흰색보다는 완전한
문학의 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각종 볼거리에 밀려나 설자리를 잃던 와중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문화계의 패러다임마저 뒤바꿔버렸다.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나마 남아 있던 공간마저 스마트폰 화면이 차지해버렸으니 문학, 특히 소설이 파고들 틈새란 비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소설의 위기’에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글의 소재를 ‘현장’이 아닌 ‘카페’에 앉아 머리로만 찾으려 했다는 비판이다. 현대 소설에선 서사가 갈수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질리지 않는 레퍼토리다. 부자는 악이고 가난한 자는 선인 명확한 선악 구도가 설정된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에서 이같은 방식으로 계급의 대립과 갈등을 그려냈다. 그러나 ‘기생충’은 빈부나 계급의 문제를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많이 벗어난다. 많은 작품 속에서 대개 부자들은 속물 근성에 찌들어 있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이중성을 보이며, 누리고 있는 부와 지위에 비하여 터무니없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부족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놈’들이다. 반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극단 ‘즐거운사람들’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이탈리아 아동극 전문극단 ‘라 소시에타 델라 시베타’를 초청하여 그들의 작품 “또르륵...똑.똑. 물방울들”을 노원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선보인다고 밝혔다. 25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26일 오후 2시와 7시, 27일 오전 11시로 총 다섯 차례 공연이다.극단 ‘즐거운사람들’은 2018 양주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로 매년 한 팀이나 두 팀의 해외 극단을 초청하여, 일반 대중이 국내에서 경험하지 못한 장르의 극을 소개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이인화(본명 류철균) 소설가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이인화 소설가는 최순실 씨와 공모해 정유라 씨에게 부당한 학점을 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30일 이인화 소설가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이인화 소설가는 최순실 씨 등과 공모해 정유라 씨에게 부정하게 학점을 줘 학적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정유라 씨의 기말시험 답안을 허위로 작성하게 한 후 교육부 담당자에게 제출해 공무원의 직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엘리엇이 결국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염두에 두고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더스쿠프(The SCOOP)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꾸준히 엘리엇의 ISD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전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소송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왜 일까. 헤지펀드 엘리엇이 4월 13일 한국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하기에 앞서 협상을 통해 해결할 생각이 있는지
“오래전에 청산됐어야 할 문제들이 아직 유령처럼 떠돌면서 우리의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잡아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걸 해결하려면 과거에서 탈출해야 한다. ”[뉴스페이퍼 = 이민우 기자]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군함도' 언론시사회가 열린 가운데 류승완 감독이 한 이야기다. 이번 시사회에는 류승완 감독을 비롯해 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등이 참석했다.영화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의 이야기를
영화 ‘곡성’은 일견一見 악령(선善)과 퇴마사(선善)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설정한 듯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흥미롭게도 과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분명하게 그리지도 않고 결론을 내려주지도 않는다. 선악 구도와 권선징악의 스토리 라인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보기에 따라서는 무척 무책임하고 불친절하다. ‘곡성’은 괴작怪作의 혐의를 뒤집어쓸 위험도 있다. 혹
할리우드의 모든 좀비영화가 그렇듯 영화 ‘부산행’의 구도 역시 단순명쾌하다. 좀비와 비非좀비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다. 세상에는 좀비와 비좀비라는 단 하나의 구분만이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빛의 자식들과 어둠의 자식들(The Children of Light and the Children of D arkness) 단 두 부류만 있다”는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의 발목을 잡았다. 12년 전 소버린이 SK그룹을 흔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반응은 다르다. 이전엔 모두 SK의 손을 들어줬던 반면 이번엔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많다. 엘리엇의 논리에 타당성이 있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외국계 헤지펀드는 ‘악惡의 화신’으로 통했
호르헤 신부는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원작소설에서 고뇌 끝에 얻은 믿음과 신념에 투철한 지성인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용모부터 악마에 가깝다.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마귀처럼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불길한 모습이다. 난데없이 눈의 흰자위만 드러낼 때도 있다.그를 추종하는 도서관 사서 역시 칙칙하고 음침하기 짝이 없다. 둘 다 한마디로
권력자와 정치인은 증오의 대상을 원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악령처럼 굴며 국민들에게도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공포를 주입하려 골몰한다. 이를 테면 개혁 세력은 보수 세력이 담당해왔던 우리의 현대사가 치욕과 오류 그리고 죄악으로만 이어졌다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보수 세력에 대한 증오를 확산시키는 데 힘쓴다. 객관적으로 우리 현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본성의 선악 문제는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동양에서는 맹자와 순자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로 충돌했고 서양에서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대립한 이래 끊임없이 지속됐다.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악의 대립은 현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는 현대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악마’다. 그러나 유태인 700만명을 가스실로 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