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한 책방에서 김유림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을 만났다. 책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에서 꺼내든 시집은 23~33쪽에 접혔다 펴진 구김이 남아 있었다. 책끝에서 책등 쪽으로 접혔다 펴진 것으로 보아 제조 과정에서 구겨진 것이었다. 새 책은 어떠한 구김도 없어야 상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조각칼로 그은 것처럼 구김이 졌다는 건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뜻이다. 시집의 구김은 23쪽 ‘나의 마음’에서 시작해 33쪽 ‘너의 의미’로 끝났다. 김유림의 시는 다솜했다. 꾸밈도 없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새것 같지 않은 시집의 구김과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브랜드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서울 신사동)과 명동. 한국을 대표하는 두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성장했지만, 그 때문에 팬데믹 국면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사라진 지금, 두 상권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명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는 반면, 가로수길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서울 상권을 140개로 나눠보자. 이중 가장 매출이 잘 나오는 상권은 어딜까. 많은 이들이 명동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월
고물가 국면에선 가벼워진 지갑으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든다. 5000원에 김밥 두줄을 사먹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 자장면은 7000원을 넘었고, 비빔밥은 1만원으로도 사먹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넘겨야 하는 라면뿐이다.라면 열풍이다. 각종 라면 먹방과 라면 조리법 영상이 국경을 넘나들며 유튜브와 SNS에 넘쳐난다. 그 덕에 라면 판매액은 2021년 1조8268억원에서 2022년 2조2737원으로 증가했고, 라면 수출 실적도 훌쩍 뛰어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여태까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정부의 대규모 주택 개발이나 민간의 도시정비사업에 기대왔다. 이때 생기는 거대한 공동주택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쇼핑몰을 불러왔다. 네오밸류는 이런 기회를 잡아 대형상가 ‘앨리웨이’ 브랜드를 운영해온 디벨로퍼다. 하지만 상가 공실이 늘면서 네오밸류 역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이들이 발굴한 전략적 대안은 복합문화공간이다.도시를 건설하는 게임을 해본다고 가정하자. 빈 땅이 있다면 게임 유저들은 무엇부터 만들까. 대부분은 공동주택일 거다. 그다음으로는 대형상가를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새 주택이 들어선 자리
#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책이 실패하자,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플랜B’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파티 명소로 떠오른 양양이 이를 입증한 사례다. # 흥미로운 건 ‘관광’을 유도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로컬 스타트업도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 숙소 중개 플랫폼 미스터멘션이 대표적이다. 로컬 혁신 전문가 이준호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부회장과 함께 ‘로컬 르네상스’를 꿈꾸는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시간, ‘이준호의 로+네상스’ 2편이다.소멸 위기에 놓인 여러 지자체의 부러움
어묵 한 개 2000원, 탕후루 5000원, 랍스터구이 2만원…. 명동에서 팔고 있는 길거리 음식 가격이다. 바가지요금 논란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한차례 가격을 내렸다지만, 여전히 혀를 내두를 만큼 비싸다. 몇년 동안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발걸음이 뚝 끊겼던 탓에 ‘이참에 본전 뽑자’는 심리가 꿈틀대는 걸까. “6년 5개월의 기다림 끝에 유커가 돌아왔다.” “한중 수교 31주년 기념 ‘유커 맞이’ 총력.” 최근 면세ㆍ관광업계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유커맞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8월 11일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 비
네이버 라인프렌즈가 연예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2017년 BTS와 협업한 데 이어 최근엔 뉴진스와 컬래버한 팝업스토어와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국내 인지도를 쌓겠다는 게 라인프렌즈의 전략이다. 성공할까.네이버의 캐릭터 브랜드 ‘라인프렌즈’가 인기 아이돌그룹 ‘뉴진스’와 손을 잡았다. 지난 11일 오프라인 판매점 ‘라인프렌즈 스토어’ 강남점·홍대점에서 관련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뉴진스의 인기 덕분인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오픈 전부터 입장객들이 몇 블록에 걸쳐 장사진을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몇년 전만 해도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 거리에 이국적인 갤러리나 스튜디오가 많았다. 최근엔 성수동, 한남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전에 ‘아트총각’이란 기획을 통해 소개한 갤러리 중에도 성수동이나 한남동에 둥지를 튼 곳들이 적지 않다. 이 지역의 문화 트렌드가 어느 정도 개성을 찾은 것 같다. 최근 기업체들도 성수동이나 한남동의 전시공간에서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컬렉터들과 미술애호가들도 이곳을 찾는다. 이번에 소개하는 히피한남갤러리도 젊은 갤러리 그룹에 속할 듯하다. 특히 이 갤러리가 지난 5월
서울 마포구와 출판업계의 갈등이 마포출판문화진센터(이하 플랫폼P) 운영 논란으로 인해 확산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마포구청이 플랫폼P의 운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멈추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마포구는 대응하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일부 출판인들의 과장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마포구는 홍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가에서 인쇄 및 출판 문화가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로의 이주가 빈번하긴 하지만, 마포구는 여전히 문학과지성사, 다산북스, 해냄출판사 등 유수의 출판사들과 1인 출판사, 동네서점이 밀집해 있는 출판문화산업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네마프2023)이 오는 8월 10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행사에서는 50여개국에서 1,053편의 작품이 공모에 참여했으며, 그 중 46편이 본선작으로 선정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네마프2023는 대안영화, 실험영상,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선보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영화제로서, 올해도 풍부한 예술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본선에 선정된 46편 중에서 한국 부문에는 '고고한 저 사랑' 등 15편, 글로컬 부문에는 핀란드 영화 'T
영등포구 문래동의 1279개 공장이 한번에 이전할 땅을 찾고 있다.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임대료가 올랐고 재개발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공장을 운영하는 소공인들은 소공인들이 떠나야만 했던 청계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미 알고 있다. 어차피 나가야 할 수밖에 없다면 한번에 다 같이 움직여서 최대한 경쟁력을 유지하자는 게 서울소공인협회의 목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목표다. 더스쿠프가 문래동을 떠나야 할 운명과 마주한 소공인들을 만나봤다. 서울에 남은 가장 큰 공업단지는 문래동(문래동1~6가)이다. 물론 영원할 순
맥도날드, 버거킹, 맘스터치…. 내로라하는 햄버거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왔다. 어떤 브랜드는 한국 사업에서 손을 떼려는 미국 본사 때문에, 어떤 브랜드는 ‘엑시트’를 원하는 사모펀드 때문에 시장에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런 햄버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기업도 숱하다. 누군가는 나가려 하고, 누군가는 들어오려는 햄버거 시장의 민낯을 취재했다. 누군가는 발을 빼려 하고 누군가는 발을 내디디려는 곳, 햄버거 시장이다. ‘맥도날드(한국맥도날드)’ ‘버거킹(비케이알)’ ‘맘스터치(맘스터치앤컴퍼니)’ 등 대표 햄버거 브랜드들이 줄줄이 매물로 나
# “독보적인 플랫폼.” 무신사를 둘러싼 시장의 평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마니아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무신사는 그만큼 대체하기 쉽지 않은 플랫폼이 됐다. 여느 이커머스 플랫폼과 달리 흑자를 달성하고 있는 것도 무신사의 강점이다. # 이 때문인지 IPO 시장에서도 무신사는 ‘기대주’로 꼽힌다. 하지만 무신사에 장밋빛 전망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높은 입점 업체 수수료 논란, 적자 누적 중인 자회사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무신사’는 MZ세대를 사로잡은 대표적 패션 플랫폼으로 꼽힌다. ‘신발이 무진장 많은 곳’이라는 온
차 없던 거리에 다시 차가 다닌다. 상권을 살리겠다는 구청장의 공약이 한몫했고, 상인들의 실낱같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차가 다닌다고 상권이 살아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직진하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고, 차들은 바퀴를 바쁘게 굴렸다. 다시 차가 달리는 그곳, 신촌 연세로를 더스쿠프(The SCOOP)가 가봤다.연세로는 신촌오거리에서 연세대까지 뻗어있는 약 550m 길이의 도로다.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이곳에선 시내버스, 구급차, 자전거 등만 통행할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10시
# 나이키와 쌍벽을 이루는 ‘아디다스(아디다스코리아)’는 한때 매출액 1조원대를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 덕분이었다.# 그랬던 아디다스는 지난해 ‘온라인’을 강화하겠다면서 점주 100명 중 80여명과의 계약관계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내년까지 유예기간을 줬지만, 매장 확장과 리모델링에 거액을 투자하고,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점주들로선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 문제는 지금의 법 체계에선 아디다스 점주들이 법적 보호를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디다스코리아가 ‘아디다스 판매점은 가맹점이
택시 승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가격을 끌어올렸다. 좀 더 많은 택시 기사를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 중 ‘가격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공요금이 인상돼 허리가 휠 지경인데, 택시요금까지 올랐으니 그럴 법도 하다. 택시 승차난을 잡겠다면서 정부가 발표한 ‘공급전략’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2021년 겨울, 서울ㆍ인천ㆍ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택시 대란이 발생했다. 승객들이 몰리는 심야 시간(밤 10시~새벽 3시)에 택시가 없어서 못 타는 현상이 벌어진 거다. 택시호출앱을 이용해도 한시
10여년 전 선유도를 찾은 적 있다. 미술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정신없이 쌓아가던 필자가 그곳에 방문한 건 ‘한가로움’을 즐기려는 이유가 아니었다. 평소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성태훈 작가의 작업실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성 작가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필자는 선유도 공원에서 늦여름의 저녁을 즐겼다. 시원한 맥주를 음미하면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예술 이야기를 나눴다. 홍대 출신 젊은 작가들과 중견 작가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선유도는 필자의 가슴에 ‘순간’의 기억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선유도를 떠올리면
11월 9일 저녁 7시경. 8명의 남녀들이 이태원 경리단길의 어느 카페에 모였다. 이들은 두 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아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더러는 지나쳐가며 이러한 침묵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이들은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무릎 위의 노트북을 바라보며 열심히 타이핑을 할 뿐이다. 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팻말 하나가 놓여 있었다.「Shut up & Write」닥치고 글 쓰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쓰러 오세요!”“밋업(Meetup)”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곳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22 청춘마이크 페스티벌」(청마페)이, 지난 10월 15일, 16일 양일간 성황리에 마쳤다. 청마페는 문화기본법에 따라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지정된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전국의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재능을 선보일 무대를,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일상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또한 참가한 공연팀은 총 46개팀으로, 청년예술인뿐 아니라 실버예술인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이들은 공연을 위해 수 개월 전부터 전문가로 이루어진 멘토 팀과 함께 워
1999년 홍대서 개관한 대안공간 루프는 한국 미술계에 ‘대안공간’이라는 개념을 알렸다. 울산시립미술관 관장인 서진석 대표가 그 출발점을 제시했다. 당시만 해도 주류 미술계에선 전시하는 게 어려웠던 작가들의 작품(사진·디지털기술 등)을 중심으로 기획전을 진행했다. 이렇게 출발한 대안공간 루프는 1990년대 말 한국 예술계의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트스페이스휴의 김노암 감독, 네오룩의 최금수 평론가 등이 그 혁신의 시대를 대안공간 루프와 함께 보냈다. 흥미롭게도 그때는 IT혁명이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 혁신이 IT를 넘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