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기를 발명해 중세 유럽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지식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그의 발명은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성경과 지식을 독점하던 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는 제자로부터의 배신과 동업자의 소송에 따른 파탄, 노년에 찾아든 실명이란 엄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독점과 어둠이란 중세의 봉인을 해제한 것에 따른 천형天刑이었을까.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개발하기 전 유럽에선 수천권의 필사본만이 나돌았을 것이다. 그가 금속활자로 인쇄기를 발명한 시점에서 불과 50년이 흐
플린 신부는 새로 부임한 교구의 수녀원장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이유 없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적대적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수녀원장실로 찾아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에게 ‘아동 성추행’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가 씌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수녀원장실에서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우스 수녀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 논쟁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점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논쟁은 격렬한데 논쟁이 왠지 논리적이지 않아서다. ‘아동 성추행’ 혐의를 아무리 부인해도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플린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아들 코모두스라는 2명의 황제를 보여준다. 철학가 뺨치는 지혜를 뽐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치가(statesman)’라면,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전형적인 ‘정치인(politician)’이다. 그럼 정치가와 정치인의 차이는 뭘까.정치인은 정치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통로로 사용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즐긴다. 반면 정치가는 공동체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비전을 실현한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크기만
로마의 전쟁 영웅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계략에 빠져 처형당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가족이 있는 스페인 고향집까지 말을 몰아 달려간다. 지금으로 치면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스페인까지 말 타고 달려간 셈이니 대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고향집은 막시무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군인들에게 살해됐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코모두스는 선을 넘었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아내와 아들을 묻고 정처 없이
황제이자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한 코모두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막시무스는 황야에서 정신을 잃는다. 노예상인이 막시무스를 ‘주워’ 북아프리카 검투사 에이전시에 넘긴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에게 시골 검투경기 정도는 ‘껌’이다. 훈련이나 연습경기도 건너뛰고 곧바로 프로 데뷔한다.막시무스는 지금의 모로코나 알제리 어디쯤으로 보이는 사막의 장터에 흙으로 지어진 조악한 원형경기장에서 데뷔한다. 노예상인들이 주워오거나 사오거나 사냥해온 노예 검투사들이 서로를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죽이는 살육극을 기대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나는 지난 회에 ‘인류사는 문체투쟁사다’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시인은 왜 철학자를 고발하였나’를 풀어갈 것을 약속하먼서 이걸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철학사에서 하나의 패턴pattern으로 서로 부딪치고 차이와 반복을 드러내며 강물처럼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은 시와 소설이라는 문체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음을-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대변하는 철학자이고, 플라톤은 소설을 옹호하는 철학자로서-좀 장황하게 늘어놓으먼서 대서사로서의 서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먼서 나는 시리즈가 이어지기
인도 출신으로 드물게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오른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감독의 1999년작 ‘식스 센스’는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초자연·심리·스릴러 계열쯤 될 것 같다. ‘육감’이라는 문제 자체가 분석적·이성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초자연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일 듯하다. 이번엔 식스 센스 속으로 들어가보자. ‘식스 센스’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아 그해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샤말란 감독의 각본을 읽어본 월트 디즈니사의 사장이 회사의 검토 절차와 승인
문학의 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각종 볼거리에 밀려나 설자리를 잃던 와중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문화계의 패러다임마저 뒤바꿔버렸다.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나마 남아 있던 공간마저 스마트폰 화면이 차지해버렸으니 문학, 특히 소설이 파고들 틈새란 비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소설의 위기’에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글의 소재를 ‘현장’이 아닌 ‘카페’에 앉아 머리로만 찾으려 했다는 비판이다. 현대 소설에선 서사가 갈수록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는 작곡가(모차르트)뿐만 아니라 원작자도 걸출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시인 겸 극작가인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는 빈의 궁정시인을 지낼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진지하고 비극적인 내용·정가극)의 발전에 기여한 주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2막 = 비텔리아 공주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세스토는 티토왕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암살 계획을 실행한 후 숨어있던 세스토에게 안니오가 찾아와 티토왕이 살아있다고 알려준다. 친구를 죽이려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세스토는 안니오에게 자신의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1791년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막으로 이오페라의 배경은 로마제국 시대다. 오페라를 의뢰받는 모차르트는 4주 만에 작품을 완성해 초연까지 마치며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21번째이자 마지막 오페라라는데 의미가 있다. 모차르트가 작품이 초연된 지 3개월 후인 1791년 12월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막 = 비텔리아 공주는 티토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텔리우스 황
이탈리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는 리비아 민중항거가 20년 가까이 지속되자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무솔리니는 마침내 폭발한다. 무솔리니는 로돌포 그라치아니 장군을 리비아 총독으로 임명해 반군 섬멸의 특명을 내린다. 이탈리아 최정예 사단과 기갑부대가 리비아 사막으로 총집결해 무자비한 공세를 시작했다.그라치아니 장군이 이끄는 이탈리아군은 반군의 공급원이 되는 리비아의 모든 주거 지역에 들이닥친다. 반군과 양민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학살을 자행하고, 거주민들을 모두 끌어다 수용소에 가둔다. 양민들과 포로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고문과
영화 ‘사막의 라이언(Lion on Desert)’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문명적 충돌’을 아랍인의 시각에서 제작해 서구 극장에 올린 거의 유일한 영화다. 서구인들이 반길 리 없다. 항일투쟁기 영화를 만들어 일본에서 흥행몰이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고작 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1981년작 ‘사막의 라이언’은 분명 흥행면에서는 ‘폭망’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찌 보면 흥행 참패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던 것도 같고, 크게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듯도 싶다. ‘사막의 라이언’은
중국 드라마 ‘사마의:최후의 승자’를 보면 삼국지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삼국시대에 가장 출중한 지략가였던 촉의 제갈량은 위를 정벌하기 위해 기산에 여섯번이나 출격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실패한 전문경영인으로 생애를 마감했고, 그에 맞선 사마의는 성공한 창업경영인으로 역사에 남았다.촉의 제갈량은 위수渭水 한쪽에 진을 치고 사마의를 전투로 끌어내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쓴다. 하지만 사마의는 꼼짝도 않고 수비만 한다.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집 지키는 여인네와 무엇이 다르냐’면서 치마저고리를 선물로 주며
[뉴스페이퍼 = 송진아 기자] 은평구립도서관(관장 권영관)은 오는 3월 17일 오후 2시 시청각실에서 인문학 저서 "지중해 전쟁사" 김시열 저자를 초청해 저자강연회를 개최한다."지중해 전쟁사"는 지난 17년 12월 출간된 인문학 도서로, 미노스부터 로마제국 수립까지 1500년 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이번 강연에서는 "지중해 전쟁사"에 수록된 아테네 정치혁명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통찰력과 지혜를 소개하고 현대인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수강신청은 지역주민 누구나 가능
인간은 지구의 골칫덩어리인가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론을 주재하던 의장이 “우리는 홀로세(1만년 전~현재)를 살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자 한 참석자는 짜증이 난 듯 의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니요. 우리는 이미 인류세(인류가 환경을 변화시킨 새로운 지질시대)를 살고 있단 말입니다.”
‘배신’은 거의 모든 드라마에 존재하는 단골 코드다. 배신의 코드는 이야기 전개의 양념이나 변주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척추에 해당하기도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예외없이 배신자가 등장한다. 출연 분량은 조연에 그치지만 그의 배신이 던진 파문이 영화의 얼개를 구성한다. 모피어스(Morpheus)가 이끄는 저항조직의 핵심인물 사이퍼(Cyph
영화 ‘영웅’에서 감독 장예모는 작심한 듯 압도적인 비주얼을 여러 장면 선보인다. 왕궁이라면 아담하고 정겨운 왕궁 경복궁에 익숙한 우리에게 장예모 감독이 펼쳐 보이는 진왕(진시황제) 영정嬴政의 궁궐 규모와 모습은 거의 SF영화 CG처럼 비현실적이다. 장예모 감독은 아마도 전각의 넓이가 700m에 달했다는 진시황제의 전설적인 아방궁阿房宮을 화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비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처럼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렸을까. 필자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당나라 위징魏徵을 떠올린다. 지독한 직언으로 탐욕스러운 이세민을 시대의 성군으로 우뚝 세웠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위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관료들의 비정상적 행위가 점입가경이다. 막장 연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 광산에서 살아남은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가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얽힌 참상과 비리를 밝히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UN 주도로 설립된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 국제회의에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실상을 고발할 수 있었던 데는 결정적인 변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코트지(아놀드 보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