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협상의 장이다. 여야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나랏일을 처리하는 게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인은 똑똑해야 한다. 때론 전략적으로 거래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때론 비수를 꽂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여야는 둔해 보인다. 전략이 없으니 협치가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걸까.이순신이 차고 다니던 화살통은 그의 활솜씨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다. 용과 봉이 조각된 것으로 그에겐 보물과 다름없었다. 골동품을 좋아했던 당시 우의정 유전柳塡은 활터에서 우연히 순신의 활 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한산도해전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내보냈습니다. 한니발이 전진배치했던 경무장 보병과 같은 역할이었지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해적 출신의 수군 명장이었습니다. 다섯척의 판옥선이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 이를테면 유인책일 가능성도 생각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와키자카는 자신 있게 주력부대를 모두 이끌고 쫓아왔습니다. 이순신이 유인작전을 썼다 해도 충분히 조선 수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겁니다. 그의 함대도 작은 규모가 아니었으니까요.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추격하던 일본 함대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어느새 조선 함대에
일본군이 임진강에서 도망을 치는 척하자 조선 군사들이 임진강을 넘어 달려들었다. 덫이었다. 조선 군사들이 임진강을 넘자 적의 복병이 사방에서 나타나 조총ㆍ화살ㆍ대도ㆍ장창을 풍우 치듯 쏟아냈다. 우리 군사들은 미처 손을 쓸 새 없이 적의 철환ㆍ시석ㆍ창검에 맞아 수천명이 죽었다. 한응인은 ‘지금 임진강을 넘어선 안 된다’는 강변군사의 말을 듣고 분기가 폭등했다
울지내는 뒤늦게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에 빠진 줄 깨달았다. 전세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제 부하 군사의 군복을 바꿔 입고 기어서라도 고개를 넘어 도망하려 하는데 문득 한사람 7척 장검을 비껴들고 준마를 빨리 몰아 앞을 막아 내닫는다. 이순신이었다. 조정이 이순신을 북방으로 보냈지만 사실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 무장은 별로 없었다. 적들이 들어오는 길목에 있고 소진이어서 군사도 수백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원해주는 사람이 없는 이순신에게 이 벼슬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순신은 도리어 장부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울 자리라
조방장 유극량도 이 강변군사의 말을 듣고 자기 의사와 부합하여 대장 신할을 보고 말하였다. “저 강변군사들의 말을 들으니 지당하오. 경하게 움직이는 것은 만전지계가 아닌 듯하오.” 거칠고 서투른 신할은 또한 대노하여 성공이 목전에 있는 듯이 선조가 준 상방검을 빼어 들고 유극량을 베려 하였다. 평안도 강변군사 중에 나이 늙은 사람 하나가 한응인의 앞에서 고
이순신공이 전시에 세운 공훈이 만고에 이름을 드리워 일월과 빛을 다투었으니 공은 우뚝 서서 홀로 가는 우주간의 바른 기운일지로다.이해 신사1581년 4월에 도로 임명되어 다시 훈련원 봉사가 되었다.1) 이는 그 무죄함을 조정에서 알고 군기경차관이 반좌율2) 에 저촉되어 파직된 것이다. 순신의 전통箭筒은 옛날 명인의 작품으로 용과 봉을 조각한 것인데 상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