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5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조용히 눈을 뜹니다. 배달시킨 커피 원두를 꺼냅니다. 가위로 모서리만 조금 자릅니다. 진한 원두 향이 잠을 깨웁니다. 그라인더 3인분 표시선까지 원두를 넣고 복도 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 문을 닫고 방석으로 그라인더를 덮고 커피를 갑니다. 덕분에 아무도 깨어나진 않았네요. 그렇게 만든 커피를 보온병에 담습니다. 물병도 챙기고, 작은 1인용 돗자리도 챙깁니다. 읽고 싶었던 책과 겉옷도 챙깁니다. 혼자 잠시 소풍을 다녀오려 합니다. # 사전투표를 마친 덕분에 하루 휴가가 생겼습니다. 점심엔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 있다. 홍대입구역 맥도날드, 신촌역 잠망경처럼…. 2002년 전에는 종로서적이 그랬다. 가장 긴 출판 역사를 품었던 서점은 이제 명맥이 끊겼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같은 이름의 서점들이 줄줄이 생겼지만, 그 무엇도 종로서적을 대신할 수 없다. 공유할 추억이 없어서다. 홍대에서 약속을 잡으면 으레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맥도날드 앞을 ‘만남의 장소’로 삼곤 했습니다. 이동통신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한 지금은 ‘만남의 장소’가 과거보다 덜 중요해졌지만 아직도 어
2014년 4월 16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날. 올해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됐습니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에서 기인한 사고라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치유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가 10년 간 풀어내지 못한 아픔을 기록한 책 6편을 치유와 소통을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4월이 되면 많은 이가 팽목항과 노란 리본을 떠올립니다. 2024년은 좀 더 특별한 해입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니까요.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성인으로 성장하고도 남
문예지는 이제 이전만큼의 독자가 없다. 그럼에도 문학계가 말하고 주목하는 이야기를 살펴보기에 문예지만한 플랫폼은 여전히 없다. 2024년 봄, 문학이 말하는 세계와 주목하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문예지도 찾아온다. 더이상 문예지를 보는 이들이 없는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문예지는 여전히 문학계의 플랫폼이자 생태계다. 그래서 문예지를 훑는 것만으로도 올해 문학계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려는지 알 수 있다. 2024년도 문예지들은 특히 사회문제를 인식하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더스쿠프 Lab.리터러시팀이 2024년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대거나 자신이 하는 일 등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좀 더 복잡한 의도가 숨어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당신의 존재 혹은 당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다면.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그레고리 번스는 저서 「‘나’라는 착각」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단수’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자신을 단지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겠지만, 실제 당신은 ‘하나’가 아니라며 “우리는 몸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중장년이라면 30여년 전 편의점이 처음 들어왔을 당시의 생경함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가장 친근하고 자주 이용하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편의점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소비 채널이었다. 그래선지 이렇게 가까워진 편의점이 문득, 새삼스럽다.웬만한 동네면 24시간 불빛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이 보인다. 진열대엔 종류별로 구분한 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응급의약품도 살 수 있고, 물건도 부치고, 공과금도 낼 수 있다. 어느덧 편의점은 잡화점 그 이상의 기능으로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신간 「어쩌다 편의점」은 식당, 카페, 빵집,
신좌섭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 3월 30일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후 의식을 찾지 못했다. 자기 자신도 준비하지 못했을 죽음. 향년 65세였다. 1978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한평생 의학교육인으로 살아갔다. 국내에서 해외까지 폭넓은 활동에 많은 후학이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훌륭한 의사였다는 말로 그를 오롯이 담긴 어렵다. 그는 시인이었다. 죽음에서 피어난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죽음이란 삶과 같았을지 모르겠다.신좌섭 시인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그의 아버지를 소환하곤 한다.
「전라도 사람 전봉준」김희정 지음 | 어린작가 펴냄「전라도 사람 전봉준」은 김희정 시인이 25년간의 구상 끝에 선보이는 역사적 인물, 전봉준 장군의 연작 시집이다. 동학농민운동의 핵심 인물인 전봉준 장군의 삶과 이념을 담아 그가 꿈꾼 세상을 향한 시인의 깊은 성찰을 담았다. 시집은 지역적 특성을 넘어,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역사의 교훈과 가치를 전달한다. 101편의 시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조망해 문학을 통해 역사와 대화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음악집」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음악집」은 이장욱
여자친구와 마포의 어느 공원을 들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볕이 드는 발코니에서 양다솔 작가의 「적당한 실례」를 읽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미세먼지 수치가 너무 낮았다. 비염이 심한 나는 먼지가 많은 날에는 야외활동이 어렵다. 봄날의 볕은 따뜻하고 미세먼지 수치는 낮았으니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우린 2인용 커플 자전거를 빌렸다. 내가 앞에, 여자친구가 뒤에 탔다. 살갗에 부딪히는 바람이며, 한강을 넘어가는 지하철의 규칙적인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빠르게 흘렀다. 오래간만
호랑이가 얼마나 똑똑한 동물인지 알고 있나요? 호랑이는 모든 동물 중에서 최고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호랑이의 뇌 속 신경세포 ‘뉴런’을 연결해주는 ‘시냅스’가 탄탄한 덕분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단기 기억력으로만 따졌을 때 인간보다 30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하네요. 대단하죠? 이윤주·조창원 눙눙이 친구들nungnunge8@gmail.comhttp://instagram.com/nungnungehttp://www.nungnunge.com글 =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lhk@thescoop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 반려동물은 ‘키우는 동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삶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때론 자녀와도 같은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반려동물에 쓰는 비용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이 과소비의 주범이 된다면 한번쯤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더스쿠프와 한국경제교육원㈜이 한 부부의 반려견 지출을 살폈다.그 많던 ‘욜로족(YOLO)’은 어디로 갔을까. 욜로는 ‘인생은 한번뿐이니 현재를 즐겨라(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욜로족이다. 필자의
12일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 시 166편이 공개됐다. 박목월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어머니가 모아놓은 원고를 가지고 있다가 공개한 작품이다. 박목월 시인이 작고한 건 1978년이니 46년 만에 빛을 본 시들이다.이번 미발표 원고에는 전쟁의 참상, 사회의 아픔 등 그간 보지 못했던 박목월의 시 세계가 있다. 시집이란 비석처럼 자신의 묘지 앞에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걸어가던 낭만주의 나그네 박목월은 이제 사라졌다.일체형 PC 하나를 중고로 판매하기 위해서 하드디스크를 정리했다.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구독자를 한달이라도 더 붙잡아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구독 해지 버튼을 살짝 감추거나 위약금을 부과하는 ‘거친 방법’이 있는가 하면, 사용자인터페이스(UI)와 문구를 활용해 은근슬쩍 값을 부풀리거나 결제를 연장하게 만드는 ‘다크 넛지(Dark nudge)’도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 이런 기업의 꼼수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현대인은 좋든 싫든 한번쯤 ‘구독’이란 서비스를 마주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구독 이용률이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30대의 OTT 구독 이용률은 85.
인류세라는 것이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류세의 지질은 인류의 흔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핵실험 이후의 방사능, 플라스틱, 닭뼈가 땅에 묻히면서 생겼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류가 생겨난 이래의 흔적이 땅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세다. 보통 인류세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나는 인류세를 생각할 때마다 거대하고 오래된 역사책의 측면을 떠올린다.누구에게나 지층이 있다. 그것은 경험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다. 레코드가 테이프가 되고 MP3 기기가 스마트폰이 됐듯
잉여의 시간이곳에서 나는 남아돈다너의 시간 속에 더 이상 내가 살지 않기에오후 네 시의 빛이무너진 집터에 한 살림 차리고 있듯빛이 남아돌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씨앗이 남아돌고여기저기 돋아나는 풀이 남아돈다벽 대신 벽이 있던 자리에천장 대신 천장이 있던 자리에바닥 대신 바닥이 있던 자리에지붕 대신 지붕이 있던 자리에알 수 없는 감정의 살림살이가 늘어간다잉여의 시간 속으로예고 없이 흘러드는 기억의 강물 또한 남아돈다기억으로도 한 채의 집을 이룰 수 있음을가뭇없이 물 위에 떠다니는 물새 둥지가 말해준다너무도 많은 내가 강물 위로 떠오르고두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년은 봄날 같았고, 지나고 나면 모두 지금보다 반짝반짝 빛났을 때였다. 금아琴兒 피천득은 이 시기를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라 했다. “유치원 시절,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박노해 시인은 인간에게 있어 평생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소년 소녀 시절’이라고 말한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이고, 저 광대한 세상을 걸어 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아
“저는 설운도와 빅뱅, 르세라핌을 좋아합니다!” 아이돌 지망생이 소속사 면접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라고 했을 때 이렇게 답변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아 알고 있는 가수 이름을 모두 댔거나 음악 취향이 오락가락하거나 아예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15살 아니면 16살쯤 됐을까. 날 찾아온 학생은 베이지톤의 스웨터를 말끔하게 입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서 왔어요.” 웅얼거리듯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난 20년 전 혜화동을 생각했다. 나도 저 나이쯤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자의 딜레마와 후유증을 그린 소설이다. 1947년 미국 남부 출신 청년 스팅고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한다. 스팅고는
쉽게 씌어진 시 부끄럽지 않아도 되지만 부끄럽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
# 어릴 때 전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유는 두개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는 것. 그때만 해도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시절이었죠. # 막 10살이 됐을 때로 기억됩니다. 등산을 가는 날인데 아빠는 가방에 코펠과 버너를 챙기지 않으셨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저에게 아빠는 “이젠 라면을 끓여먹을 수 없다는구나”라면서 기사 한토막을 읽어줬습니다. 전국의 국립공원들이 계곡이나 정상부 가리지 않는 취사 인파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중략)…이어 1990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