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드립커피’를 마신다. 맛도, 향도 아메리카노보다 깊은 것 같아 좋다. 한데 어쩔 땐 궁금하기도 하다. 난 언제부터 커피를 내려 마셨을까. # 커피를 처음 마신 건 고등학교 때였다. 공부 잘하는 친구가 커피를 마신다는 말을 듣고 ‘자판기커피’에 입문했다. 내 성적이 오르는 기적 따윈 벌어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때 커피란 녀석이 내 삶에 들어온 것 같다. # 지금이야 드립커피를 즐기지만 학창 시절 땐 ‘자판기커피’가 최고였다. 동전 몇개만 넣으면 툭 떨어지는 그 커피는 달달하면서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 그런 커피
창신동 마을 속 한옥 해체공사 현장, 벽에 박제된 듯 박혀있는 ‘커피자판기’를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자판기 커피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자판기와 그 주변을 살펴본다. 길걷수다, 길에서 만난 커피자판기 첫번째 편이다.길에서 만난 커피자판기. 자판기 하나 들어갈 벽과 벽 사이에 기가 막히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옆의 문과 대칭돼 하나의 세트인 양 자연스럽다. 한옥의 돌벽, 붉은 벽돌, 목재와 배수홈통, 시멘트 바닥과 자판기까지…. 재료와 크기,
우리는 언제부터 한옥을 한옥이라 불렀을까.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모든 집은 기와집, 초가집 등등이었을 텐데 말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1907년 대한제국 시절의 한 문헌에서 한옥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건 1975년의 일이다. 한옥이란 말을 사용한 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그런 한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숱한 지자체가 한옥체험관을 만들었거나 조성하고 있는 걸 보니, 언젠가 한옥이 없어질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얼마 전 난 그런 한옥 한채를 철거하고 왔다. 묘한 감정이 스쳤다. ■일
스마트폰에 단어 하나만 입력하면 갖은 정보가 줄줄이 쏟아진다.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고, 굳이 메모를 할 이유도 없다. 이제 외우는 것보다 잘 찾는 게 미덕이 된 시대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골목을 외롭게 만든다. 골목에 붙은 광고나 전단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그 속에서 공존하는 나무와 꽃에 신경 쓰는 이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당연히 거기에 누가 사는지, 누가 오가는지도 관심 밖 일이 돼버렸다. ‘세상의 모든 걸 궁금해하는 어린아이처럼 골목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어떨까’ ‘그럼 우리네 마을이 좀 더 아름다
좁은 골목을 걷는다. 사방이 길이요 담장이요 전봇대다. 여기저기 너절한 광고들이 눈에 보인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둥근 기둥’에 많이 붙어 있다. “사각 기둥이 더 편하지 않을까?” 아니다. 광고 붙이는 사람들은 사각 기둥의 ‘사각지대’가 싫었을 거다. 역시 광고하는 사람들은 지혜롭다. 또 걷는다. 숱한 광고 사이에 낙서도 보인다. 김○○ 바보 멍청이 똥개…. 이번엔 약간 실망스럽다. 지금 낙서나 30년 전 낙서나 그게 그거다. 낙서는 왜 진화하지 못했을까. 이상한 질문들을 곱씹으며 마을 속에 뿌려진 글을 음미한다. 그 두 번째 이
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글이 새겨진 것엔 추억이 흐르고, 감성이 물결친다. 그게 간판이든 하찮은 광고 스티커든 아이들의 볼품없는 낙서든 마찬가지다. 창신동 골목길에도 ‘글’이 아로새겨진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간판’은 잊힌 추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마을 속에 뿌려진 글, 그 첫번째 ‘간판 편’이다.사람들이 사는 곳에 글이 적혀 있지 않은 곳은 없다. 좁은 골목 귀퉁이 우수관雨水管에 붙어 있는 하찮은 광고 스티커부터 작은 가게의 간판과 사인들, 커다란 건물 위 대형스크린에 움직이는 글과 영상, 명절이나 선거철이면
그 옛날 그 대문을 창신동에서 다시 본다. 두꺼운 지붕에 명패, 우편함, 초인종 등 군더더기가 참 많다. 하지만 그 옛날 그 시절엔 뭐 하나 하찮은 게 없었을 게다. 명패는 내 집의 상징물이었을 테고, 우편함은 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을 것이다. 하물며 초인종이 없으면 철문을 쾅쾅 두드리거나 소리를 질러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하찮아진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낭만을 소환해 본다.■대문의 형태 = 주택의 대문엔 으레 지붕이 있다. 지붕이 없어도 대문 역할을 능히 할 수 있는데 굳이 무겁고 두꺼운 콘크리트 지붕을 머리 위에
대문에 사자머리가 붙어있다. 용맹한 얼굴에 위협적인 갈기로 무장한 사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스 손잡이만 한 철고리를 물고있다. ‘밀림의 왕’ 사자는 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 주택 대문에 붙은 채 그 집을 지키기 시작한 걸까. 이 땅에서 많이 사용해온 문양인 용, 호랑이, 새, 물고기, 도깨비도 아니고 왜 사자였을까. 살짝 검색해보니 1970~1980년대 양옥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식 대문에 사자머리 손잡이가 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이번 주제는 단독주택의 대문이다. 집과 바깥의 경계에 선 커
‘누런 천’이 건물을 두른다. 해체 작업의 시작이다. 바깥 사람들은 ‘누런 천’만 보이지만 안쪽 사람들은 하늘색과 누런 천에 비친 하늘빛을 만끽한다. 하지만 해체 현장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커다란 장비가 휘젓고 다니면서 한층씩 무너뜨린다. 건물과 사람이 남긴 수십년의 흔적은 그렇게 사라져간다. 이번 편에선 ‘누런 천’ 뒤에서 벌어지는 건설 해체공사의 절차를 ‘건축가’의 시선으로 살펴봤다.■먼지비산방지망 = 해체공사 현장에 누런 천을 두른다. 해체공사 중 발생하는 먼지가 현장 외부로 날아가는 것을 막고 건축폐기물이 현장 밖으로
사람이 살던 곳엔 흔적이 남는다. 삶, 평범한 일상, 아빠와 엄마, 아이들의 기록이다. 장사하던 곳에도 흔적이 숱하다. 버려진 테이블엔 전화번호부가 적혀 있고, 남은 서랍장엔 낡은 LP판의 잔상이 새겨져 있다. 어디에도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건물의 평범한 기록, 해체공사를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건물에 누런 천을 둘렀다. 수십년간 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 거대한 구조물은 이제 며칠 후면 세상에서 사라진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고, 건물은 세워지고 무너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과 끝이
창신동 낙산을 오르는 수십개의 골목에는 많은 계단이 있다. 그 계단에는 동네 주민의 숱한 이야기가 서려 있다. 계단이 생겼을 때는 단지 오르내리기 위한 통로였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는 모두 잊힌다.■납득이 계단 = 창신동은 TV와 스크린에 자주 나오는 촬영지 중 한곳이다. 이곳이 갖고 있는 감성적 풍경과 뛰어난 전망, 특색있는 골목길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차별적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이
낡은 계단을 올라간다. 얽히고설킨 계단과 골목길은 구불구불 기차게 연결돼 있다. 집이나 건물을 만난 골목길은 접히고 꺾이면서 또다른 계단과 연결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층층이 쌓인 계단과 골목길을 바라본다. 소소한 계단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길이 얼마나 유연한지 건축가와 사진가는 새삼 깨닫는다.천국의 계단을 내려와 지봉로를 따라 동묘앞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창신초등학교가 보인다. 그 뒤편엔 좁은 골목과 시멘트계단이 있다. 먼저 옛 항공사진을 통해 이곳 마을이 생긴 시기를 추측해본다. 1947년 항공사진을 보면 흥인지문에서 동묘앞역
길은 연결해야 이용된다. 그래야 길 위에서 사람들이 기억을 남기고,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는 길에도 잔잔한 역사가 깔려 있는 이유다. 우리는 이번에 창신동 높다란 언덕에 숨은 ‘평범한 계단’을 걸었다.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길인데, 여기엔 사실 골목이 있었다.계단: 사람이 오르내리기 위해 건물이나 비탈에 만든 층층대.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계단의 정의다. 이용주체(사람), 목적(오르내리기), 위치(건물·비탈), 형태(층층대層層臺)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뭔가 다른 정의가 있나 찾아보고 생각해
아무도 살지 않던 곳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은 그곳에 하나둘씩 집을 짓는다. 집과 집 사이엔 사람이 다닐 만한 좁은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태어난 골목은 사람들과 성장하고 시대와 함께 번성하고 쇠퇴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골목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기존 골목은 해체·방치되고 있다. 건축법과 골목을 고찰해 본다.1975년 개정된 건축법. 여기에 규정된 도로의 정의를 보자.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폭 4m 이상의 도로.”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이 내용은 중요하다. 폭이 4m 이상인 도로에 붙어 있는
골목은 온전한 ‘사람의 길’이다. 폭이 좁아서 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골목은 ‘머무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오랜 삶이 머물고, 일상이 머물며, 하물며 시간까지 머문다. 건축가와 사진가의 길걷수다 프로젝트, 이번에는 창신동의 골목길을 걸어본다.나는 동네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순간만은 여행자가 되어 관찰자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곤 한다. 큰길에서 작은 길로 작은 길에서 다시 골목으로 발걸음은 점점 깊숙이 들어간다. 길의 넓이에 따라 건물 크기가 달라지고 동네의 분위기가 바뀐다. 골목길을 거닐다
누군가는 불쑥 길을 묻는다. 또다른 누군가는 불쑥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돌발상황에 때론 당황스럽지만 그게 1층 사무실의 매력이다. 밖으로 나갈 때, 안으로 들어올 때 ‘귀찮음’이 존재하지 않는 1층은 확장, 공유, 그리고 커뮤니티의 시작점일지 모른다. 내가 1층에 건축사사무소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1층’ 사무실 = 건축사사무소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은 아니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뭐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잘 모르는 것을 대면하는 건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몇주 동안 우리는 시간 나는 대로 더 많은 창살을 찾아 골목을 탐색했다. 창살을 찾는다는 목표를 정하고 골목을 둘러보니,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창살부터 독특한 문양이 있는 창살까지 다양한 종류가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길걷수다 창신동 방범창살 두번째 이야기다. 요즘 방범창살 대부분은 감옥의 철창살처럼 단순한 모양이다. 옛 창살들이 다양한 형태와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왜일까. 현장답사로 수집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방범창살’을 이론적으로 고찰해보자.■ 재료 고찰=옛 방범창살의 재료는 폭 1~2
건축가와 사진작가. 둘은 창신동을 걷는다. 옛것의 향기와 정취가 뭉클하게 흐르는 그곳. 문득 낡은 방범창살에 시선이 간다. “어릴 때 저 창살에 끼었었지(사진작가).”“맞다, 맞아(건축가).” 둘의 맞장구 사이에서 기억이 살아난다. 주변을 둘러본다. 둘만 보기엔 아까운 추억들이 샘솟는다. 길걷수다 첫번째 발걸음, 창신동 방범창살 편이다.1990년께, 서울의 한 복도식 아파트 2층. 열살 전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집에 들어가려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당연히 열릴 줄 알았던 문은 열리지 않고 잠잠하다. 문을 힘껏 당겨도
# 박용준은 건축가다. 어릴 때부터 ‘쓱싹쓱싹’ 그리길 좋아했는데, 꿈을 이뤘다. 오상민은 사진작가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좋아했는데, 꿈을 이뤘다. # 둘은 꼬맹이 때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둘의 서로 다른 시선은 때론 교차하고 때론 흐트러진다. # 둘은 건축가와 사진작가로서 평범한 마을을 보기로 했다. 사소한 것들의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조명하자는 게 소소한 목표다. 이른바 ‘길걷수다’ 프로젝트,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깊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