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성장전략에서 파생된 구조적인 문제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은 서민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다행히 새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득주의 성장론’을 통해 서민의 삶을 회복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낡은 틀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임금 상승은 더딘데 물가상승폭은 크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우리 경제가 그간 어떤 성장 전략을 펼쳤는가’라는 물음으로 거슬러 가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기업의 이윤을
1997년 외환위기라는 끔찍한 악몽을 겪은 우리나라 서민들은 ‘쉼’이 필요했다. 주 5일제가 자리 잡은 지금, 그때와 비교하면 시간도 한결 많아졌다. 그런데도 집 밖을 나서는 일은 여전히 무섭다. 어딜 가든 ‘돈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다.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해다. 어지간한 농구스타들은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 당시 이들의 화려한 드리블을 보기 위한 입장료는 6000원이었다. 20년이 지난 올해 프로농구 평균 입장료는 9800원으로 뛰었다. 프로야구 티켓 값도 올랐다. 1997년 잠실야구장의 주말 외야석
단돈 1만원이면 네 식구가 자장면 한그릇씩 배불리 먹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동네 중식당에서 자장면 두그릇만 먹어도 1만원이 사라질 판이다. 어디 자장면뿐인가. 등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삼겹살도 부담스러워졌다. 국민간식 치킨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97~2017년 20년새 서민음식이 사라졌다.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갈 곳 잃은 서민들을 위로해주던 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었다. 부담스럽지 않는 가격에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삼겹살과 소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하지만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
식탁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했다. 생활물가지수는 2.3% 상승했고, 신선식품은 10.5% 뛰어올랐으며, 달걀은 전년 동월 대비 69.3% 올랐다. 어획량이 감소해 ‘금金징어’ 대접을 받는 오징어도 62.6% 상승했다. 그렇다면 1997년엔 어땠을까.11개 주요 품목(쌀ㆍ달걀ㆍ양파ㆍ대파ㆍ시금치ㆍ배추ㆍ무ㆍ마늘ㆍ고등어ㆍ오징어ㆍ멸치)의 가격을 1997년과 비교해보니 평균 105.1%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건 역시 달걀이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
20년 사이 과자 가격이 약 200% 올랐다. 500원을 내고 과자 한봉지 사면 100원을 거슬러 받던 얘기는 그야말로 옛날얘기다. 1000원이면 과자 두봉지쯤은 거뜬했었는데 이젠 한봉지 사기도 버겁다. 명분없는 가격 인상에 애먼 소비자들만 괴롭다.출출하지만 밥을 먹긴 애매한 시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는다. 손에 닿는 대로 새우깡ㆍ빼빼로ㆍ초코파이를 하나씩 넣고, 밥하기 귀찮을 때 끓여먹을 라면도 봉지면ㆍ사발면으로 한개씩 담는다. 마실 것도 필요하다. 콜라와 사이다는 캔으로, 1L짜리 우유도
# 단돈 400원이면 족했다. 시내버스든 지하철이든 능히 탈 수 있었다. 그렇게도 살벌했던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서민의 발’은 나름 따뜻하고 후했다.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변한 만큼 값도 변했다.2017년 시내버스 요금은 1200원, 지하철 요금은 1250원으로 매섭게 뛰었다. 인상률만 따져보면 200%가 넘는다. 가뜩이나 지갑이 얇아졌는데, 서민의 발은 속도 모르고 비싸졌다. 참 야속한 시절이다.# 1997년 그해는 많은 샐러리맨에게 통한痛恨을 안겼다. 자신 같은 인재를 끝까지 책임질 줄 알았던 직장이 ‘해고’라는 부메
자동차, 택시, 버스, 기차…. 먼 길도 금세 닿게 한다.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20년 전에는 이를 이용하는 게 무거웠겠지만 지금은 더 힘들어졌다. 20년새 가격이 무려 140.8%나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각각 세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1997년 서울 기준 택시의 기본요금은 1000원. 기본거리 2㎞에 1㎞를 더 가면1500원을 냈다. 지금은 기본요금 3000원에, 1㎞를 가면 800원을 더 내야 한다. 거리가 늘면 이 비율은 더 상승한다. 기본거리 이후 247m당 100원을 받던 게 지금은 1
지독한 불황이다. 가계에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만 크게 오른다. 그렇다고 허리띠를 함부로 졸라 맬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소비는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빚만 늘어난다. 서민들 입에서 비명이 저절로 나오는 이유다.독하게 마음먹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도저히 줄일 수 없는 게 있다. 자녀 교육비다. 불황에도 식을 줄 모르는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내 자식만 뒤처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사교육이 학생들의 실력을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치솟는 학원비가 무섭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며 수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잃었다. 2017년 현재는 심각한 실업난에 빠져 길 잃은 청년들이 허우적대고 있다. 어렵게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꽃길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월급이 인상되는 것보다 더 가파르게 물가가 오르고 있어서다. 과연 1997년과 2017년을 사는 직장인의 지출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가상의 인물을 세워 타임머신에 태워봤다.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1997년 7월의 이범준(가명ㆍ28)씨는 중소기업 입사 7개월 차다. 멀쩡하게 잘 다니
한국경제가 깊은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 “최근 몇년간 ‘호황’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혹자의 말처럼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보려 하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체감물가가 계속 오르다보니 괴롭기만 하다. 폭풍 같은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엔 어땠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1997년과 2017년의 물가를 비교해봤다.“8월 들어 공공요금 인상이 잇따라 발표되고 휴가철 폭염으로 생육에 지장을 받은 일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체감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