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ㆍ포스코 CEO 괴담

▲ 민영화된 공기업 중 단 한 곳도 정치권의 외풍을 피해간 곳은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직전 사장은 검찰수사를 받았다. 사람들은 ‘새 사장’을 위한 포석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새 사장이 왔다. 그런데 5년 후, 새 사장 역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또 다른 사장’이 올 것을 직감한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KT와 포스코의 얘기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독점적 시장에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해당기업과 관련 시장까지 꿰뚫고 있는 탁월한 리더가 ‘키’를 잡아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민영화된 옛 공기업에 정부가 ‘입맛에 맞는 인물’을 경영자로 앉히는 걸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정부의 입장도 있다. 민영화됐다고 하더라도 옛 공기업이 다루는 재화는 대부분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기업의 수장을 정부가 앉힐 수 있다면 정책을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해당기업의 주식을 단 한주도 보유하지 않은 정부엔 그런 권한을 행사할 만한 자격이 없어서다. 공기업의 폐해를 없애겠다며 민영화를 해놓고 이제 와서 놔줄 수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 중 어느 한 곳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CEO를 선택할 때 늘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민간은행 합병을 통해 탄생한 금융권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 금융권 CEO가 된 이들이 ‘MB의 4대 천왕’으로 불린 건 이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들 역시 전격 교체됐다.

 
최근엔 KT와 포스코가 이 문제로 또다시 시끄럽다. 두 기업의 CEO는 임기 중에 저지른 각종 불법 혹은 탈법행위로 인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물론 혐의가 인정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검찰조사를 통해 특정 기업의 CEO를 교체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는 거다.

실제로 KT와 포스코는 CEO가 교체될 때마다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CEO의 임기가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집권기간과 맞아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어김없이 CEO 임명 과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 의혹이 튀어나오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검찰조사가 이뤄졌다.

특정 인맥도 모자라 외부 낙하산까지

19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출발한 KT는 설립한지 21년 만인 2002년 8월 민영화됐다. 통신시장에 완전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KT의 수장은 정작 완전경쟁체제를 통해 선출되지 못했다.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다.

이용경 KT 사장(이하 당시 직함)의 선임 배경에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간 이상철 전 사장(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CEO 인사권을 정부가 쥐고 흔든 셈이다. KT 민영화의 첫 단추는 그렇게 잘못 끼워졌다.

2005년 8월 이용경 사장이 임기를 마치고 남중수 사장이 KT의 차기수장이 됐다. 그 과정에 정치권의 외압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부 낙하산’ 문제가 발생했다. 남 사장이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이용경 사장의 직속후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상철 전 사장, 이용경 사장, 남중수 사장은 모두 KTF 사장을 역임한 이후 KT 사장에 올랐다. KS 출신에 KTF 사장을 역임한 이들 세명이 ‘KT사장’ 자리를 대물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진 건 어쩌면 당연했다.

2008년 들어선 이명박(MB) 정부는 대놓고 ‘낙하산’을 투하했다. 2008년 3월 KT는 남 사장의 재임을 결정했지만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흐른 9월부터 남 사장은 검찰수사에 시달렸다. KT와 KTF에 대한 납품비리와 금품수뢰 혐의에 대한 것이었다. 그 결과, 남중수 사장은 2008년 11월 구속됐고, KT의 CEO 자리는 자연스럽게 공석이 됐다.

 
그의 빈자리는 MB의 청와대 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던 이석채 회장이 꿰찼다. MB정부는 “최근 2년 이내에 KT 경쟁업체와 공정거래법상 동일기업군에 속하는 업체에 임원으로 있던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다”는 KT의 정관까지 고쳐가며 이 회장을 KT회장에 앉혔다. 정관대로라면 경쟁사인 LG전자와 SKC&C의 사외이사를 지낸 이 회장은 KT회장이 될 수 없었다.

현재 이 회장은 남 사장의 퇴임 때와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이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자진 사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임기가 남은 이 회장을 검찰조사로 압박해 끌어내리고, 또다시 KT에 입맛에 맞는 CEO를 앉히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스코의 CEO 선임 과정도 KT만큼 시끌벅적했다. CEO가 퇴임할 땐 어김없이 정치권의 외풍이 들이닥쳤다. 유상부 포스코(옛 포항제철) 회장은 1998년 2월 김대중(DJ) 정부의 출범 직후인 3월에 취임했다. 유상부 회장은 2000년 9월 포스코가 민영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첫 민영 포스코의 CEO가 됐다. 하지만 유 회장은 당시 박태준 자민련 총재(전 포철 회장)의 건의와 김대중 대통령의 합의에 의해 투입된 외부 낙하산 인사였다.

물론 1970년 포철에 입사해 1993년 부사장까지 올랐지만, 이후 퇴사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중공업과 일본삼성 등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KT와 마찬가지로 민영 포스코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유 회장은 2003년 재신임을 앞두고 김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와 연루된 타이거풀스의 주식을 고가에 매입했다는 권력형 비리에 휘말려 퇴임했다. 일부에선 유 회장이 박태준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정치권의 압력을 벗어나려 한 것 때문에 부메랑을 맞았다고 해석했다.

유 회장의 갑작스런 퇴임과 동시에 당시 2인자였던 이구택 사장의 차기회장 취임은 자연스러웠다. 공채 출신 CEO라는 점까지 부각되면서 ‘외풍 없는 인사 민영화’를 실현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2007년 재신임까지 얻은 이구택 회장은 MB정부의 무차별적 낙하산 투하를 피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검찰이 포스코의 세금탈루와 국세청 로비 의혹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이 회장은 남은 2년의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당시 상당수 언론은 이 회장을 둘러싼 의혹에 의문을 쏟아내며 “정부가 제 사람을 심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평했다.

 
이런 이구택 회장을 보내고 2009년 2월 회장 자리를 꿰찬 이는 ‘MB맨’으로 불리던 정준양 회장이다. 그는 MB정권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 역시 정권이 바뀌자 ‘떨어지는 낙엽신세’로 전락, 11월 초 자진사퇴의사를 밝혔다. 정 회장은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9월부터 진행된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 죽으면 CEO도 죽어

지금까지 KT와 포스코에서 제대로 임기를 마친 CEO는 단 한명도 없다. 물론 비리가 드러나면 직을 걸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주주총회를 통해 재임했더라도 정권이 바뀌는 순간 ‘파리목숨’이 됐다는 점이다. 왜 정권만 바뀌면 두 기업 CEO의 불ㆍ탈법 의혹이 제기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민영화된 기업 KT와 포스코가 유독 외풍에 시달리는 이유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다. 처음부터 민영화에 어울리는 CEO를 세우지 못한 게 고질병이 됐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와의 관계가 끈끈한 걸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특정 업종에 종사했던 공무원이나 정권과 친밀한 내부 인사를 선임하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채원호 가톨릭대(행정학)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최소한 ‘경영 능력이 검증되고 문제가 없는 사람’을 추천하기 때문에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의 문제는 KT와 포스코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부가 원하지도 않는 CEO를 ‘입맛대로’ 앉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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