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52회

들어누운 순신은 한번 눈을 떠서 장자 회를 보며 “나를 혼자 두고 활을 들고 나가 싸워라. 적을 하나라도 놓아 보내지 말게 하여라”하고 마지막 막을 마쳤다. 다른 유언이라고는 한마디 말이 없어다. 순신은 54세의 혁혁한 일생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보다 먼저 진린은 순신의 전영장 이순신李純信을 빌려서 향도장을 삼아 곤양의 죽도에까지 이르렀더니 소서행장 도진의홍의 연합함대가 관음포에서 순신의 함대에게 불의의 야습을 받아서 형세가 긴박하다 하였다.

소서행장 도진의홍 등 연합함대는 상하 장졸이 귀향하려는 마음이 급하여 안위의 함대를 순신인 줄 알고 이제는 순신의 호구를 벗어났다 하여 노를 재촉하여 관음포에 다다랐다. 섬 그늘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순신의 함대는 불의에 습격하였다. 적의 함대는 형세가 불리하매 일제히 횃불을 켜들어 구원병을 부르는 군호를 맞추었다. 남해로부터 오는 송포진신 등의 함대는 본국으로 철병하여 가는 판에 이 급보를 듣고 창선도로부터 출동하기 시작하여 암목포巖木浦를 거쳐 노량으로 넘어오는데 그 수가 몇백 척인지 밤이 되어 셀 수가 없었다.

이날 밤은 11월 18일 밤이었다. 밤 이경에 순신은 제장에게 영을 내리기를 “오늘 밤에 반드시 큰 싸움이 있을 것이니 다 죽기로써 결심하라”고 재삼 약속하였다. 약속이 끝난 뒤에 순신은 전쟁이 아마도 최후의 일전인 듯하기도 하고 나랏일을 생각하여 마음을 정할 길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삼경이 되어서 목욕 관세1)하고 새 군복을 갈아입고 갑판 위에 올라가 분향하고 꿇어앉아 절하며 하늘에 기도하였다.

“이 적들만 소탕한다 하오면 죽더라도 여한은 없사오니 황천은 돌아보아 도와주옵소서!”

빌기를 다하자 큰 별[하괴성河魁星] 하나가 빛이 횃불 같은 꼬리를 끌고 은하수로부터 떨어져 날아와서 이락파李落坡 앞바다 물속으로 빠졌다. 이것을 본 제장 군졸은 크게 놀라고도 이상스럽게 여겼다. 달빛은 밝고 별빛은 희미하며 찬바람은 불어와 물결을 일렁거렸다. 사경이나 되어서 진도독의 서간이 왔다.

吾夜觀乾象 晝察人事 東方將星將病矣 公之禍不遠矣 公豈不知耶 何不用諸葛武侯之禳法乎
“내가 밤에 하늘의 모습을 보고 낮에 인사를 살폈는데 동방의 장성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니 공의 화가 멀지 않은 듯하오. 공이 어찌 모르시겠소? 어째서 제갈 무후의 양법2)을 쓰지 않으시오?”

진린은 재주와 무용이 넉넉하고 겸하여 천문지리에 능통한 사람이며 순신과 동거하여 순신의 일편단심이 죽음을 각오한 줄을 모를 리는 없었다. 이날 밤에 진린이 천문을 보다가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이 서간을 써 보낸 것이었다. 순신은 진린의 서간을 보고 웃으며 “천수天數는 피하기 어렵다. 피하고자 하면 오히려 의외의 재앙이 닥치는 법이다” 하며 곧 답서를 하여 보냈는데 그 글월은 이러한 문구를 썼다.

吾忠不及於武侯 才不及於武侯 德不及於武侯 顧此三件事 皆不及於武侯 而雖用武侯之禳法 天何應哉
“나는 충성이 무후에 미치지 못 하고, 재주가 무후에 미치지 못 하고, 덕망이 무후에 미치지 못 하오. 돌아보건대 이 세 가지가 모두 무후에 미치지 못하니 비록 무후의 양법을 쓴다해도 하늘이 어찌 들어 주리오.”

이것은 결심한 바 있었으며 그리고 큰 운수는 이미 정해졌다는 달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등자룡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이었으나 기운이 넘치고 강개하여 의기와 용력이 옛사람의 기풍이 있었다. 조선에 나온 뒤로 이순신의 충의용략을 흠모하여 옛날에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다고 찬양하며 순신의 병선제도가 실전에 우월하기가 삼국에 제일이 된다 하여 판옥대맹선 한척을 순신에게 빌려 자기가 타는 배로 삼았다. 등자룡은 이날 밤에 순신의 답서를 본 뒤에 자기가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순신의 병선을 호위하기를 결심하였다.

등자룡은 진린을 보고 “나는 이미 나이 70여세라 죽더라도 아깝지 아니하거니와 순신 같은 영걸은 불세출의 재략을 품은 장수이니 아무쪼록 구원하여 우리 중국에 벼슬하게 하면 마땅히 천하의 으뜸가는 장수가 될 터이니 이것이 나의 바람이오” 하고 큰 배 3척을 몰고 노량목으로 향하여 쳐들어갔다. 진린도 그 뒤를 이어 싸우러 나아갔다.

거북선 위력에 혼이 달아난 일본군

노량목으로 밀려드는 적선은 300척도 넘는다. 진린은 통역관을 시켜 적진에 전하여 “천조 수군제독 진린 노야가 황제의 명을 받아 여기 있으니 너희는 물러가라” 호령하였다. 그러나 일본함대의 눈에는 천조 제독도 없었다. 적장 송포진신은 “우리는 이순신의 함대와 싸우려는 것이니 너희 명나라 수군은 비켜서라”하고 반박하였다. 일본군의 이 대답은 진린으로 하여금 격노케 하였다.

진린은 군사를 지휘하여 포문을 열어 싸움을 시작하였다. 진린의 진은 남해 쪽을 등지고 적의 함대는 암목포와 곤양 쪽을 등져서 싸우게 되었다. 그렇게 되어 물때는 일본군은 조수의 미는 세력을 타고 명군은 조수를 거슬러 싸우게 되었다. 싸운 지 한시간이 되지 못하여 명군은 물을 따라 퇴각하고 일본군은 조수를 따라 압도적으로 진격하게 되었다. 그러하여 적은 조총을 깨 볶듯 난사하며 마구 쳤다. 이때 왜교로부터 나오는 소서행장 도진의홍의 함대가 순신의 후영장 안위의 함대를 헤치고 노량목에 닥쳐서 남해와 창선도로부터 쳐들어오는 적선과 내응외합이 되어서 진도독의 형세는 더욱 낭패되었다. 이때 관음포 섬 그늘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이순신의 주력함대가 일제히 돛을 달고 풍우같이 출동하여 일본군의 앞을 막고 천지현자 각양대포와 궁노 화전 조총이 소낙비 쏟아지듯 맹렬히 쳐들어갔다.

▲ 순신과 진린의 연합군은 조세와 풍세를 이용해 싸움을 준비했다. 지금껏 역풍과 역조에서 싸우던 진린이 순신의 위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순신의 거북선 두척은 마치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괴물 모양으로 입으로 독한 연기와 뜨거운 불길을 토하고 좌충우돌하여 800여척이나 되는 적선 사이로 횡행하며 닥치는 대로 적의 배를 수없이 당파하여 부수었다. 이 거북선은 고금도에서 새로 만든 배인데 실전의 경험상으로 연구 제작되어서 전의 거북선보다 훨씬 우수하였다. 지금까지 거북선의 위력을 본 일이 없던 소서행장 도진의홍의 군사들은 별안간에 괴물 같은 철갑선을 만나 크게 놀라고 일찍 한산도 기타 각처의 싸움에서 거북선에게 혼이 달아난 종의지 모리민부 등의 군사는 전날의 기억을 일으켜서 전율할 따름이었다.

건조한 겨울바람에 장작 같이 마른 적선의 돛과 판옥과 선체에는 순신의 화공하는 화전과 대발화와 진천뢰를 맞아서 화약과 같이 타올랐다. 노량 및 관음포 일대 해안은 하늘이나 바다나 모두 불빛이 되고 대포 소리와 조총 소리와 죽는 적군의 우는 소리에 강산이 동요하였다. 적의 손해는 벌써 200척 이상이나 상실하였다. 순신의 장졸들은 진린 때문에 오래 싸우지 못하던 분풀이를 마음껏 하려고 들었다. 병선은 앞을 다투어 돌진한다. 지금껏 역풍과 역조에서 싸우던 진린의 함대는 순신의 위력에 다시 힘을 얻어서 이제야 순풍순조를 타고 적군은 도리어 역풍역조를 만나서 싸우게 되었다.

조세와 풍세의 유리함을 만난 순신과 진린의 연합군은 더욱 북을 울려 싸움을 재촉하였다. 오경이 지나 새벽녘이 될 때에는 적선 800여척중에 벌써 300여척이나 부서지고 또는 불에 타버렸다. 순신의 군사는 400여급을 베고 진린의 군사도 220여급을 베었다. 그 밖에도 물에 빠져 죽고 불에 타서 죽고 하여서 적의 시체는 바다를 덮어서 피가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배가 부서진 조각과 아울러 물세를 따라 흘렀다. 소서행장은 군사와 병선을 많이 잃고 순신이라면 원래 무서워하던 터라 몸을 빼어 묘도에 내려 무성한 수풀 사이에 숨었더니 종의지의 별동대가 달려와서 묘도에 숨은 소서행장을 구출하여 배에 싣고 그 밤에 진린의 배려를 얻어 그 밤에도 불구하고 미조항 바깥 바다로 빠져나와 망망한 대해의 파도를 무릅쓰고 달아나 버렸다.

이때에 순신의 거북선대는 제각기 그 72 포혈에서 대완구와 불랑기와 화전을 끊임없이 발사하며 적선을 연해 다닥뜨리는 대로 냅다 받아 부수었다. 이곳은 해저에 암초가 많아서 수로 항해에 익숙하지 못한 적선은 부딪쳐 깨지는 것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부서저도 적의 총세가 400척이나 남아서 적지 않은 세력이었다. 그들은 노량목을 넘어서 빠져 달아나려 할 때에 산그늘로부터 난데없는 40~50척으로 조직된 일대의 병선이 내달아 길을 가로 막았다. 이것은 순신이 미리 복병해 둔 이순신李純信과 유형의 함대에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 복일승의 무리가 가담한 함대였다. 한바탕 맹렬히 싸웠다. 앞이 막힌 적선은 뒤로 돌아보았다. 뒤를 따라 추격하여 오던 이순신 안위의 주력함대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그림자도 없어졌다. 그들은 쫓아오던 이순신이 저절로 없어진 것이 좋았다.

그들은 소서행장 도진의홍 송포진신의 남은 병력이었다. 싸움에 낭패를 당한 나머지 싸울 뜻을 잃고 어디나 길이 열린 데로 달아나 고국으로 돌아갈 마음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관음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히 이순신의 맹렬한 공격을 잠시라도 피하게 된 것이 좋았다. 이 관음포란 데는 어구에서 들여다보면 저쪽 바다로 통한 듯이 보이나 사실은 뒤가 막힌 만이었다. 순신의 계획은 적을 한 척이라도 놓아 보내지 아니할 생각으로 관음포 안쪽에다가 미리 어화3)를 많이 켜서 멀리서 언뜻 보면 저쪽 바다로 상통한 듯하게 보이게 해놓았던 것이었다. 마침내 적을 노량에서 추격하다가 뒤를 열어 주어, 적으로 하여금 그 패잔한 함대를 몰고 이 병 속 같은 데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날은 이미 새서 훤하게 밝아온다.

진도독의 함대는 먼 곳에서 순신이 싸우는 뒤를 거들다가 바라보고 순신의 밤새도록 싸운 전과가 어찌 되었나 불리하지나 아니하였나 하는 생각을 하던 때에 날이 새고 보니 전멸이 되다시피 300~400척이나 부서진 것은 적의 함대요, 순신의 병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신의 병선도 수십척이나 치명적 손해를 입었으며 군사도 수백명의 사상자가 있는 듯하였다. 진린의 생각에는 이러한 엄청난 대공을 순신에게 빼앗긴 것이 그 심중에 불쾌하여 곧 함대를 몰고 관음포 포구로 쫓아왔다. 순신의 함대는 마치 언제 싸움이 있었나 하는 듯이 진용이 정숙하게 있었다.

진린은 순신을 보고 “적선은 다 어디 갔소?” 하였다. 순신은 바다를 가리켰다. 저 바다에 널리 뜬 깨진 배 불타는 배 모로 엎어져 누운 배 그리고 물에 뜬 시체를 가리켜 보였다. 그러면서 “나머지 적선 170여척은 이 포구 안으로 도망갔소” 하고 관음포 속을 가리켰다. 진린은 “그것은 왜 노야가 놓아 보냈소? 이 포구 안이 저쪽 바다로 통하지나 않은가요?” 하였다. 순신은 “이곳은 뒤가 막혀서 나갈 데가 배로는 없소” 하고 순신은 다시 진린더러 “소서행장의 거취는 어찌 되었나요?” 하고 물었다.

진린은 말을 못하고 주저하다가 순신을 속일 수 없어서 말문을 열어 “소서행장은 밤 동안에 노야의 병위를 무서워하여 묘도에 내려 바위 사이에 은신하였더니 미조항으로부터 구원선이 와서 노량목으로 아니 가고 외양으로 그 위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소선 일척을 타고 빠져 달아났소” 하고 속이지 아니하고 바로 말하였으나 면목이 없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는 뇌물에 팔려서 소서행장을 사로잡지를 인정상 하지 못하고 도리어 전송까지 하고 왔던 것이었다. 진린은 순신을 살아서 다시 만나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는 어젯밤에 하괴성이란 큰 별이 순신의 진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진린은 순신을 대하여 자청하기를 “내가 포구 안에 들어가서 남은 적을 토벌하겠소. 노야는 피곤할 터이니” 하고 진린은 관음포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순신은 경고하여 “아니오. 병법에 궁구물박4)이라 하였소 급격한다면 도리어 후회함이 있을 것이니 가만 두었다가 저희들이 돌아 나올 때에 잡아도 늦지 않소” 하고 말렸다. 그러나 진린의 생각에는 순신의 위세에 화살 맞은 새의 꼴이 된 패잔한 적이 병 속 같은 데로 들어간 쥐와 같으니 당당한 대명 수군으로 이기기가 쉬울 줄만 알았다. 그때서 순신의 충언을 듣지 아니하고 “그깟 놈들을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소?” 하고 자기의 함대를 몰고 포구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자루 속에 몰아넣은 적이라도 잡아서 자기네의 공을 세우자는 탐욕지심이었다. 최후의 승리는 자기가 거두었다고 과장이라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신이 만류하는 것도 물리치고 적의 진지를 찾아 들어간 때에는 벌써 해가 많이 올라와 아침나절이 되었다.

적의 함대는 도진의홍 소서행장의 부하 정예들만 남았다. 참 일기당천의 장사들이며 사납기 짝이 없는 살마薩摩(사쓰마) 및 관서關西(간사이)의 무사들이었다. 쳐들어오는 진린의 함대를 보고 결사적 용기를 발휘하여 육박하여 진린의 병선들을 경각간에 일본함대가 포위하였다. 일본함대는 아직도 180여척이나 남았다. 일본 용장들은 진린의 기함으로 막 뛰어오른다. 진린의 군사는 호준포5)를 놓아 많은 적을 사살하여 방어하였다. 진린은 제장을 독려하여 단병전으로 악전고투하였다.

궁지에 몰린 진린을 구하다

적의 용장 하나가 진린의 몸을 칼로 칠 즈음에 진린의 아들 진구경陳九經이 칼을 들어 구하고 몸으로 막다가 그 칼에 찔려서 피가 흐르는 것을 진린의 아장들이 대들어 진구경을 구해내고 적장 2인을 당파6)로 찍어서 물에 던져 죽였다. 일본군사들은 연해 조총을 쏘며 맹렬히 싸우는데 진린이 별안간에 목탁을 쳐서 군사를 거두었다. 진린의 진은 갑자기 고요하여진다. 적은 의심이 나서 싸움은 멈추었다. 진린의 군사는 일제히 분통7)으로 불을 풍겨서 일본 병선을 태우기 시작하니 바람이 일어나며 불길이 갈아서 바다물결까지 끓는다. 적선은 10여척이나 불이 당겨서 타버렸다.

▲ 순신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길 원했다. 대장의 죽음을 몰랐던 부하들은 싸우기에 열중했다.
진린의 부장인 부총병 등자룡이 진린의 형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배를 몰고 와서 구하는데 화구8)를 연달아 던져 적선이 8~9척이나 불이 일어나 타버렸다. 진린도 이것을 바라보고 “옳다, 화공을 해야 하겠군!” 하고 깨달아 분통과 화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하나가 화기를 잘못 던져 등자룡의 배에 불이 일어났다. 군사들이 불을 잡으려고 날뛰는 판에 일본무사들이 불붙는 등자룡의 배로 뛰어 올라서 칼과 창을 부딪치며 등자룡과 격투한 결과 등자룡을 찔러 죽이고 그 부하 70여인을 사살하였다. 진린도 병선을 몰고 등자룡을 구하려다가 다시 적선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또다시 위급하게 되고 적은 등자룡을 베고 그 배를 태워버린 끝에 기세를 얻어 진린을 곤란하게 하였다.

순신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매 의리상 구해주어야지 좌시할 수는 없었다. 순신은 제장에게 추격하기를 명하고 자기가 몸소 선봉이 되어 병목 같은 포구 안으로 전진하였다. 순신의 장자 회와 조카 완이 순신에게 간하여 “포구가 좁아서 적의 탄환이 한 목으로 몰려나오니 부친이 제일선에 나선다 하오면 적탄의 표적이 될 터인즉 몸을 보중하시고 거북선을 명하여 선두에 내세워 부딪치며 돌격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또 듣자니 이 지방의 이름이 이락파李落坡라 하오니 아마도 우리에게 불리한 지명인가 합니다” 하였다.

순신은 아들과 조카의 말을 듣더니 길게 탄식하며 “이곳이 방사원9)의 낙봉파일까? 지명도 이상해…. 나는 나랏일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 내 명은 저 하늘에 있으니 너희들의 걱정할 것이 아니다” 하고 아들과 조카의 간언을 물리쳤다.

순신이 탄 대장선이 선두에 나서서 탄환의 비를 무릅쓰고 육박하여 쳐들어오는 것을 본 적선들은 진린을 버리고 그 사격을 순신에게로 집중하였다. 순신은 철방패를 좌우에 세우고 뱃머리에 칼을 짚고 우뚝 서서 병선을 지휘하였다. 워낙 바다가 좁아서 배 위치를 자유로 좌우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적은 마치 과녁을 쏘는 듯이 뱃머리에 독전기를 두르고 선 순신에게로 총구를 겨누었다. 그래도 좀처럼 맞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태연자약하게 선두에 우뚝 서서 수기를 들어 독전하였다. 적선 중에서 큰 층각선 하나가 나온다. 그 층각에는 금빛 갑옷을 입은 장수가 3인이었다. 의자 위에 걸터앉아서 독전하는 것이 보였다. 순신은 이것을 겨누어 철궁에 아전牙箭을 먹여 쏘아 그 3장 중 한장수를 맞혀서 물에 떨어져 죽는다. 순신의 제장은 이것을 보고 더욱 기세를 얻어 일층 더 분전하여 대장군전을 발사하여 적의 층각선을 때려 부수었다.

도망하려 하여도 도망할 길을 잃은 적은 오직 죽기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이 순신의 대장선을 향하여 사력을 다하는 동안에 진린과 진린 이하 명나라 제장들은 위기를 벗어나 슬슬 뒤로 빠져 물러가 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은 이 관음포 싸움에 적선 30여척을 불사르고 수급 300여급을 베었으나 명나라 측에도 부총병 등자룡 이하로 전사한 사람이 역시 수백명이요 배가 파손된 것도 10여척에 달하여 적과 거의 같은 손해를 입었다.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이순신

진도독을 위기에서 구해낸 이순신은 마침내 소서행장의 부하 철포대의 탄환을 맞았다. 순신은 조카 완에게 손에 들었던 수기를 주며 “싸움이 지금 격렬하니 내가 죽은 것을 발표하지 말고 내 대신 네가 싸움을 독려하라” 명하고는 장자 회와 가노 금이金伊에게 붙들려 판옥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 누운 순신은 한 번 눈을 떠서 장자 회를 보며 “나를 혼자 두고 활을 들고 나가 싸워라. 적을 하나라도 놓아 보내지 말게 하여라” 하고 마지막 말을 마쳤다. 다른 유언이라고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순신은 54세의 혁혁한 일생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났다.10)

 
가노家奴 금이만 곁에 모시게 하고 회도 순신의 죽음을 감추어 곡하지 않고 부친이 마지막 남긴 가르침을 받들어서 활을 들고 나가 싸웠다. 그러기 때문에 비록 친하고 신뢰하는 부하 송희립 김대인 제만춘 같은 군관들이라도 한 배안에서 있었지만 싸우기에 전력하여서 대장이 죽는 줄을 몰랐다. 이완은 순신의 손에 길러낸 조카로 그 모습이 웅대하고 신장이 8척이어서 순신과 방불하였다. 그래서 적군은 고사하고도 우리 편 장졸들도 싸움에 정신이 팔려서 순신이 아닌 줄을 모르고 앞을 다투어 공격해 들어가며 적선 120여척을 깨뜨리고 900여급을 베었다. 철갑을 덮어씌운 거북선 두 척도 최후의 일전인 이 싸움에 종횡으로 활약하여 격렬하였던 것이었다. 때는 정오나 되었는데 적의 손해는 하룻밤 사이에 700여척을 초과하였다. 적은 싸우다 못 견뎌서 근근이 50~60척의 배를 남겨 가지고 도진의홍 송포진신 모리민부의 무리 제장은 죽기 살기로 일조 혈로를 뚫고 포구로 도로 나가 노량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 싸움에 만일 명나라 수군이 힘써 끝까지 거들어 싸웠던들 적은 배 한척도 남아서 돌아가지 못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진린은 첫 번 싸움에 피곤하여져서 군사를 쉬게 하고 보고만 있었다. 이완은 수기를 두르며 제장선을 독려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였다.

고대 중원역사에 “사제갈死諸葛이 주생중달走生仲達”이라 하더니 오늘은 “사순신死舜臣이 축생의홍逐生義弘”이라는 고금의 격담을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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