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53회 ①

이완과 진린의 통곡하는 소리에 비로소 순신의 죽음이 알려졌다. 일시에 통곡하여 노량해상에 곡성이 진동하였다. 전에 없는 대승첩을 한 개가는 고사하고 진린 이하 명나라 제장과 조선 제장들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눈물을 씻었다. 순신의 시체가 누운 대장선의 판옥층루로 들어왔다. 순신의 누운 자리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이순신의 전격전술電擊戰術에 놀라 혼이 나서 묘도에 숨었던 소서행장은 마침내 명의 장수 유정과 진린 무리의 비밀한 전송을 받고 종의지의 구원으로 순신의 함대를 피하여 호구를 벗어났다. 그리고 외양으로 달아나 미조항을 거쳐 창선도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패한 군사를 거두어 오는 도진의홍 등 제장을 만나 같이 합세하여 동으로 가덕도에 정박하였다.

거제도 부근에서 과도직무 입화종무의 무리는 군사를 거두어 귀국하던 중에 노량해협 방면에서 소서행장 도진의홍의 무리가 이순신 진린의 함대에게 곤욕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하려 나섰다. 그랬다가 행장 등이 가덕도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뱃머리를 돌려서 대마도로 가서 기다렸다가 서로 만나 일본으로 들어가니 왜군은 전부가 물러나서 전쟁이 끝이 났다.

일본에서는 수길이 살았을 때에 출정한 제후의 가솔들을 볼모로 잡아 두었던 것을 수길이 죽고 난 뒤에 덕천가강이 차지하여 그들의 처자를 친절히 대해주었다. 출정 제장은 꼼짝을 못하고 덕천가강의 지휘대로 복종하게 되었다. 덕천가강은 제후를 진무1)하기에 여가가 없어서 도저히 이웃나라를 정벌할 형편은 못되고 강화하기로만 힘을 들이는 시국으로 변하였다.

노량과 관음포의 싸움이 끝난 뒤에 진린은 순신의 배 곁으로 오며 “이통제 노야!” 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그는 순신이 자기를 사지에서 구해내어 준 은의를 감격하여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이제야 이완이 뱃머리에 나서서 통곡하며 “숙부는 별세하셨소” 하고 대답하였다. 진린은 이 말을 듣더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엎어지기를 세번이나 하며 “나를 살리려 하여 나를 구해준 뒤에 노야가 유탄에 죽은 것이니 누구를 더불어 다시 천하사를 모의할꼬?” 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이완과 진린의 통곡하는 소리에 비로소 조선군이나 명군이나 다 순신의 죽었음을 알고 일시에 통곡하여 노량해상에 곡성이 진동하였다. 전에 없는 대승첩을 한 개가는 고사하고 진린 이하 명나라 제장과 조선 제장들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눈물을 씻었다. 순신의 시체가 누운 대장선의 판옥층루로 들어왔다. 순신의 누운 자리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순신의 전신에 있던 몇 말이나 되는 더운 피는 이 최후의 전쟁에서 국가를 위하여 다 쏟아버린 모양이었다. 조선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술과 고기를 폐하고 상복을 지어 입은 이가 많았다. 순신의 영구는 고금도 본영으로 돌아갔다.2)

삼도 통제군중에는 하루라도 대장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순신의 영구가 떠나기 전에 그 영구앞에서 순신의 제장이 모여 군사회의를 열고 협의한 끝에 경상우수사 이순신李純信을 그 이름이 이공과 음운이 같다 하여 임시로 총대장을 정하고 명제독 진린의 승낙을 얻어서 그대로 시행되었더니 조정에서 충청병사 이시언으로 삼도통제사를 삼았다.

순신의 죽음 알려지다

순신의 영구가 고금도로 돌아오매 피난하여 온 진신장보3)들과 고금도 백성들이 부모의 상을 당한 듯이 애통하였다. 명제독 진린은 제문을 지어 조전弔奠하고 명나라 제장들도 만장을 걸고 슬퍼하였다. 진린은 은 200냥과 각종 물품으로 후히 부의하였다. 마침내 아산으로 돌아가 안장하고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항곡4)이 1000리 도로에 연이었다. 조정에서는 왕명을 받들어 제문을 지어 조상하고 직위를 정일품 우의정으로 올렸다. 그 제문은 이러하였다.

粤自壬辰 島人猖獗 列郡瓦解 兇鋒孰遏 卿於是時 首提海師 舟創龜船 砲吼虎裂 一擧擊敵 先破玉浦 泗川唐浦 唐項安骨 次第鏖糟 大張我威 雄據閑山 賊莫敢窺 上年之敗 言之痛矣 使卿若在 豈至於此 易置失宜 是予之罪 卿再受任 敗軍之際 收拾板蕩 招募流散 以寡敵衆 克摧鳴梁 中興功業 卿其第一 造艦營糧 用智如神 曾未周歲 舊績重新 協力天兵 進攻無前 艨艟一鼓 士忘其死 天將興歎 虜魄自褫 哀辭乞退 卽渠常態 縱賊生還 尙可爲耶 謀之不臧 卿獨奈何 伏甲邀擊 亦一奇計 半夜潛師 冒死直前 唾手鳴鏑 賈勇身先 將軍令嚴 士氣自倍 煙消赤壁 氛豁靑海 兵興七載 未有此捷 繄誰之功 非卿莫及 那知天意 竟難諶斯 大事垂成 身遽死綏 可愛者卿 功在宗祊 忠節炳炳 沒有餘榮 忍說五丈 嗚呼諸葛 人生於世 一死難免 死得其所 如卿者鮮 長城一壞 保障誰托 予實負卿 卿不負予 贈爵弔祭 豈盡予懷 遣官致辭 惟以告哀

▲ 순신의 영구가 고금도로 돌아오자 고금도 백성들이 부모의 상을 당한 듯 애통해했다.
임진년부터 섬 오랑캐 쳐들어와 모든 고을이 무너질 때에 그 흉한 칼날을 막은 이가 누구인가! 이때에 경이 나서서 해군을 거느리고 일거에 적장을 없애고 우리의 위엄을 크게 펼쳤도다. 한산도에 응거하매 적은 감히 엿보지를 못했고 바다 오른쪽을 차단함을 오직 경에게 의지했었는데 지난해 패한 그 원통함을 어찌 말할까. 경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있게 하였던들 어찌 이 지경이 되었겠는가.

대장을 바꾸는데 타당함을 잃었으니 이는 나의 죄로다.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청한들 그 깨진 것을 기워줄 수 있으리오. 경이 다시 책임을 맡아 무너진 뒤를 이어 혼란을 수습하고 흩어진 군사를 모아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적하여 해적들을 물리치매 나라를 다시 세운 공은 그대가 제일이로다. 배를 만들고 군량을 마련함에 귀신같은 지략을 써서 일 년도 못 되어 옛 모습이 거듭 새로워졌도다.

명군과 힘을 합쳐 적진을 진격할 때 몽충 북소리에 군사들은 죽음을 잊고 천장은 감탄하고 적은 혼이 빠져 물러가길 애걸하니 오랑캐의 본 모습이로다. 적을 놓아 살려 돌려보내는 일을 차마 어이하겠는가만 도모함이 감춰지질 않으니 경이 혼자 어찌 하리오. 매복하고 요격하는 것 또한 전술의 한 가지요. 이 적을 멸한 뒤에 아침을 먹자하니 그 뜻이 더욱 장하도다. 깊은 밤에 군사를 내어 죽음을 무릅쓰고 손바닥에 침 뱉고 화살을 쏘며 용맹을 앞서 나갈 때 장군의 엄명에 사기는 배가 되고 적벽에 연기가 끊어지매 푸른 바다에 요기가 걷히도다.

전쟁이 일어난 지 7년에 이런 승첩이 없었나니 아! 누구의 공이랴! 경이 아니면 미칠 자가 없건만 하늘의 뜻을 어이 알리 헤아리기 어렵도다. 큰일을 이루고 나니 갑작스럽게 순절하도다. 아끼는 자 경이여! 공은 사직에 있고 충절은 빛나 죽은 뒤에도 영광이 남았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남에 한 번 죽는 것을 면하기 어려우니 죽을 곳에서 죽은 것이 경과 같은 자가 드물도다. 장성이 단번에 무너지니 누구에게 의지할까! 나라에 복이 없으니 하늘만 아득하네. 나는 그대를 버렸건만 그대는 나를 버리지 않았도다. 애통함이 이승 저승에 맺혀 그 탄식을 어이하리오. 벼슬을 주고 조상하나 어찌 회포를 다하겠는가! 제관에게 글을 붙여 이로 그 슬픔을 아뢰노라.

한성에 주둔한 명나라 군문총독 병부상서 형개가 일부러 선조를 찾아보고 이순신 같은 위대한 영웅을 한번도 대면하지 못하고 죽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하고 남방해상에 국영으로 사당을 세워 그 대공을 보답하라고 권하였으나 난후 국사가 안정되지 않아 아직 시행되지 못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신의 뜻을 유념하여 그 부하인 유형을 천거하여 통제사를 삼고 이순신李純信으로 훈련대장을 삼았다. 그 뒤에 이완을 등용하여 충청병사를 삼았다.

죽음에 이른 후 공신으로 책봉된 순신

명나라 군사도 다 거두어 들어가게 되었다. 경략사 만세덕만 조선에 두고 총독 형개를 위시하여 마귀 진린 유정 동일원의 4제독은 들어갔다. 제장중에 진린은 공이 제일 많아서 동정의 원훈이 되어 중원에서 봉작까지 받았다. 이것은 이순신이 진린에게 공을 돌린 효과였다.

▲ 선조는 이순신의 공을 치하하고자 선무원훈으로 책봉했다. 그러나 순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명나라로 돌아가는 날에 선조가 한강진에 나와 전송할 때에 진도독은 순신을 생각하여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국왕을 보고 “성을 버리고 군사를 잃고 적을 피하여 도망하던 무리들이 다 공신이라고 자처하여 자기 방 창 아래에 늙어 죽도록 영화를 누리건만 이순신하여는 그 혁혁한 충렬과 공훈으로 결국 몸이 죽음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보답이겠습니까” 하고 슬퍼하였다. 선조도 진린의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조정에서 논공포상하게 되어 이순신으로 선무원훈宣武元勳을 책봉하고 좌의정 덕풍부원군으로 하였더니 정조 대에 이르러 영의정으로 더하였다. 그래서 사당 위패에는 “삼도통제사 증영의정 덕풍부원군 유명수군도독 시충무 이공三道統制使贈領議政德豊府院君有明水軍都督諡忠武李公”이라는 25자로 정서하였다. 그때에 원훈책봉한 교유서를 아래에 적어 참고가 되게 한다.

王若曰 藎臣之乂國家惟滅敵可以報君 聖王之獎勞伐惟昭德可以酬勳 追擧茂典 式褒元功 將有板蕩之大亂 必生魁傑之偉人 使其 才全文武 識洞幾權 智足以挾萬人之能 勇足以奪三軍之氣 捍衛社稷安國祚於幾亡 盪戮鯨鯢挫敵勢於方熾 似周家之再造恃方召之竭誠 若唐室之中興仗李郭之協策 天降豁于我邦 予未堪於多難 痛九廟之腥穢無以擧顔 哀八路之芟夷每至惕慮 慷慨擊楫孰爲祖逖之奮義 感激登舟頼有溫嶠之誓師 方敵艦之直指湖南 獨水兵之沮遏海道 向非累捷將毒痡乎炎維 若逞兇圖必禍延于西鄙 保疆埸而奠重恢之業 集散亡而摧再擧之鋒 是豈特名震於戎垣 抑可謂勳冠於當世 胸呑造化謀出鬼而入神 手斡風雲氣軒天而撼地 早歲定遠之投筆 餘事養叔之穿楊 威行關塞擒羯酋而靖邊 謀守營田防鹿島而却虜 究神䑡飛䑰之制刱爲龜船 蒐乘流擊櫂之夫嚴簡虎士 凛若常對大敵 屹然如恃長城 逮劇寇之羆呑 阻巨溟之豕突 鐵軸牙檣鼓陽侯而耀武 熊幢羽旆檄天吳而折衝 寧與賊而俱生 願爲臣而致死 玉浦奮擊宇宙爲之霽氛 露梁鏖糟滄海爲之變血 飛彈逬脰而色不動 砲火熏身而目不撓 遂殲萬艘之斑衣 更活三韓之赤子 軍聲丕振於服遠方慴膽於殊隣 朝命或廢於知難卽含寃於鄷獄 迄致艅艎之失水 良由廟算之乖宜 予慚負乎貞良亟還帥柄 卿益勵乎忠憤直抵寧津 掇拾灰燼之餘 收合瘡殘之卒 十三樓櫓纔結營於碧波 百萬游魂俄染衁於鳴梁 立盾避丸陳璘歎其制變 塗甲冒火季金服其出奇 第待柱標於扶桑 何意神歸於箕尾 魁台增秩俾慰其明靈 香火刱祠覬盡其酬答 鼎彛勒名冠群公而揚號 丹靑繪像首諸賢而紀庸 恩綸渙冊錫備乎臧獲土田 鐵券丹書宥及乎子孫苗裔 傳萬葉而毋替 誓百代而勿忘 於戲 礪山帶河縱阻馬血之同歃 雲臺煙閣儼覩燕頷之若生 惟卿精爽 服予寵光 故玆敎示 想宜知悉

왕이 말한다. 충신이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은 오직 적을 섬멸하여 임금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성군이 공로를 권장한다는 것은 오직 덕을 밝혀 공훈에 보답하는 것이다. 성대한 은전을 베풀어 원훈의 공을 포상한다.

혼란한 세상에 큰 난리가 일어나면 반드시 뛰어난 기인이 생겨난다. 그 재주는 문무를 겸전하고 그 식견은 편안함과 위태함을 통찰하며, 지혜는 능히 만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용기는 족히 삼군의 기상을 빼앗는다. 능히 사직을 수호하여 거의 망할 뻔한 나라의 운명을 안정시키고 왜적을 무찔러 한창 치열하던 적의 기세를 꺾은 것은, 주나라가 재건하는 데 방숙方叔과 소호召虎의 충성에 힘입고, 당나라 왕실이 중흥하는 데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의 협력에 의지한 것과 같았다.

하늘이 우리나라에 재앙을 내리자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했다. 종묘가 피비린내로 더러워지는 것을 통탄하여 얼굴을 들 수 없었으며, 팔도가 온통 살육 당함을 슬퍼하여 늘 근심하였다. 강개하여 노를 치며 충의를 다짐하니 조적祖逖의 의분을 누가 따르랴. 감격하여 배에 오르며 눈물을 흘리니 온교溫嶠의 출진 맹세에 힘입었도다.

바야흐로 적의 함대가 곧장 호남으로 향할 때 홀로 수군이 바닷길을 막았으니 그때 만약 거듭되는 승리가 없었다면 남방에 해독을 끼쳤을 것이요, 만약 흉적의 계책을 그대로 폈다면 반드시 서쪽에 화가 미쳤을 것이다. 강토를 보존하여 나라를 회복하는 업적을 이루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재침한 적의 칼날을 꺾었다. 이 어찌 명령이 다만 대장의 자리에서만 떨쳤겠는가. 그 공훈이 당대에 으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에 변화를 품어 계책이 귀신의 경지를 넘나들었고 손으로 풍운을 부려 기운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젊어서 반초班超처럼 붓을 던지니 남은 일은 양유기養由基처럼 활쏘기였다. 위엄을 변방에 떨쳐 오랑캐 추장을 사로잡아 국경을 안정시키고, 둔전을 운영하여 녹둔도를 막아 오랑캐를 물리쳤다.

옛날의 신기하고 날랜 배 만드는 법을 참고하여 거북선을 창제하고, 물에 익숙하고 노를 잘 젓는 장정을 모으고 엄격하게 무사를 뽑았다. 늠름함은 항상 큰 적을 대한 것같이 하고 드높은 기상은 장성長城을 의지한 것 같았다. 사나운 적이 곰처럼 우리를 삼키려 할 때에 큰 바다에서 돼지처럼 맹렬히 달려드는 적을 막았다.

철갑선의 상아 돛대로 물귀신을 두드리며 무용을 밝게 드러내고, 깃발로 해신에게 격문을 보내 적을 격파했다. 어찌 적과 함께 살 수 있으랴. 신하로서 목숨 바치기를 바랐다. 옥포에서 분격하니 하늘도 안개를 걷어 주고, 노량에서 모조리 무찌르니 푸른 바다물이 피로 변하였다.

▲ 충신이 임금에게 보답하는 것은 적을 섬멸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날아오는 탄환이 어깨를 뚫어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고, 포탄의 불길이 몸을 그을려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드디어 1만척의 왜군들을 섬멸하여 좀먹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다시 삼한의 백성들을 살려냈다.

군대의 함성이 멀리 감복시킨 데까지 크게 떨치고 이역에서도 두려운 마음을 느끼게 했으나 조정의 명령은 어려움을 알면 물러난다는 것을 알아주지 못하여, 바로 원한을 풍옥5)에 맺히게 하였다. 마침내 큰 배가 물길을 잃은 것은, 참으로 조정의 계책이 잘못된 탓이다. 나는 곧은 충신을 저버린 것이 부끄러워 급히 장수의 권한을 돌려주고, 경은 충성으로 분발하기에 더욱 힘써서 곧장 회령포로 갔다.

불에 타고 남은 배를 수습하고 피폐한 병졸들을 거두어 모아서 13척의 다락배로 비로소 벽파정에 진을 쳤는데, 100만 장졸들의 떠도는 넋이 명량 위에 피로 물들였다.

방패를 세워 탄환을 피하게 하니 진린이 그 임기응변에 감탄하였고, 갑옷에 진흙을 칠하여 포염을 무릅쓰게 하니 계금은 그 기이한 계책에 감복하였다. 부상에 경계 표시 기둥 세우기를 기다렸는데, 영혼은 기미성 기미성6)으로 돌아갔는가.

좌의정으로 품계를 더하여 그 혼령을 위로하고 사당을 창건하여 향불을 피우고 그 보답을 다하고자한다. 종묘 제기에 이름을 새겨서 여러 공신들의 으뜸이 되게 하여 이름을 드날리고 채색으로 화상을 그려 여러 현인들의 첫머리에 공로를 기록한다.

은총의 윤음과 찬란한 교서로 노비와 전답을 내려주고, 단서 철권으로 자손과 먼 후예에게 혜택이 미치게 한다. 만대에 전하여 고치지 말고, 백대에 맹세하여 잊지 말라.

아! 산이 숫돌이 되고 강물이 허리띠가 되도록 산이 숫돌이…되도록7) 말의 피를 마시고 함께 맹세하지는 못할지라도 운대8)와 능연각9)에 그대의 모습이 살아있음을 엄연히 바라보리라. 경의 혼백은 나의 은총을 입을 것이기에 교시하니 마땅히 잘 알리라 생각한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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