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PP 참여 논란

▲ 정부의 TPP 참여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과 유럽시장의 위상이 예년만 못하다. 세계 각국이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성장판을 찾고 있는데, 아시아가 단연 1순위로 꼽힌다. 중국이 역내 교역을 늘리려는 것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G2(미ㆍ중)가 아시아 시장에서 격돌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은 알게 모르게 G2 중 어느 한곳을 선택해야 하는 얄궂은 처지에 몰렸다. 특히 일본은 TPP에 서둘러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기 때문에 TPP엔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쳐 짭짤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이런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느닷없이 TPP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 왜 일까. TPP 논란을 취재했다.

# 2012년 말, 이명박 정부가 한ㆍ중ㆍ일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고 있을 때다. 한 국제외교금융 전문가는 정부의 FTA 추진을 이렇게 비평했다. [※ 참고: 이 전문가는 예민한 시기인 만큼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정부는 의도했든 안 했든 절묘한 외교적 선택을 했다. 한미 FTA는 체결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ㆍTrans Pacific Partnership)에 가입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G2(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잘만 하면 우리가 G2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전문가는 자신의 의견이 ‘통설通說’이라고 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TPP에 불참한 MB정부의 결정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13년 12월. 집권자가 바뀐 탓인지 TPP를 바라보는 정부의 눈도 함께 변했다.

# 올 11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ㆍTrans Pacific Partnership)’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국민에게 TPP를 충분히 알리고, 이해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자리. 그런데 이 공청회는 고작 45분 만에 끝났다. TPP의 타당성을 따지기 보다는 ‘당장’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위한 구색맞추기식 공청회 같았다. 그로부터 보름 후, 정부는 TPP에 관심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공청회를 통해 초기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FTA의 실익을 최대한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TPP 참여가 부르는 허와 실을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PP의 쟁점은 크게 경제적ㆍ국제정치적 관점 두개다. 먼저 경제적 관점을 보자. TPP는 관세철폐로 자유무역을 실현하려는 지역무역협정이다. FTA와 맥락은 같지만 관세철폐품목 예외규정이 없고, 공공서비스 등의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어 좀 더 강력한 무역협정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6월 뉴질랜드ㆍ싱가포르ㆍ칠레ㆍ브루나이 4개국 간 협정으로 출발했다가 2010년엔 미국ㆍ호주ㆍ베트남ㆍ페루ㆍ말레이시아가, 2011년에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올해는 일본까지 합류하면서 파이가 커졌다.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TPP의 최대 장점은 강대국의 주도로 출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신흥국이나 개도국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크다는 거다. 찬성론자들이 TPP에 조기참여해 발언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반대논리도 만만찮다. 한국은 TPP 가입 12개국 중 8개국과 FTA를 체결ㆍ발효(호주는 2013년 12월 5일 타결)했는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거다.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ㆍ뉴질랜드ㆍ캐나다ㆍ멕시코 중 일본을 뺀 나머지 3개국과의 교역량은 전체의 2%대(2012년 기준 전체 수출액의 2.95%)에 불과하다. ‘TPP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정부의 행보가 지나치게 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쟁점은 G2(미ㆍ중)가 자유무역을 통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TPP, 중국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ㆍASEAN 10개국+한ㆍ중ㆍ일)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TPP 참여로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G2로 부상한 중국의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의 심기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중국의 GDP 대비 소비 비중은 36%에 불과하다. 다른 국가의 평균 65%의 절반 수준이다. 이는 중국 소비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경제가 연착륙하려면 수출을 늘리는 방도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의 수출비중은 미국과 유럽이 가장 크다. 미국ㆍ유럽경기가 회복하지 않으면 중국 수출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투자가 부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차이나 리스크’다. 중국이 최근 아시아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체결에 힘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 교역을 늘려 경제침체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TPP를 자신들의 입지를 흔드는 ‘무기’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TPP 참여로 가닥을 잡으면 미국에 힘을 실어준다는 인상을 풍길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의 수출액도 미국보다 중국이 많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약 585억 달러지만 대중 수출액은 1343억 달러에 달한다. 대중 무역수지도 미국(152억 달러)보다 3.5배나 많은 535억 달러다. 많은 국제전문가들이 ‘TPP 참여 신중론’을 주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TPP는 기존 FTA를 대체하는 게 아니다. TPP와 FTA는 각기 다른 효력을 발휘한다. 기업 입장에선 참고해야 할 수출이나 수입의 관세기준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 각기 다른 기준을 분석하는 데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김양희 대구대(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시장에 접근하는 방법이 늘어나다 보면 스파게티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ㆍ나라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ㆍ표준 등으로 시간과 인력이 늘어나 기대효과가 떨어지는 것)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FTA를 놔두고 중복적인 협정을 진행하다보면 인력이 모자라 졸속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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