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말하는 ‘스탠더드 이코노미’

▲ 이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스텐더드 이코노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스탠더드 이코노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든 국가와 기업은 ‘기술표준’을 무기로 무역을 규제하거나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일생생활에서도 ‘생활표준’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The Scoop가 표준 전문가에게 답을 구했다.

여기 작은 연필심이 있다. A사는 연필심 기둥을 1㎜로, B사는 2㎜로 만든다고 치자. 어느 기업의 연필심이 단단한지는 모른다. 그런데 B사가 2㎜ 연필심의 내구성耐久性이 가장 뛰어나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B사의 ‘2㎜’는 연필심을 만드는 스탠더드(Standard·표준)가 되고, B사는 이를 적용한 다른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 챙긴다. 표준을 선점하는 건 이처럼 중요하다.

미국 상무부 국가표준연구원 전 원장 캠머가 “이젠 신新경제가 아니라 신표준경제 시대”라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례도 많다. PC운용시스템의 표준은 ‘윈도(window)’다. LNG선의 ‘맵브레인 방식의 구조설계표준’을 장악한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는 매년 수천억원대의 로열티를 벌어들인다.

 
그렇다고 시장의 표준을 누구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기술력이 없으면 표준을 제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표준경제시대’를 이끌 만한 능력이 있다. IT·제조기술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재학 서울산업대(기계설계) 교수, 허경옥 성신여대(생활문화소비자) 교수, 한필순 한국표준학회 이사, 양희정 KTCS 센터장, 박종섭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연구관, 최동관 한국표준협회 연구원 등 표준 분야 전문가 6인에게 답을 구했다. 사회는 이재학 교수가 맡았다.

+ 표준의 정의가 애매모호하다는 평이 있다.
한필순 한국표준학회 이사(이하 한필순) : “표준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처리할 때 쫓을 만한 기준, 규범, 목표다. 사람이 태어나서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생활관습을 배우는 것은 표준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최동근 한국표준협회 연구원(이하 최동근) : “산업표준이란 산업제품의 생산·유통·소비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이를 표준화하기 위하여 규격·품질·성능 등을 통일해 기준으로 정한 것이 표준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이하 허경옥) : “기업 혹은 국가마다 다른 표준을 설정하고 있는데, ISO(국제표준화기구)는 각기 다른 산업부문별 표준을 ‘국제적 표준’으로 만들고 있다.”

 
+ 한국은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산업표준화 작업’을 진행했다. 공과 과를 평한다면.
한필순 : “1960년대 공업표준화법을 제정한 게 ‘표준화 작업’의 출발점이다. 정부 주도로 작업을 추진한 덕에 ‘표준화의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민간의 능력이 함께 배양되지 않은 건 숙제로 남아 있다.”

박종섭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연구관(이하 박종섭) : “1960년대엔 민간기업이 ‘표준’이라는 의미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산업표준의 중요성을 정부가 먼저 인식한 건 분명히 ‘공’이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걸맞은 표준화 작업을 꾀하는 덴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허경옥 : “지난 자료를 분석해 보면 표준 부문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신新수요 분야의 표준연구가 미흡하다. 이는 한국의 표준화 작업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제 민간 주도로 표준화 작업을 해야 할 때다.”

▲ 표준 경제학 관련 토론을 진행 중인 전문가들. 왼쪽부터 이재학 교수, 허경옥 교수, 박종섭 연구관, 최동근 연구원, 양희정 센터장, 한필순 이사.

+표준화 작업의 공과를 소비자·생산자 입장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동근 : “생산자는 표준화 작업을 통해 합리적 생산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노동생산성과 생산능률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원가도 절감했다.”

양희정 KTCS 센터장(이하 양희정) : “소비자 측면에서 표준화 작업의 의미는 더 크다. 생산시스템이 단순해지면서 양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게 표준화 작업의 최대 성과가 아닐까 한다.”

 
+ 표준을 둘러싼 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현황은 어떤가.
한필순 : “세계무역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표준을 선점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시장에서의 승자냐, 패자냐가 판가름날 정도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제품을 표준화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있다.”

박종섭 : “미국은 모든 기술표준을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무기로 사용한다. 미국기업이 개발한 기술표준은 ‘특허’라는 미명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러면 그 기업은 자신들의 기술표준으로 경쟁사를 제압하려 한다.”

최동근 : “얼마 전까지 삼성전자와 애플이 국제표준특허를 두고 싸우지 않았나. 대표적 사례다.”

+ 한국이 표준 관련 시장을 이끌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허경옥 : “표준이 매년 25억 파운드(약 4조60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또한 표준이 노동생산성 증가의 17%가량에 기여한다. 그런데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등록돼 있는 국제표준 2만여종 가운데 ‘메이드 인 코리아’ 표준은 109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국제표준화 활동을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다. 최근 5년간만 따지면 국제표준 72%를 우리가 선점하고 있다. 우리의 표준화 작업이 경쟁력이 있다는 걸 정부와 국민이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은 자신감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박종섭 : “맞는 말이다. ISO의 한국인 간사수는 17명으로 12위다. IEC(5명)은 9위다. ISO와 IEC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것이다. 앞으론 간사의 수가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한필순 : “관세장벽이 낮아지면서 선진국·신흥국 모두 ‘무역기술규제(TBT)’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글로벌 시험인증시장 역시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이젠 정부보단 민간 주도로 세계시장에서 싸움을 해야 한다.”

최동근 : “세계는 지금 자유무역시대다. 국가간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국제표준을 도입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 표준기술이 전체 무역의 80%에 영향을 끼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국내 기업 스스로 ‘표준선점 경쟁’에 나서야 한다.”

양희정 : “표준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아쉽다. 표준화를 등한시하는 민간기업도 아직 많다.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라는 PC운용시스템 표준 하나로 글로벌 기업이 됐다.
+ 정부의 역할이 아직은 필요하다는 건가.
양희정 : “그렇다. 정부의 지원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현재 국내 시험인증기관은 1600여개로, 기관당 평균 매출은 8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국내 인증시장 규모가 2조6000억원에 달하는데, 그중 50% 이상을 글로벌 기관이 점유하고 있다. 민간을 살려야 표준의 생태계가 살아난다.”

+사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표준 중복 현상’에 있다. 부처별로 표준의 중복유형이 2014개에 달한다. 112개의 법정인증제도와 73개의 민간인증제도도 충돌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빨리 개선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최동근 : “옳은 지적이다. 무엇보다 어떤 표준을 인증받으려면 각 부처별로 별도의 실험을 거쳐야 한다. 기업으로선 금전적·시간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부처이기주의를 없애지 않는다면 ‘표준경제’ 시대를 리드할 수 없다.”

한필순 : “국가표준이 ‘KS’ ‘기술기준’ 두개로 운영돼 유사규제들이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박종섭 : “정부는 국가표준인증제도 선진화를 목표로 부처별 인증제도의 중복성과 불합리성을 개선하고, 범부처 참여형 단일 국가 표준체계를 구현하고 있다. 기업·소비자 중심의 시험인증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표준 중복 현상 때문에 기업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을텐데.
한필순 : “당연하다. 중소기업 한곳당 14.9개의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취득·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평균 3230만원이다. 표준 중복 현상을 없애면 기업으로선 비용절감을 꾀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표준이 산업기술에서 생활표준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정부도 생활표준 관련 대책을 발표했는데, 정의가 무엇인가.
허경옥 : “생활표준을 쉽게 말하면 이렇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표준기준을 적용해 불편함을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지역 간에 상이하게 운용되는 선후불 교통카드를 국가 표준으로 일원화해 전국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활표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동근 : “사회가 갈수록 고령화·정보화·자동화되고 있다. 표준의 역할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종섭 : “정부가 ‘국민행복표준’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표준이 일상생활에 파고들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런 표준이 요즘 제조에서 서비스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걸 종종 느낀다.”

 
+ 생활표준을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허경옥 : “최근 기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 표준화’가 바로 생활표준의 단적인 사례다.”

양희정 : “KTCS(KT 계열사)는 토털콘택서비스기업이다. 기업 특성상 사회소외계층, 체납자 등을 대상으로 정부 시책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도움을 요충하는 ‘콜’의 수가 들쭉날쭉해 상담사의 업무부담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하트너’라는 기업문화를 조성했고, 전 직원이 1인 56시간의 표준화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표준화 과제로 멀티상담시스템을 구축해 업무 프로세스 개선하고 정보공유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KTCS가 서비스혁신 대통령상(2007), 한국서비스품질 우수기업(2010), 2년 연속 대통령상을 잇따라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표준화 작업 이후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개선되고 업무부담감은 줄어들었다. 특히 신규직원의 적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박종섭 : “생활에 표준을 적용하면 국민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가령 세제사용, 고추장 맛등급, 산후조리원·예식장을 표준화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행복표준화 과제’도 이런 맥락이다.”
박병표 기자 tikitiki@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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