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수 오비맥주 사장

▲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은 ‘제품이 아닌 나’를 파는 것이 오비맥주의 영업 전략이라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오비맥주는 시장 점유율 59%의 1등 회사다. 이 회사는 2년여 전까지 15년 동안 업계 2위였다. 장인수(58) 오비맥주 사장은 이 역전극의 주역이다. 고졸 출신의 외국계 기업 CEO인 그는 주류 영업 34년 경력의 영업통이다. 4년 전 오비에 영입될 당시의 직함인 영업본부장직을 여태 유지하고 있는 그는 “제품이 아니라 나를 팔라”고 말했다. 고졸 샐러리맨 신화 장인수의 소통 경영론.

✚ 단적으로 하이트를 추락시킨 영업 비밀이 뭔가요?
“오비맥주는 사업자등록상 제조업체지만 주류 영업은 서비스업입니다. 서비스업자는 결코 갑이 될 수 없어요. 항상 을의 자세로 거래처를 대해야 하죠. 자기 제품을 팔기 전에 먼저 자신을 팔 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사게 만들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아야 합니다.”

2010년 그가 하이트진로를 떠나 오비맥주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오비는 업계 2위였다. 그런데 2등이 1등을 추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쫓기는 형국이었다. 월말이면 출고 실적을 부풀리느라 맥주를 도매사 창고에 쌓아두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했다. 그는 전임 사장과 대주주에게 잘못된 영업 관행을 바로잡고 적정 재고를 유지하게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6개월 후에도 시장 판도에 변화가 없으면 사표를 쓰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는 월말 출고분을 줄이고 월초에 출고시킨 후 영업사원들을 독려했다. 밀어내기 중단 후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이 4개월 만에 회복됐다. 단지 밀어내기를 근절해 유통기간을 단축했을 뿐인데 소비자들 사이에서 “카스의 제조 레시피가 바뀌었느냐”는 말이 나왔다. 제품의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직원들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마침내 15년 만에 전세를 역전했다.

“카스의 고유한 경쟁력을 살렸을 뿐입니다. 발효식인 맥주는 공장에서 막 나왔을 때 가장 맛이 좋은데, 특히 비열처리맥주인 카스는 신선도가 생명이에요. 이 평범한 진리를 판매 실적을 올리느라 그동안 외면했던 거죠.”

 
오비의 대표 맥주인 카스는 그가 진로에서 일할 때 처음 선보인 진로 제품이었다. 훗날 이 카스를 만들던 진로쿠어스가 오비에 합병됐다.

그는 자칭 순고 출신이다. 전남 순천 출신이라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순천고를 나온 줄 알지만 그는 대경상고를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순고란 순수한 고졸이란 뜻이다. 그는 고졸이지만 가방 끈을 늘리려 야간대학이나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외국계 기업의 영업통 고졸 CEO

✚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뭐라고 보나요?
“솔선수범입니다. 이스라엘군이 강한 건 장교들이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면 장교들이 많이 죽지만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죠.”

✚ CEO가 현장을 잘 모르면 무슨 문제가 생기나요?
“현장과의 소통이 잘 안 이뤄지고 의사결정이 늦어지죠. 그런 상태에서 내리는 지시는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탁상 경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는 2012년 6월 사장에 내정됐다. 외국계 대기업의 영업통 고졸 CEO.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사장 취임 소식을 전해들은 도매사 사장들이 축하 화분을 보냈다. 회사 창립기념일에도 몇십개가 고작인데 약 350개가 들어왔다. 용기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생산에 문외한인 것이 걱정이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3개 공장 생산직 전원과 소그룹으로 대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임원들이 무리라며 말렸다. 이천ㆍ청원ㆍ광주 공장을 돌며 30명 단위로 그룹을 지어 일과 후에 간담회를 했다.

공장에 회식을 할 만한 구내식당과 시음장이 있었지만 공장 앞의 서민적인 식당들을 ‘순례’했다. 공장 안에서 회식을 하면 10만원짜리 뷔페도 짬밥으로 여기는 정서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분과 안면을 트려고 왔다”고 말하고서 막내부터 시작해 30명에게서 질문과 건의를 받고 이어서 건배 제의를 하게 했다. 할 말이 없으면 노래라도 하라고 시켰다. 그때그때 그가 답변을 하고 수용할 수 있는 건의는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3시간 반 이상 걸려 대화를 한 후 그가 일어나 건배사를 했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몇 명 안 되는 여직원들이 그가 시키는 대로 “네 오빠”로 화답했고, 이어서 남자 직원들이 “네 형님” 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술은 물론 자기들 손으로 생산한 맥주를 마셨다. 직원들의 요청으로 인증샷도 여러 컷 찍었다. 출근길에 집사람에게 “사장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했더니 “이제 핑계 댈 게 없어 사장님과의 약속이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총 30차례의 간담회에서 나온 441건의 건의 중 400여건이 수용됐다. 기계의 노후화를 피부로 느낀 현장 직원의 건의에 따라 맥주 주입기와 살균기가 교체됐다. 회사 홍보용 휴대전화 컬러링을 제작해 보급한 것도 한 직원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공장 인근 자신의 출신학교를 지원해 달라는 청원공장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 학교에 시설을 기증했다. 

▲ 장인수 사장이 지난해 생산직 직원과의 간담회에서 직원들과 포즈를 취했다.(사진=오비맥주 제공)
6개월의 대장정이 끝나자 직원들이 달라졌다. 전년도보다 판매량이 늘었는데 생산 현장에선 연장 근무가 오히려 줄었다. 생산성이 높아진 덕이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무슨 효과입니까?
“회사의 진정성을 느낀 것 같습니다. 20~30년 근무한 고참 직원들이 사장과의 이런 회식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또 그 자리에서 수용하지 못한 건의 사항은 해당 부서에 바로 전달했고 검토 후 신속하게 피드백을 했어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현장 사람들이 회사가 바뀌고 있구나 하고 느낀 거죠.”

즐겁게 최선 다하면 실적 따라와

✚ 월요일에 빨리 출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회사가 되면 실적도 좋아지나요?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치 목표에 연연하지 않고 저마다 즐겁게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웃음이 넘치는 직장을 만들면 실적도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목표 달성하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안했지만 오비는 밀어내기를 없앤 후 43개월째 목표를 달성 못한 적이 없습니다. 목표에 대한 언급은 매월 한 차례 전 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몇 달에 한 번씩 ‘우리는 손맛(장 사장이 구사하는 목표 달성을 뜻하는 은유)을 이어가고 있다’고 쓰는 게 다예요. 목표 달성보다는 1등으로서 항상 자만하지 말자고 쓰죠.”

오비맥주는 올 하반기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지난 여름 광주 공장에서 맥주 원료를 발효 중이던 탱크를 빈 탱크로 잘못 안 직원이 세척액인 식품용 가성소다를 넣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하나 설거지용 주방 세제를 음식에 넣은 셈이다. 뒤늦게 가성소다가 혼입된 맥주를 자진 리콜하기는 했지만 국감에서 질타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 가성소다 혼입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고,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자발적 회수에 따른 금전적 손해,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의 비용을 치렀지만 좋은 약이 됐습니다. 자칫하면 자만할 수 있었는데 조기 경보가 울린 셈이죠. 발효에 한달가량 걸려 시차가 생겼을 뿐 사건인지 직후부터 ‘정직이 최선의 방책’ 이라는 생각으로 있는 그대로 발표를 했습니다. 의혹을 남기면 그 의혹을 감추려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죠.”

✚ 존경받는 상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아랫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나요?
“어느 세미나에 갔더니 강사가 ‘존경 받는 상사와 일하는 샐러리맨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저야 상사의 위치에 있으니 역지사지를 해 보면 존경 받는 상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 돌아보면 과장 땐 선임 시절 선배 과장에 대해 품었던 불만을 사지 않으려 했고 부장 땐 과장 시절, 임원이 되고 나서는 부장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솔선수범과 더불어 충실한 소통을 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격의 없이 어울리려 애씁니다. 직원들 앞에서 망가지는 거죠.”

국산 맥주 맥아비율 낮다는 건 오해

✚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품질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내산 맥주의 품질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자극적인 한국 음식은 맥주와 잘 맞지 않습니다. 한식과는 본래 음식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소주 문화가 발달한 겁니다. 국내산 맥주는 대부분 가벼운 맛의 라거 식인데, 말하자면 이런 고유의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게 이 라거 제품이에요. 오비도 맛이 강한 에일 식 맥주를 생산합니다. 2008년부터 라이선스 생산을 하는 벨기에 맥주 호가든이 바로 에일 식이죠. 호가든은 세계적으로 라이선스를 받은 회사가 전 세계에서 두곳밖에 없는 까다로운 제품이에요. 세계 최고의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는 1988년부터 우리가 만들고 있습니다. 오비의 연간 맥주 수출액 규모가 국내에 수입되는 전체 맥주 수입액의 1.7배입니다. 경쟁사까지 합치면 수출액이 수입액의 3배는 될 거예요. 오비는 호주 등 선진국에 카스, OB골든라거 등 자체 브랜드로 수출할뿐더러 홍콩 시장점유율 1위의 블루걸 등 세계 30개국에 40여종의 맥주를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합니다.”

 
✚ 국산 맥주의 맥아 비율이 낮은 건 사실 아닌가요?
“주세법이 맥아 비율이 10% 이상이면 맥주로 규정해 빚어진 오해입니다. 과세를 위해 맥아 비율을 이렇게 낮게 정해 놓았지만 국내산 맥주 대부분이 70% 이상입니다. 맥아 비율이 맛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세계적인 유명 맥주 중 맥아 비율이 50%인 것도 있어요.”

그는 경쟁사인 하이트진로 출신이다. 하이트주조ㆍ주정 대표이사로 있다 오비에 영입됐다. 오비로 옮길 당시 그는 영어를 쓰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를 관철시켰다. 사장 취임 후엔 입사원서의 영어성적 기록란을 없앴다. 영업ㆍ관리직 사원 응모자격에서 4년제 대졸 이상이라는 학력제한을 폐지했고, 여성 영업사원 채용도 늘렸다.

“영어를 못하기도 하지만 외국 바이어와 만나도 저는 우리말로 이야기합니다. 인사말 정도야 영어로 할 수 있지만 그조차 안 합니다. 외국 사람들 그런 것 갖고 시비 안 해요. 영업사원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영어 단어야말로 도매사 사장과의 소통을 되레 방해합니다.”

고졸 학력에 그친 건 성적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대학에 못 간 불효를 그는 IMF 체제 당시 만회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아버지 친구의 잘나가는 아들들이 직장에서 줄줄이 명퇴를 당할 때 그는 오히려 부장으로 승진했다. 뛸듯이 기뻐하던 아버지는 그로부터 5개월 만에 세상을 등졌다. 그는 운짱運將을 자처한다. 덕장도, 지장도 아니고 운을 타고 난 운짱이라는 것. 하지만 이런 복도 노력 없이는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부족한 게 많아 늘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했어요. 스펙을 잘 갖췄다면 아마 나태해졌을 거예요.”

✚ 외국계 회사로서의 한계도 있지 않나요?
“부적절한 관행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범법 행위는 절대 못하게 돼 있죠.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니 더 편합니다. 대주주(KKRㆍ어피니티)가 재무적 투자자이다 보니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책임 경영을 하기가 좋아요. 무한 책임을 지는 대신 무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죠.”

내년 3월께 롯데가 맥주시장에 진출한다. 3파전이 되면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프리미엄급 맥주를 내놓을 거로 봅니다.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지만 올해 수준을 유지한다면 상대적으로는 성장하는 거죠. 30여년 쌓은 경험을 열심히 전수하고 은퇴해야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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