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 감면정비의 불편한 진실

▲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서민 증세로 메우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요즘 ‘세금이 더 늘어난 것 같다’며 한숨짓는 이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비과세 감면체계를 정비하면서 각종 세제혜택이 줄어서다. 돈이 많든 적든 똑같이 내야 하는 일부 간접세의 세율도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增稅는 없다’며 시치미를 딱 떼고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줄어든 세제혜택 대부분이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은 여전히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내년도 예산에는 지난해의 4배가 넘는 과태료가 세입예산으로 잡혔다. 과태료 예산요구액은 755억원이었는데, 그보다 많은 841억원이 책정됐다. 세입예산에 과태료가 들어간 것도, 실제 예산이 요구안보다 높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정부가 ‘과태료 할당량’을 내렸는데, 서민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다.”

익명을 원한 일선 국세청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일선 공무원에게 과태료 징수 할당량을 하달하면서까지 세수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과태료는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똑같이 부담하는 간접세다. 정부가 모자란 국고를 채우기 위해 서민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제혜택, 고소득층ㆍ서민 ‘극과 극’

교통신호ㆍ정지선 위반단속에 일선 경찰들을 대대적으로 투입한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상반기(119억원)의 3.5배에 달하는 범칙금(425억원)을 거둬들였다. 문병호 민주당(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과태료와 범칙금은 국민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계도장치지 국가재정 확보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며 “과태료와 범칙금으로 세수를 충당해야 할 만큼 정부 재정사정이 어렵다면 법인세 등 부자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도 세입예산안에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올려 잡았다. 올해 9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4년 국세 세입예산안에는 내년도 소득세 징수액이 올해 49조8000억원보다 9% 늘어난 54조2000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경기개선에 따른 소득 증가, 명목임금 상승, 고용확대 등이 소득세를 늘려 잡은 근거다. 쌀쌀한 체감경기와는 전혀 다른 분석을 근거로 삼은 셈이다.

부가가치세도 올해 56조6000억원보다 7.4% 늘어난 60조8000억원으로 책정했다. 민간소비 증가와 수입액 상승이 그 근거다. 현행 10%의 부가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연간 세수는 약 5조6000억원 늘어난다. 고소득층이든 저소득층이든 내야 할 세금이 똑같이 늘어나는 셈인데, 양극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간접세는 오르지만 서민을 위한 세제혜택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기 때문에 일부 서민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12월 9일 정책브리핑을 통해 “이번 세법개정안은 총급여 5500만원까지는 평균적으로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세부담 증가자는 전체 근로자(1548만명)의 13%(205만명) 수준이다”며 “세부담이 증가하는 경우도 총급여 7000만원까지는 평균 2만〜3만원 늘어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이 계산한 결과는 정부 발표와 다르다. 지난해 총 급여가 4318만원인 직장인의 내년 연봉이 올해와 같다고 가정하고 소득ㆍ세액공제를 비교해본 결과, 약 6만5000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봉이 오를수록 세금증가폭은 더 커졌다. 지난해 총 급여가 4119만원에서 4325만원으로 200만원가량 오른 직장인은 세액공제로 45만8000원의 세금을 더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부 발표와 납세자연맹의 계산이 다른 이유는 기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됐을 때 의료비ㆍ교육비 등 항목별로 공제혜택이 달라서다. 어떤 항목에 얼마를 지출하느냐에 따라 총급여 3000만~5000만원대 직장인 중에서도 세금을 더 내는 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제 혜택이 줄어든 예는 또 있다. 서민을 위한 시중은행의 비과세저축 상품이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비과세 혜택을 줄이고 있어서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비과세저축 상품은 대부분 보험사가 내놓은 것이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를 위한 취득세 면제혜택도 올해로 끝난다. 대신 부동산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는 내용의 지방세법이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무리 작은 주택을 구입해도 최소 1%(6억원 이하의 경우)의 취득세는 내야 한다. 더구나 1억원이든 6억원이든 똑같은 세율이 적용돼 취득세 영구 인하로 득을 보는 건 자산이 거의 없는 서민이 아니라 중상층인 셈이다.

정부는 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증세가 아니라 비과세 감면혜택을 정비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수가 모자라면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세수확보전략에 ‘부의 재분배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서민, 자영업자, 일부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비과세 감면혜택이 대기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법인세를 보자. 기재부와 새누리당은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복잡한 법인세율 체계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법인세 과세표준은 3단계다. 순수익 기준으로 2억원 이하는 10%, 2억~2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 기업에는 2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법인세율을 하나로 묶는 거다. 거론되고 있는 단일화 법인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5%)보다 낮은 15~20% 수준이다. 하지만 이 세율을 적용하면 대기업 법인세는 줄고 중소기업 법인세는 높아진다. 중소기업들이 법인세 단일화를 ‘중기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법인세 OECD 평균 되면 연 40조원

일부에서는 “OECD 국가들 중엔 10%대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많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2011년 기준으로 스웨덴(15. 7%)ㆍ독일(18.9%)ㆍ프랑스(8.2%)ㆍ그리스(11.0%) 등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들이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사회보장세가 높아 총 실효 세부담률이 적게는 44.6%(그리스), 많게는 65.7%(프랑스)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법인세율은 15.2%, 사회보장세는 13.2%로 총 실효 세부담률은 29.8%에 불과하다.

법인세를 낮춰줄 만큼 국내 대기업들이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자료에 따르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2012년 가계소득비중이 69%에서 62%로 2%포인트 줄어드는 동안 기업소득은 17%에서 23%로 6%포인트 늘어났다.

또 추미애(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상위 10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총 313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정부 총 부채(올해 2분기 기준 518조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은 지금껏 세금감면혜택을 톡톡히 챙겼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감면세액의 93.4%를 매출액 상위 10% 기업(2011년 기준)이 받고 있다. 대기업들은 공제혜택을 충분히 누리면서 현금을 쟁여놓고, 법인세는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5년 동안 비과세 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금융소득 과세강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세수는 48조원이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대기업 위주로 몰려 있는 법인세 공제감면세액을 OECD 평균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연간 약 40조원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 임기 5년 동안 마련하겠다는 세제 정비를 통한 총 목표 세수의 83%에 달하는 금액을 조세정의에 맞게 한번에 거둘 수 있는데, 왜 정의에도 맞지 않는 서민의 호주머니를 뒤지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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