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피트인-동대문 상생 ‘삐걱’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를 양성하겠다.” “동대문과 상생하겠다.” 올 5월 동대문시장에 문을 연 롯데피트인의 선언이다. 실제로 롯데피트인 5층엔 디자이너 브랜드 30개가 입점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롯데가 말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는 2개뿐이다. 나머지는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다. 롯데는 무엇으로 동대문과 상생하겠다고 한 것일까.

▲ 소상공인이 살아나려면 기업이 먼저 상생개념을 가져야 한다. 골목상권은 기업의 먹을거리가 아니다.
올 5월, 서울 동대문에 새로운 복합 패션몰이 문을 열었다. 롯데피트인 동대문점이다. 롯데피트인은 롯데그룹의 계열사 롯데자산개발(이하 롯데)이 운영한다. 건물임대업이 주요 업무인 롯데가 패션몰을 운영하는 것은 다소 의외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롯데피트인은 백화점도 아울렛도 아니기 때문이다. 롯데피트인이 기존 패션몰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5층에 들어선 ‘한류 패션 디자이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디자이너 브랜드만 모아놓았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주도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롯데피트인 5층에 입점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총 30개다. 이곳 매장면적은 약 1818㎡(약 550평).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매장 크기는 제법 다양하다. 약 29㎡(약 9평)의 작은 매장부터 약 99㎡(약 30평)에 달하는 대형매장까지 있다.

5층 한류 패션 디자이너는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표방한다. 롯데가 동대문에 진출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동대문의 우수한 디자이너를 양성하겠다.” “동대문 상권과 상생을 통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동대문 상권의 특성에 맞게 전개하겠다는 얘기다. 롯데가 패션몰의 이름을 ‘피트인(FITIN)’이라고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했다. 5층에 입주한 매장의 ‘보증금’을 대폭 낮춘 것이다. 자본력이 약한 신진 디자이너의 사정을 감안한 조치다. 보증금은 디자이너 브랜드마다 차이는 있지만 약 36.30㎡(약 11평) 매장의 보증금이 대략 1100만원이다.

이는 다른 동대문 패션몰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다. A패션몰 지하 1층 1구좌(약 2.5평)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 보증금은 2200만원이고, B패션몰 1층 1구좌(약 1.2평) 매장 보증금은 1300만~1500만원이다.

롯데가 보증금을 낮추면서까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치하려 했던 것은 새로운 콘텐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기존 백화점이나 동대문 패션몰과 차별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고, 그것이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였다.

흔들리는 상생현장 ‘피트인 5층’

이를 통해 롯데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세가지다. 첫째 동대문과의 상생이다. 자본력이 약해 홍보와 판로가 막힌 신진 디자이너에게 유통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동대문 상인과 동반성장을 실현하겠다는 거다. 나아가 롯데는 ‘K-패션’이라는 한류 전파자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동대문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는 데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롯데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롯데와 동대문의 상생을 실현할 ‘롯데피트인 5층’이 삐걱거린다.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다. 롯데피트인에 정작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별로 없어서다. The Scoop 취재 결과, ‘상생현장’이라는 5층에 둥지를 튼 30개 디자이너 브랜드 중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는 2개에 불과했다. 두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을 뿐 컬렉션이나 공모전에 입상한 적이 없다.

나머지 28개 디자이너 브랜드 중 16개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에 소속돼 있다. CFDK는 한국을 대표하는 160여명의 중견급 이상 디자이너가 모인 패션단체다. 지난해 5월 출범했고, 이상봉 디자이너가 회장을 맡고 있다. 5층 입점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53%가 사실상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인 셈이다.

16개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의 이력은 화려하다. C브랜드의 디자이너는 국내외 패션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한다. 국내 패션디자인 대학원 겸임교수와 한국패션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D브랜드의 디자이너는 중국 브랜드 수석디자이너다. 동시에 국내 디자인교육원 원장으로 활동한다. E브랜드의 디자이너는 해외 명품 브랜드와 디자인 협업을 할 정도로 유명하고, F브랜드의 디자이너는 국내 컬렉션 참가는 물론 뉴욕ㆍ파리ㆍ홍콩 컬렉션에 참가했다.

G브랜드 디자이너는 지식경제부의 지원을 받았고, H브랜드 디자이너는 아이돌 그룹 의상을 제작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다. 나머지 CFDK 소속 디자이너들도 국내외 콜렉션에 다수 참가한 이력을 갖고 있다. CFDK 소속이 아닌 12개 브랜드도 다른 동대문 패션몰이나 백화점에 입점했거나 공모전과 패션쇼에 발탁됐던 브랜드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치해 ‘동대문과 상생’하겠다고 했던 롯데의 명분이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롯데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5층 한국 패션 디자이너만 국한해서 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2층 입점한 동대문 보세 브랜드의 디자이너도 동대문 출신들이다. 그동안 이들이 활동할 만한 제도권 무대는 없었다. 롯데가 그 무대를 활짝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롯데가 ‘동대문 출신’이라고 말한 보세 브랜드는 다른 동대문 패션몰에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동대문과 생상을 하겠다며 마련한 ‘5층 한류 패션 디자이너’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층의 입지가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롯데피트인의 층별 구조를 보자. 의류매장이 들어선 지하1층부터 지상5층을 보면 ‘스포츠브랜드(지하 1층)→여성복(지상 1~2층)→여성ㆍ남성복 혼합(3층)→남성복(4층)→디자이너 브랜드(5층)’ 순이다.

패션몰에서 흔한 구조가 아니다. 인근에 위치한 동대문 패션몰 두타는 다음과 같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포함한 여성복(지하1층)→여성복(지상1층)→여성복(2층)→잡화ㆍ신발(3층)→남성복(4층)’ 순이다. 동대문 패션몰 밀리오레도 여성복이 1~3층에 몰려 있고, 4층에 남성복이 있다.

‘5층 한류 디자이너’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탓에 고객들의 발걸음이 머물지 않는다. 5층 입점해 있는 한 패션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여성복(1~3층)과 디자이너 브랜드(5층) 사이에 남성복 매장(4층)이 있기 때문에 4층 위로 여성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좀처럼 5층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롯데피트인이 디자이너 브랜드를 콘셉트로 내세웠으면 집객효과가 큰 아래층에 구성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객효과 외면한 층 배치

The Scoop가 롯데피트인을 평일 저녁 오후 7~9시에 2시간가량 머무른 결과 층을 올라갈수록 손님이 적었다. 1층엔 100여명의 손님이 머물렀지만 2~4층엔 대략 40~50명밖에 없었다. 5층엔 손님이 20여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1층 매장이 보세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다 보니 5층에 입점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가격경쟁력마저 잃어버렸다. 실제로 1층 의류매장엔 1만~2만원 내외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 관계자는 “5만원 내외 제품을 판매하는데 1~2층의 제품이 저렴해 가격 포지셔닝이 애매하다”고 털어놨다. 롯데피트인이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상징’으로 삼기보다 구색을 맞추는 데 그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 관계자는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적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30개 디자이너 브랜드를 하나의 층에 몰아넣은 것은 어느 패션몰에 가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고 강조했다.

▲ 롯데피트인의 부진은 부동산 임대가 본업인 롯데자산개발의 능력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롯데피트인 안팎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롯데의 능력 부족에서 기인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부동산 임대업이 본업인 롯데가 ‘패션’을 너무 몰랐던 게 문제였다는 얘기다. 미흡한 매장 배치와 MD(상품전개)구성은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디자이너 브랜드 관계자의 말이다. “롯데피트인의 반응이 부진한 것은 결정적으로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층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콘셉트와 고객층이 다른데 이를 무시하니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롯데의 사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롯데피트인이 독특하고 유니크한 콘텐트를 선보이려 했다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전개했어야 했고, 독창적이지만 안정적으로 콘텐트를 구성하려 했다면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으로 구성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옥석 가리듯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섭외하고 선별했어야 했는데 롯데가 그렇지 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롯데도 이런 점을 인정한다. 롯데피트인 관계자의 말이다. “롯데가 동대문 상권에 진출하면서 동대문시장을 파악하는 데 고전한 것은 사실이다. 제도권에 있던 롯데가 동대문의 문화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롯데와 동대문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것이고, 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롯데의 답변은 두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롯데가 롯데피트인을 오픈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롯데는 패션TV(롯데피트인 옛날 건물) 일부 매장소유자가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오픈을 올 3월에서 5월로 미뤘다.

공사가 중단된 약 2개월 동안 롯데는 돈과 시간을 허비했다. 롯데 입장에서는 억울했겠지만 지난 10년간 방치됐던 패션몰의 사연을 감안하면 언제고 발생할 수 있는 변수였다. 이를 대비하지 못한 롯데는 유통공통 명성에 오점만 남기고 말았다.

또 하나는 롯데가 ‘동대문과의 상생’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상생의 키를 쥔 것은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다. 올 5월 김창권 롯데자산개발 대표는 롯데피트인 오픈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롯데피트인이 동대문 상권에 활기를,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꿈을, 고객에게는 생기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 수장은 신진 디자이너를 주목했지만, 롯데는 신진 디자이너를 잡지 못했다. ‘동대문과 상생하겠다’고 외쳤던 롯데의 꿈이 깨지고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