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1년과 통화정책

▲ 아베 총리의 경기부양책 영향으로 살아나던 일본경제가 다시 침체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취임 후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추진했다. ‘아베노믹스’로 일컬어진 경기부양책은 ‘엔저’로 상징됐다. 물적ㆍ양적완화정책을 통해 침체에 빠진 일본을 되살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경기는 오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통화정책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아베의 ‘엔저전략’을 막는 ‘세 화살’을 분석했다.

오는 12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취임 1주년을 맞이한다.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 경제는 아베 총리 취임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세개의 화살’이라 불리는 경기부양책으로 2013년 상반기 일본 경제는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장기간 지속되며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공격적인 통화완화정책이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경기회복을 이끌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6년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부동산 가격 또한 상승세를 탔다. 엔화약세로 외화자산가치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일본 경제의 성장세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3%, 연간으론 1.1% 증가했다. 이는 시장전망치 1.6%를 밑도는 수치다. 민간부문의 줄어든 성장기여도를 공공투자(성장률 6.5%)가 만회한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대외부문 또한 마이너스 성장세를 나타냈다. 일본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엔화 약세 기조는 지속되고 있지만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웃돌면서 무역수지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10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의 10월 경상수지는 마이너스 1279억엔을 기록해 전월의 5873억엔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9개월 만의 적자전환이었다.

3분기 이후 일본의 경제 부진은 성장전략에 대한 실망감, 기업의 보수적 활동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률은 2분기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지난해 3분기보단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수익성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기업은 지출과 투자 측면에선 예상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간 설비투자는 전분기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피고용자 보수가 줄어든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부진한 모습을 보인 기업활동은 소비여건의 악화로 이어졌다. 3분기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한 일본경제는 물가상승의 영향과 함께 특별상여금ㆍ고정급여가 감소하면서 실질소득이 하락했다. 금융자산 가격상승세까지 둔화돼 ‘부의 효과’가 약화됐고, 이는 소비심리를 위축시켰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아베노믹스

일본기업의 수익증대가 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일본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목표로 설정한 2%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 위해선 기업의 수익증가가 가계소득 확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진한 경제성적을 낸 아베 정부는 최근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베 정부는 2014년 경기부양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회복 기조를 유지해야 지지율 하락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잇기 위해선 무엇보다 ‘세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의 실시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시된 성장전략은 구체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아베노믹스는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아베 정부는 최근 5조5000억엔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경제대책 관련 예산은 별다른 게 없다. 추가경기부양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이미 예정돼 있던 동일본 대지진 피해복구비용의 비중이 높다. 더구나 일본정부의 재정건전성 우려가 높아지면서 재정정책과 경기부양정책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당분간 통화정책에 의존해 경기부양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이 통화정책에 의존할수록 엔ㆍ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이를 둘러싼 우려도 높아질 게 분명하다. 아베정부가 엔저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도 않다. 우선 그동안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엔저’의 발판 역할을 했다. 금리가 싼 엔화를 빌린 뒤 금리가 높은 미국 등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는 ‘엔케리트레이드’ 덕택에 아베정부는 통화량을 계속해서 늘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엔저가 유지됐다.
 
이는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되면 미국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미국 금리가 올라 일본 금리와의 차이가 커질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Fed가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하면서도 ‘초저금리(0~0.25%)’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엔캐리트레이드 가능성은 낮아졌다.

더구나 유럽중앙은행(ECB)은 경기부양과 디플레이션 우려의 영향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등 통화완화정책을 확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본과 주요 선진국 사이의 금리차이가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는 아베정부가 엔저를 유지하기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에너지 수입부담으로 엔저 유지 곤란

원전사태 이후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밖에 길이 없는 일본으로선 추가적인 엔화약세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아베정부로선 부담이다. 엔화약세로 기업의 비용부담이 늘어나고, 그 결과 내수시장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경기부양책의 핵심전략인 엔저현상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통화정책에 의존한 아베노믹스의 경기부양책이 힘을 잃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승현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 economist1@daish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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