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축소의 경제학

▲ 미국 연준이 12월 17~18일(현지시간) 열린 FOMC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했다.

‘헬리콥터 벤’이 시동을 서서히 끄고 있다. 미 연준이 드디어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했다. 시장은 양적완화 축소정책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시장에 깔려 있는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국내시장을 흔들 만한 리스크도 있다. 양적완화 축소로 ‘엔저’가 춤을 추면 한국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했다. 12월 17~18일(현지시간)에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연준은 성명을 통해 현재 매월 850억 달러의 자산 매입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100억 달러 줄인다고 밝혔다.

국채 매입규모를 50억 달러 줄여 400억 달러로 낮췄다. 모기지담보증권(MBS) 매입규모도 50억 달러 줄어든 350억 달러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이후 1년 3개월간 시행된 3차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이 시작됐다.

시장의 반응은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처음 언급된 올 6월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국제금융시장은 유례 없는 폭락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히려 선진국 증시를 중심으로 큰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84% 상승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장을 마쳤다.
 
나스닥 종합지수도 1.15%가 오른 4070.06포인트를 기록해 13년만에 최고치 기록했다. S&P500지수도 1.66% 29.65포인트 상승세를 기록하며 장을 마쳤다. 일본의 닛케이225 지수도 전날보다 271.4포인트 1.74%가 상승한 1만5859.22로 장을 마감했다.

글로벌 증시는 그동안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등장할 때마다 크게 출렁였다. 하지만 이번 양적완화 축소의 시행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축소 규모도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미 연준의 경기부양 의지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실업률이 6.5% 미만으로 떨어져도 현재의 초저금리(0~0.25%)를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지현 동양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양적완화 축소가 긴축정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물가안정과 높은 실업률의 영향으로 출구전략이 매우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우호적 통화정책 기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치명적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미국경제의 회복과 통화정책 기조 유지의 결합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양적완화 축소가 부르는 긍정의 효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의 영향이 국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경제의 기초여건이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경제의 경우,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물가도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올해 11월말 현재 3450억 달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대외채무 중 단기외채 비중은 31.0%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의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미국 출구전략은 미국의 경제회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회복은 국내 수출 증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회복이 수출 증가를 불러올 것이다”며 “선진국 수출 증가는 물론 신흥국의 수출 확대에 따른 중간재 수출 증가 효과가 함께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금리상승에 의한 가계부채 부담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미 연준이 당분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경기회복세가 계속되면 양적완화 축소가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호상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할 땐 초저금리 정책이 뒷받침했기 때문에 향후 금리추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양적완화가 축소되면 기준금리를 유지하더라도 시장금리가 오를 수 있어, 금리의 ‘선제적 안내(for ward guidance)’ 효과는 약화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초저금리를 정책을 유지하더라도 시장금리는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들어갈 경우 금리상승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출구전략의 과정이 자산매입 축소, 자산매입 중단, 자산매각, 금리인상 등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금리상승은 가계와 기업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특히 1000조원대의 가까운 가계부채가 문제다. 금리상승으로 갚아야 할 이자가 늘어나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출구전략이 시행된 만큼 시장금리 인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계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으로 부실화된 가계부채 한꺼번에 무너질 경우 국내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증가가 소비위축을 불러온다는 점도 걱정스런 부분이다. 가계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소비성 지출 항목이라서다.

또한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 경상수직 적자를 겪고 있는 신흥국에서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 금융시장이 꿈틀거릴 게 분명하다. 이런 자본유출로 신흥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중간재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역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신흥국 수출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달러 강세가 엔저 현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엔저 현상도 국내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되고 선진국 증시는 1%가 넘는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국내 증시는 잠잠했다. 국내 증시도 처음에는 상승세를 보였지만 엔저의 영향으로 곧 약세로 돌아섰다. 엔저 현상에 따른 국내 수출 기업의 수술 경쟁력 약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엔ㆍ달러 환율은 미국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2008년 이후 5년만에 104엔을 넘어섰다

금리상승 가계부채에 치명적

문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일본의 엔저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의 영향으로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는 가운데 일본의 통화정책에 의존한 경기부양 책이 지속될 경우 급격한 엔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엔저는 우리나라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올해 상반기 엔저 현상으로 겪었던 어려움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엔저 현상을 해결할 전략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국제시장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금리인하를 통해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경우 환율전쟁에 나선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의 영향으로 엔저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환율의 변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며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뢰가 깨져 구조개혁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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