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정비하라

▲ 정유사들이 가격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소비자 피해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정유3사가 가격담합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소비자를 상대로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게 명확해진 거다. 무려 24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돈을 돌려받겠다는 이가 없다. 받기도 어려운데다 투입해야 할 시간과 노력 대비 이득이 너무도 적어서다. 전문가들은 ‘집단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 12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에 대해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각각 1억5000만원, 1억원, 7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004년 4~6월 경유가격을 담합한 데 대한 벌이다.

비싼 값에 경유를 구입했던 이들은 이 판결을 보며 ‘고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코웃음 칠 일이다. ‘억대의 벌금’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소비자 피해규모가 약 24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서다. 수천억원을 떼먹고, 고작 2400분의 1만큼의 벌금만 내면 되니까 수지가 맞는 장사다. 

문제는 피해를 본 소비자는 어떻게 구제받느냐 하는 거다. 사실 불공정 담합으로 2400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면 그 이득은 원래 주인인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물론 소비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하지만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그런 소송을 벌이기엔 너무 힘들고 버겁다. 그래서 애써 소송을 제기해도 쉽게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유사들이 휘발유ㆍ경유ㆍLPG 등 가격담합으로 적발되고 벌금을 냈어도 여전히 담합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해외에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올 12월 3일 미주 노선 항공권 가격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로부터 집단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대한항공은 원고(소비자) 측에 약 690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법무부로부터 대한항공이 부과 받은 과징금만 해도 약 3100억원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제대로 된 집단소송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를 본 일부 소비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서 배상을 받으면 파급효과가 원고로 참여하지 않은 불특정 소비자에게까지 미치는 제도다. 애초에 원고로 참여하지 않아도 똑같은 피해를 봤다는 요건만 충족된다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집단소송제 관련 법안은 국회 계류 중

때문에 미국에선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되기도 전 기업들이 원고와 빠른 합의를 본다. 법원으로부터 담합 판결은 나와 있으니 오래 끌어봐야 이자만 늘어나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법이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다. 하지만 2005년에 시행된 이 법으로 소송이 진행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소송 제기 요건이 너무 강해서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소송 자체가 상당히 어렵게 돼 있다”며 “법률에는 특정 로펌이 3년에 3건 이상 이런 소송을 맡지 못하도록 해놓고 있는데, 전문 로펌이 나올 수도 없는 구조에서 소송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유명무실인 법안인 셈이다.

다행스러운 건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 ‘집단소송제 도입’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이은우 변호사는 “강력한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담합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그래야 기업도 ‘걸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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