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 내정자의 과제

‘난파선’ KT를 이끌 새 선장이 내정됐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다. 한편에선 ‘삼성의 DNA를 KT에 심을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지만 황창규 내정자가 경영을 펼칠 곳은 삼성이 아니라 KT다. 솔솔 새어나오는 ‘청와대 낙점설’도 극복해야 한다. ‘황 내정자의 첫 인사가 임기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의 첫 인사가 평생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는 것이 그의 첫째 임무다.
“정치권에 직접적으로 몸담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다만 그 대안이 삼성전자 출신 사장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KT의 신임 회장 선임에 대한 업계의 평이다. 12월 16일 KT CEO추천위원회(추천위)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KT 차기 회장으로 추천한다”며 “통신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글로벌 기업을 이끌어나갈 경영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황창규 내정자는 서울대와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인텔에서 연구원으로 잠깐 근무하다가 1989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했다. 10년 넘게 반도체연구소에서 근무한 후 메모리사업부장과 기술총괄사장에 올랐다. 메모리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반도체 전문가다. 삼성전자에서 나온 후 2000년 지식경제부 국가연구개발(R&D)전력단장을 거쳐 올해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KT와 삼성은 전혀 다른 기업

KT는 내년 1월 27일 황 내정자를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두고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황 내정자가 회장으로 정식 취임하면 2017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 3년간 임기를 이어가게 된다. 황 내정자가 이끌 KT는 한해 매출이 23조원에 달하고, 직원은 6만여명이나 된다. 재계 순위 11위다.

KT 차기 수장으로 낙점받았지만, 황 내정자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넘어야 할 산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황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세가지다. 첫째는 ‘청와대 내정설’이다. 현재 황 내정자를 둘러싸고 ‘김기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분이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가깝다’는 말이 나온다.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은 “이번 인사를 보면 KT CEO추천위가 외견상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도 “이것이 순수한 추천위의 결정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낙점설을 루머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황 내정자가 청와대 낙점설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회 방송통신심의워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이석채 전 회장은 퇴진하면서 자신이 기용한 임원진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황 내정자가 이들에게서 일괄 사표를 받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어떤 인물을 앉히느냐다. 특정 인물이나 박근혜 정부 인사가 들어온다면 청와대 낙점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전 회장이 심어둔 낙하산 임원진을 정리한 후 단행될 인사가 첫째 관건이라는 얘기다. 이 전 회장은 재임시절 남중수 전 사장이 기용한 임원진과 측근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았다. 이후 그 자리에 영포라인ㆍ경복고라인 등 정권 인물을 대거 배치했다. 이는 훗날 KT의 ‘원래(기존 KT 임직원)’와 ‘올레(이 전 회장이 영입한 인사)’가 나뉘는 계기가 됐다.

현재 황 내정자는 낙하산 관행에 대한 강력한 쇄신 의지를 보이고 있다. 12월 19일 황 내정자는 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인사청탁하면 처벌하겠다. 방만한 경영을 끝내겠다. 그동안 KT의 최대 현안이었던 조직정비와 인사 혁신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인사 쇄신을 예고하고도 황 내정자가 전임자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KT의 고질병인 CEO 리스크가 또다시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 낙점설은 수면 위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황 내정자는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가 해결해야 할 첫째 임무다.

황 내정자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그가 몸담았던 삼성과 몸담을 KT가 전혀 다른 기업이라는 점이다. 한편에선 삼성전자 출신인 황 내정자가 KT에 ‘삼성 DNA를 심는다’고 평하지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조업체인 삼성의 기조는 ‘경쟁과 혁신’이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발판은 끊임없는 경쟁과 혁신이었다.

 
그런데 옛 공기업 피가 아직도 흐르는 KT는 ‘경쟁과 혁신’에 익숙하지 않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끊임없이 조율하면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삼성과 다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는 통신이라는 공공통신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조율해야 한다”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기업 삼성과는 비즈니스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황 내정자의 삼성 DNA가 KT에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적에 따라 조급증 빠질 수도

황 내정자가 경영능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삼성반도체 총괄사장, 기술총괄사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강력한 오너십으로 무장한 삼성과 오너가 없는 KT는 다르다. 결단의 순간을 스스로 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이 뒤바뀔 수도 있다. 일정 기간 CEO에게 신뢰를 주는 삼성과 달리 KT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조급증’에 빠질 우려도 있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KT의 통신사업이 힘을 잃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전 회장 재임기간 KT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통신전문가들이 빠져나간 거였다”며 “KT가 통신시장을 주도했던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황 내정자가 조직원을 다독이면서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황 내정자는 삼성이 아닌 KT에 걸맞은 혁신을 추구해야 할 텐데, 그만한 대안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데서 나타나는 의문이다. KT의 소방수로 등판한 황 내정자는 과연 ‘불’을 끌 수 있을까.


▲ 황창규 내정자가 몸담았던 삼성과 앞으로 몸담을 KT는 기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황 내정자가 넘어야 할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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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발언으로 본 ‘황창규 리더십’

✚ KT그룹 문어발식 경영 벗어날까
“대기업이라고 문어발식으로 모든 걸 다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대기업이 어느 특정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다고 해서 또 다른 대기업이 같은 분야에 뛰어드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할 것이다.”
2010년 6월 22일│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를 여러 개
키우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며

✚ 회장 임기(3년) 동안 KT 경영 정상화될까
“3년 임기 동안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있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두고 봐라. 임기 중에 10년 뒤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기술과 비전을 꼭 찾을 것이다.”
2010년 6월 6일│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장 취임
인터뷰에서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보고 길을 찾겠다면서

✚ KT 수요자 입맛에 맞는 서비스 선보일까
“수요가 없는 R&D(연구개발)는 무의미하다.”
2010년 4월 22일│국내 산업이 그동안 논문 위주의
지표로 투자를 불분명하게 평가했다고 꼬집으며

✚ KT 내부에 토론문화 정착할까
“처음에 계약직 임원으로 오겠느냐 부장으로 오겠느냐 하더라. 뿌리박아야 하는데 계약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적응이 쉽지 않더라. 회의를 하자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한다. 내가 토론자하자고 했더니 다들 ‘저게…’ 하더라. 그때부터 토론 문화가 생겼다.”
2010년 4월 21일│삼성에서 지식경제부로 온 후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얘기하면서

✚ KT 회장으로서 포커페이스 가능할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서 아무 데도 안 갔다. (정치권에서 연락은) 없었다.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사람이 정치하면 안 된다. 주변에서 이번에도 제일 걱정하는 게 ‘저러다 혹시…’ 하는 거다.”
2010년 4월 21일│쉬는 기간에 오라는 곳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대답하며

✚ KT 직원 근무태도 확 바뀔까
“구글 같은 기업은 ‘업무의 20%는 본업과 상관 없는 일에 쓰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조직에선 그런 게 잘 안 된다. 부지런한 한국 사람의 체질과도 잘 안 맞다. 일은 가급적 재밌고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
2010년 6월 6일│연구가 잘 안 풀릴 땐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며

✚ KT만의 서비스 나올 수 있을까
“융통합화를 통해 No.1 제품이 아니라 Only 1제품을 만들어내겠다.”
2010년 5월 24일│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의
목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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