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쿠프 | 테이퍼링 그리고 저물가

▲ 물가가 낮을수록 소비자는 좋다. 그러나 저물가는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나쁜 인자를 갖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세계경제에 ‘저물가 경고등’이 켜졌다. 신체의 저혈압처럼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무서운 ‘바이러스’다. 경기침체와 맞물리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 지긋지긋한 공포가 또다시 몰려오고 있다.

죽어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미국 정부는 돈을 쏟아 부었다. ‘경기가 침체되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겠다’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공언 그대로였다.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다. 채권을 찍어 빌린 돈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공산이 적지 않았다. 관건은 시장의 부활이었다. 빌린 돈을 투입해도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시장에 돈을 뿌린 지 5년. ‘운명의 여신’이 미 정부에 미소를 보낸다. ‘돈의 효과’가 미국시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1%(연율기준)를 기록했다. 시장예상치를 0.5%포인트 넘어서는 수치다. 2분기보단 1.6%포인트가량 상승했다. 2011년 4분기 이후 2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주목할 대목은 3분기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린 주역이 ‘개인소비지출’이라는 점이다. 미국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가계소비증가율은 시장예상치 1.4%보다 0.6%포인트 높은 2.0%를 기록했다. 민간시장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제조업(ISM)지수와 고용지표는 더 고무적이다. 2013년 10월 ISM지수는 9월보다 0.9포인트 오른 57.3을 찍었다. 블룸버그의 예상치 55.1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로,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11월 실업률(7.0%) 역시 5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내려앉았다. ISM지수가 개선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민간소비지출은 더 늘어난다. ‘정부돈’이라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던 시장에 활력이 감돌 수 있다는 얘기다.

2013년 12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 MC)에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빌린 돈을 회수해도 민간시장 스스로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2014년 1월부터 월 850억 달러인 양적완화 규모를 750억 달러로 축소한다.

이제 Fed의 남은 고민은 ‘낮은 물가 수준’이다. 물론 저물가는 그 자체론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맞물리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신체의 맥박을 떨어뜨리는 저혈압처럼 경제활력의 불씨를 죽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가 12월 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 실행을 반대한 까닭이다. [※ Fed는 12월 FOMC 회의에서 ‘찬성 9, 반대 1’로 테이퍼링을 결정했는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이가 로젠그렌 총재다. 그는 ‘낮은 물가 수준’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저물가 현상’이 글로벌 시장을 덮치고 있다. 유로존의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7%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인 2%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상승률도 1.2%에 머물렀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의 중기(2013~2015년) 물가안정목표는 2.5~3.5%였다. 그러나 한은의 2013년 예상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2% 안팎이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각국 정부가 통화정책을 통해 돈을 시장에 투입했음에도 물가상승압력이 낮은 건 민간대출이 늘지 않고, 임금상승ㆍ비용인상압력이 낮기 때문”이라며 “테이퍼링 시행 이후 점검해야 할 첫째 지표는 물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세계경제에 ‘저물가 시그널’이 울렸다. 경기침체와는 다른 유형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대비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당한다.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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