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빛과 그림자

글로벌 IT기업의 한국대표로 검은머리 미국인이 중용되고 있다.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 김 제임스우 한국MS 대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가 그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해외본사와 한국지사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과연 그럴까. 일단 셜리 위 추이의 성적표는 별로 좋지 않다.

▲ 한국을 경험한 검은머리 미국인이라도 소통의 벽을 넘지 못하면 사업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IT업계에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은머리 미국인’의 등장이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주요 글로벌 IT기업이 한국지사 대표로 머리와 눈동자가 검은 미국인을 선임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주목을 받는 첫째 인물은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다. 글로벌 IBM(본사)은 지난해 1월 한국IBM 대표로 셜리 위 추이를 임명했다. 당시 IBM의 인사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중국계 미국인인 셜리 위 추이는 1967년 한국IBM 설립 이후 역대 첫 여성 외국인 사장이다.

셜리 위 추이 대표는 1959년 화교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서울 남산에 위치한 리라초등학교와 명동 화교학교에 다니다가 13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공부를 마치고 1983년 IBM에 입사했다. 1993년 오라클로 옮긴 후 1995~1998년 한국오라클 경영혁신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IBM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한국IBM 대표를 맡기 전까지 중국ㆍ대만ㆍ홍콩 등 중화권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GBS) 사업부문을 총괄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코리아도 검은머리 미국인이 조직을 이끈다. 2009년부터 한국MS를 이끌고 있는 김 제임스우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1970년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대학교(UCLA)와 대학원(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2005년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을 맡으며 모국인 한국 IT업계로 활동무대를 옮기기까지 30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했다.

지난해 11월 깜짝 선임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에서 근무하며 중국시장 마케팅과 사업운영을 총괄했다. 그 역시 미국에서 대학(칼튼칼리지)과 대학원(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존 리 대표는 올 1월 구글코리아 수장에 올랐다.

 
글로벌 시대에 내국인과 외국인을 굳이 구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검은머리 미국인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적지 않다. 글로벌 IT기업이 검은머리 미국인을 한국 비즈니스 리더로 적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로 친숙함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이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이끄는데 애로사항이 있는 게 사실이다.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태 이후 국내에서 외국기업에 대한 반발감이 형성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 점에서 검은머리 미국인은 외국인 대표보다 이질감이 덜 하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검은머리 미국인 CEO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본사와 한국지사간 가교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수도 있다. 문화적 충돌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현지사정에 맞는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데도 유리하다. 나아가 글로벌IT기업이 동북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한국이 동북아시아 시장 진출의 전진기지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검은머리 미국인 대표의 등장

조세프 컨 한국IB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2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IBM은 다른 어떤 한국기업보다도 한국적이다. 단순히 국내에 있는 고객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고객을 지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시장이다.” 그의 이런 발언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검은머리 미국인이 한국지사에 중용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그런데 이런 검은머리 미국인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다.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특히 셜리 위 추이 대표가 그렇다. 한국IBM은 최대고객인 KB국민은행의 이탈 가능성과 하드웨어 사업부진에 직면해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스마트사이징 사업을 위한 벤치마크테스트(BMT)를 실시하고 있다. 테스트는 올 1월까지다. 이번 테스트가 이목을 끄는 건 국민은행의 오랜 동반자 한국IBM이 수주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IBM과 국민은행은 하드웨어ㆍ소프트웨어ㆍ서비스 등을 통합 제공하는 OIO (Open Infrastructure Offering) 계약을 체결했다. OIO는 IBM의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고, 결제방식을 고객사의 재무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계약하는 방법이다. 계약금은 약 2100억원, 계약기간은 2015년 6월까지다.

하지만 2012년부터 국민은행이 IT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은행과 IBM이 OIO 계약 종료 이후 재계약 조건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월 셜리 위 추이 대표가 부임했고, 업계는 그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지 주목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소송으로 인한 구설수도 셜리 위 추이 대표의 앞길을 막는다. 한국IBM은 중소기업 KSTEC과 소프트웨어(SW) 밀어내기 관련 법정소송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2012년 KSTEC은 10년간 한국IBM의 SW업체인 아이로그 밀어내기로 47억원 가량의 재고를 떠안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한국IBM 대상으로 KSTEC에 10억원을 배상하라는 합의조정을 권고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월 셜리 위 추이 대표가 한국IBM에 부임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던 사안이었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는 사업 부진이 불통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 익숙할 것으로 기대됐던 검은머리 외국인 대표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IBM이 직면한 국민은행 계약과 소송건은 기본적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해야 해결할 수 있다. 셜리 위 추이 대표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근본적으로 소통을 이해하는 관점이 한국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한국을 이해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반 외국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소통 안 되면 비즈니스도 고전

물론 1년간의 활동으로 셜리 위 추이 대표의 역량을 속단하기엔 이르다. 5년 동안 한국MS를 이끄는 김 제임스우 대표는 비교적 무난하게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김 제임스우 대표 역시 과거 인터뷰에서 한국직원과 소통의 어려움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오버추코리아 대표 시절) 나를 반대하는 직원을 따라오게 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이제 막 취임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에게 업계의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검은머리 미국인 한계를 보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검은머리 미국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중요한 것은 한국을 경험한 검은머리 미국인일지라도 소통의 벽을 넘지 못하면 비즈니스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소통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더 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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