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의 Art & Dream | 일러스트레이터 톰 케인
“네. 전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어요. 한국에서 일하면서 만난 건 아니고, 그녀는 교포인데 미국사람에 가까워요. 물론 서울생활을 해봐서인지 소주ㆍ막걸리ㆍ불고기ㆍ냉면ㆍ치맥을 비롯해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많고, 이태원ㆍ강남ㆍ부산 등 좋아하는 곳도 많아요. 좋은 사람들도 많아 즐거웠던 추억도 많지요(웃음). 아무튼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알게 된 처와 저는 직접 만나면서 사랑을 싹 틔웠죠.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됐는데, 그녀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권총 든 다람쥐’예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산만한 편이고 재미있는 사건사고를 만드는 처를 생각하며 그린 거예요.”
“부인 사랑이 대단하시네요. 작고 연약해만 보이는 다람쥐가 권총을 들고 있으니 남다르게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것 같아요!”“하하, 잘 보셨네요. 그녀가 딱 그래요, 정말.”
문자를 이미지로 형상화하다
그는 언제부터 그림을 시작하게 된 걸까. “5살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 같아요.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취미로 그렸던 아버지를 본 후였죠. 주변사람들이나 선생님이 계속 칭찬하니까 신이 나서 계속 그렸죠. 예술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고 있었죠. 그러다 아주 쟁쟁한 친구들과 재능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현듯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일러스트레이터는 모두 천재였지만 전 조금 잘 하는 것뿐이었거든요. 그렇다고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진 않았어요. 재미 삼아 그리기로 했죠.”
“그런데 언제 이렇게 유명해진 건가요?” “글쎄요…. 특히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활동할 때, 제가 길에서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림 속 한글과 한문 등을 보면서 ‘한국어 할 줄 아냐’ ‘중국어 할 줄 아냐’ 라며 물었죠. 전 그걸 알 리가 없었죠. 그냥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인식하고 따라 그린 건데 그들에겐 재미있었나 봐요. 그러다 제 홈페이지에 그린 그림을 한국사람 누군가가 발견해 포털사이트에 올렸고, 사람들이 이를 스크랩하고 퍼 나르면서 어느 순간 이름이 알려졌어요.”
“그 그림들 저도 봤는데, 그런 화풍은 언제 형성된 건가요.”“음…. 서른다섯 살 때였나.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작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제까지 그림을 그려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이 ‘단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만 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라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화방으로 달려가 작은 캔버스, 아크릴 물감, 붓 몇 자루를 사 왔죠. 그리고는 쉬지 않고 매일 매일 그렸어요. 하루하루 뭔가 발전할 수 있는 배움이 가득한 습작이었죠. 그릴 수 있는 모든 걸 그려봤어요.‘미술관에 그림을 전시하겠다’ ‘작품을 팔아야겠다’는 고민은 하지도 않고, 그냥 그렸어요. 제 방을 전부 제 그림으로 장식할 정도로 계속 그렸죠.”
그리고, 또 그리면 답이 나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필자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돌이켜보니 그때 필자의 행동이 얄밉기도 한 것 같은데, 사연은 이렇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중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실기점수 20점 만점이던 그 과제를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16점을 받았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평균적인 점수였다. 그리곤 난 선생님에게 물었다. “혹시 다시 그려오면 다시 평가해주실 수 있나요.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대회에서 그려야 할 작품은 수묵화였다. ‘단 한번도 그린 적이 없는 장르’라며 겁을 잔뜩 먹은 필자에게 선생님은 재료를 한아름 안기며 ‘잘 다녀오라’며 용기를 줬다. 특별한 미술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필자에겐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경복궁을 어떻게 화폭에 담을까 숱하게 고민하면서 기둥ㆍ처마ㆍ마당 곳곳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필자는 그해 아주 작은 상을 수상했는데,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다는 톰의 얘기를 들으면서 필자의 인생이 오버랩됐다. 이 말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만족할 때까지, 계속 그려라. 네가 행복해질 때까지 인생이라는 화폭에 너만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가라. 그게 인생이다.”
손보미 ProjectAA* Asian Arts 대표 katie.son@theprojectaa.com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