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의 易地思之

▲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한줌의 흙으로 변한다. 하지만 고인이 사용하던 디지털 콘텐트는 인터넷에 계속 남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동안 한국사회는 인터넷에 많은 정보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사후死後에 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디지털 콘텐트가 사장死藏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인은 떠났어도 콘텐트는 인터넷에 남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 콘텐트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현상이 등장했다. 이른바 ‘디지털 상속’이다. 이를테면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에 올린 게시물ㆍ사진ㆍ동영상ㆍ사이버머니를 상속하는 것이다. 디지털 유산은 오프라인 정보로 대체할 수 없는 온라인 정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디지털 상속이 불가능하다. 이용자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자의 정보를 제공할 수 없도록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법원은 타인의 범위에 ‘사망자’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인터넷에 많은 정보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사후死後에 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디지털 콘텐트가 사장死藏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인은 떠났어도 콘텐트는 인터넷에 남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 상속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보자. 독일과 미국은 디지털 유산 상속을 법으로 보장한다.

현재 미국 17개주는 현재 입법화 과정을 밟고 있다. 디지털 상속을 법으로 규제하던 우리나라도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대 국회가 디지털 유산과 유품 상속에 대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디지털 콘텐트는 의미있는 변화를 겪을 것이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유언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디지털 유산의 상속이 법적인 효력을 갖는 것이다. 나아가 정보소외계층이나 디지털 사용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위탁 관리를 법으로 보장받는다. 

디지털 유산 상속 가능해지면…

이런 변화는 반갑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갖춰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 유산의 상속 여부를 결정할 때 함께 고민해 볼 것이 있다. 우선 고인의 디지털 콘텐트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유산이라는 게 고인이 사용했던 계정과 콘텐트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자산 상속은 인터넷상에서 고인의 흔적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대신 고인의 계정과 디지털 콘텐트가 노출된다는 걸 감수해야 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인터넷기업 구글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12월 12월 파이낸셜타임스는 구글이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아 휴면상태가 된 이메일과 저장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휴면계정관리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안드레아스 투에르크 구글 서비스 담당매니저는 “갑자기 사용자 계정이 휴면상태가 되면 그동안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어떻게 할지 직접 결정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 가입자는 휴면계정관리서비스에서 휴면계정에 들어가는 시점을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정할 수 있다. 가입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데이터를 처리할 시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계정에 남은 각종 데이터를 가족이나 친구 등 지정한 사람에게 상속하거나 영구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지메일ㆍ유튜브ㆍ구글드라이브ㆍ구글플러스ㆍ피카사 등 구글이 운영하는 모든 서비스에 적용된다. 투에르크 매니저는 “휴면계정관리는 인터넷에서 사후死後관리를 해줄 뿐만 아니라 지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유산 위탁 관리업체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디지털 자산 상속이나 관리 등 법적문제가 현실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
한필순 더스쿠프 편집위원 hanps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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