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

▲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은 저개발ㆍ개발도상국에 적정기술을 팔면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저개발ㆍ개발도상국에 하이텍이 아니라 그 나라에 꼭 필요한 적정기술을 파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가치를 상실했어도 그 나라에서는 유용한 기술 말입니다. 앞선 기술 말고요. 송전망도 안 깔린 나라에 스마트 그리드 기기를 팔겠어요?”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은 “저성장 시대 성장 잠재력이 크고 인구가 많은 저개발ㆍ개발도상국에서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모바일 기기의 경우 우리나라는 무선호출기부터 2G, LTE, 5G에 이르기까지 다 만들어 봤습니다. 이 가운데 나라별로 우리가 팔 수 있는 기술을 들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자면 그 나라 실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어요. 그런데 이 시장도 진출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요. 몇십년 후면 글로벌 시장의 기술 수준이 평준화될 겁니다.”

우암코퍼레이션은 최근 1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설립 20년, 해외진출을 추진한 지 3년 만이다. 실제 수출액은 200만 달러가 넘는다[※200만불 수출탑은 없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인 화상회의 솔루션(RAVC OMS)의 아랍어 버전을 만들어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에 공급한 것이 주효했다. RAV COMS가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 사우디 외교부는 재외 공관과의 소통에 RAVCOMS를 활용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예는 드물다.

2013년 10월엔 에티오피아 전력청이 발주한 600만 달러 규모의 광복합가공지선(OP GW) 설치 등을 턴키베이스로 수주했다. 도로를 닦은 경남기업에 이어 한국기업으로서는 두번째 에티오피아 진출이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중국 최대의 통신회사인 ZTE가 수주한 것으로 우암은 OPGW의 서베이ㆍ디자인ㆍ설치를 맡았다. ZTE사가 추가로 수주한 1800만 달러 규모의 공사도 우암이 독점계약을 맺었다. 정보기술(IT) 기업인 우암은 에너지 컨설팅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후 엔지니어링 쪽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우암 측은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10년은 갈 장기사업이라고 밝혔다. 송 회장은 2014년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 중동과 아프리카라고 말했다.

✚ 왜 중동 시장인가요? 어떤 점에서 중동 시장이 유망한가요?
“우선 이 지역은 오일머니가 많습니다. 대금결제도 현금으로 합니다. IT 수준은 초기인 반면 이러닝 등에 대한 수요가 많죠. 일례로 정책적으로 사이버대학을 많이 만들려 합니다. 그런데 이를 구현할 플랫폼ㆍ기자재ㆍ콘텐트가 모두 부족해요. 그래서 콘텐트 회사와의 동반진출 시도도 많죠. 이런 현상엔 문화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중동은 지금도 여성이 혼자서 밖에 나다닐 수 없습니다. 사우디의 경우 심지어 40세 미만 여성은 비자도 안 내줍니다. 그 자체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죠. 하지만 이제 사우디에 진입했으니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 오만 등 인접국에 진출하기 유리합니다. 국가 간에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죠. 이 지역은 또 거의 다 수의계약을 합니다. 그래서 시장을 선점하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죠. 미국 등 선진국에 진출하는 것도 좋지만 중동에선 이들 나라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의 절반만으로도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한마디로 블루오션이죠.”

 
저개발국 진출, 타이밍이 중요

✚ 아프리카 시장은 어떤가요?
“아프리카는 전력 공급이 원활치 않습니다. 발전, 송배전 등 사업성이 밝은 분야가 많아요.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주변국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려 합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말대로 아프리카는 지금은 기부금으로 지탱되는 시장이지만 5년 안에 구매시장으로 바뀔 거예요.”

✚ 에너지 사업에 진출한 배경이 뭔가요? 해외진출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벤처의 경우 한 분야를 특화하면 해당 업종의 부침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벤처의 생존율이 낮은 원인 중 하나죠.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 에너지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IT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지만 전력 비즈니스는 10년 투자하면 30년 먹고살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저성장 모드에 들어섰고 국내 전력시장은 사실상 한전의 독점체제입니다. 그래서 7~8년 전부터 해외로 나가 20여 개국에서 에너지 컨설팅ㆍ감리 등을 하다 에티오피아에 현지법인을 세우게 됐죠. 현재는 해외사업 비중이 50%인데 3년 후 70%로 높이려 합니다.”

✚ 창조경제의 모델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IT와 전력사업 간에 융합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 과정에서 전기연구원의 박사를 영입하고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한전에서 스카우트도 했어요. 창조경제도 좋은 인재 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워요.”

우암은 중소기업이지만 3~5년 단위로 로드맵을 그린다. 그는 “우암은 장뇌삼(심어서 기른 산삼) 경영을 한다”고 말했다. 도라지를 심을 수도 있고 장뇌삼을 심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도라지만 심는다는 것이다. 도라지는 봄가을로 뿌리를 채취하지만 장뇌삼은 캐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기실적보다 미래비전과 성장동력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직원들에게 우리가 출전한 종목은 마라톤이지 100m 달리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라’며 책상 위에 올라갔듯이 책상 위에 올라가 의자에 앉아서는 볼 수 없는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 다 좋은데 중소기업으로서는 투자의 회임기간이 너무 긴 거 아닌가요?
“오너 경영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린 문제예요. 저는 우암의 가치관으로 ‘구성원들이 행복해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직장’을 선택했습니다. 직원들이 행복해지려면 기업도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해야 합니다. 창업할 때부터 그랬던 건 물론 아니에요. 외형 성장, 고수익성, 지속가능성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변천했습니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할 땐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를 분사시켜 직원들에게 맡기기도 했어요.”

▲ 0113년 봄 한ㆍ에티오피아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송혜자 회장이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에티오피아 외교부 장관(맨 오른쪽) 등과 포즈를 취했다. 우암은 국내기업으로는 두번째로 에티오피아에 진출했다.[사진=우암코퍼레이션 제공]

✚ 구성원들이 그런 가치관과 목표에 공감합니까?
“우수한 직원들 가운데 여럿이 고액 연봉을 쫓아 떠났습니다. 이런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로 남았죠. 말을 바꾸면 기업의 가치관은 직원들을 잡아두는 효과가 있어요. 봉급 적게 주는 비정부기구에 의외로 스펙 좋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죠. 저희도 연말이면 캄보디아에 우물도 파주고 라오스에 학교도 만들어 줍니다. 환경재단의 만분클럽(매출액의 1만분의 1을 환경재단에 환경기금으로 기부하는 친환경 기업)에도 가입했어요. 땀 흘려 일해 올린 회사 수익의 일부를 이 세상을 위해 쓰는 것을 직원들도 좋아하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런 가치관이 좋아 입사한 사람도 있어요.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거죠. 그러면 회사의 지속가능성도 커질 거로 봅니다.”

우암이라는 회사 이름은 그가 자신의 선조로 조선 후기 좌의정을 지낸 송시열 선생의 호에서 따왔다. 1990년대 초 영어로 된 사명社名이 유행할 때였다. 그는 이름 부담이 컸지만 한편으로 도움도 됐다고 말했다.

“조상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면 투명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단적으로 우암의 주력 제품인 화상회의 시스템과 성인 화상 채팅은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데 한때 화상 채팅 기술로 중소기업들이 한 달에 몇억원씩 벌었습니다. 저희는 그 기술로 교도소 수감자들과 집에 있는 가족 간의 화상 면회를 실현시켰고요. 올해엔 전국의 50개 교도소로 이 화상 면회를 확산시킬 겁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에 나가 우암을 소개할 때 조선의 부총리를 지낸 저의 조상 이름이라고 하면 좋은 집안 출신이라며 존중을 해줬죠. 중동엔 왕국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그는 연구개발(R&D) 등의 명목으로 정부 지원을 많이 받은 회사는 그 혜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출시장 개척에 주력하든지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회사가 내수시장에 안주한다면 역차별의 소지마저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부터 여성기업지원법상 공공기관은 중소기업 제품을 조달할 때 여성이 대표인 여성기업 제품을 5%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합니다. 적은 양이 아니에요. 저는 이들 여성기업도 수출과 고용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R&D 투자도 이런 평가의 잣대가 될 수 있겠죠. 또 혜택을 받는 만큼 이윤의 1%를 환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 우암은 R&D 투자를 얼마나 합니까?
“매출액의 10% 이상 투자합니다. 에티오피아 법인 근무자 10명 포함해 약 50명의 구성원 중 박사가 10%죠.”

✚ 비전은 뭡니까?
“지속가능한 기업, 정년 없는 회사입니다. 자기 분야의 프로페셔널이라면 정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려 합니다. 실제로 만 62세인 분이 3년째 근무 중이에요. 단 그런 인력이 되려면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야겠죠.”

✚ 여성 CEO의 강점이 뭔가요? 약점도 있겠죠?
“여성은 디테일에 강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실 1~2% 정도의 차이예요. 반면에 약점은 전략적인 판단에 약하다는 겁니다. 의사결정을 하기에 앞서 데이터를 분석하기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은 남성과 뇌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원리원칙과 투명성을 중시하고 파벌을 만들지 않죠.”

에티오피아 고객사 바이어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그가 두바이에서 맞춘 다초점 렌즈 안경을 분실했다고 했다. 우암 직원이 안내해 안경을 맞춘 후 그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라 선물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그가 안경값을 지불했다[※ 송 회장은 남성 CEO라면 아마 여기서 멈췄을 거라고 말했다.] 그주 토요일 저녁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송 회장이 그에게 다초점 선글라스를 건넸다. 안경점에 남아 있는 그의 검안 결과를 토대로 선글라스를 맞춘 것이다. 이 깜짝 선물에 그는 놀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귀국 후 송 회장에게 팔찌와, 딸에게 주는 반지ㆍ귀고리까지 답례로 보내왔다.

대ㆍ중소기업 복리격차, 정부가 좁혀야

송 회장은 고객이 머무는 호텔에 과일 바구니를 넣을 땐 깎아먹을 수도 없는 파인애플 말고 체리ㆍ포도ㆍ귤을 담으라고 귀띔했다. 공항에 영접을 나갈 땐 진심이 담긴 환영 문구로 장식한 플래카드를 준비하라고 권했다. “이런 비용은 사실 다른 영업비에 비해 적게 들고 효과는 더 큽니다.”

✚ 중소기업 CEO로서 정부에 바라는 게 뭡니까?
“외국 유학까지 한 인재들이 취직을 안 할지언정 중소기업엔 안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급여는 차치하더라도 대기업ㆍ공공기관과 복리후생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정부가 중소기업의 복지를 지원하면 구직자의 구미가 당기는 일자리를 더 만들어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공공주택을 분양할 때 분양가를 한 30% 할인해 주는 겁니다. 중소기업 직원들은 적게 버니까요. 또 중소기업 장기근속자에게는 쿠폰을 지급해 자녀 대학등록금 부담을 덜어주는 거예요. 저는 정부가 이렇게 예산을 집행하는 게 실업급여를 주는 것보다 더 건설적이라고 봅니다.”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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