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호의 유쾌한 콘텐트

융합을 이해하려면 ‘결합(combination)’과 비교하는 게 좋다. 결합은 두개 이상이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융합은 두개 이상이 관계를 맺어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융합의 관점에서 융합된 하나하나는 의미를 갖고 나름의 역할을 인정받는다.

▲ 커피믹스는 커피‧설탕‧프림이 한데 섞여 새로운 제품이 된 경우다. 이는 융합의 대표적 사례다.[사진=뉴시스]
1938년 라디오를 청취하던 미국 사람들은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했다. 잠시 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을 사실로 오해한 사람들이 벌인 해프닝이었다. 방송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 접한 새로운 콘텐트에 놀라 반응한 결과다. 동요는 있었지만 이 사건은 새로운 기기인 라디오를 대중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건 이면에는 라디오의 판매를 늘리려 했던 제조회사의 드라마 제작지원이라는 마케팅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은 낯설지만 SBS방송의 원래 이름은 서울방송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만 방송을 하던 지역방송으로서 선도 방송인 KBS와 MBC에 비해 현저히 낮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방송국이 전국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결정된 계기는 1995년 방송된 드라마 ‘모래시계’ 다. 이렇듯 콘텐트는 방송국의 성장에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무너져 가던 애플사를 다시 세우고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끈 아이폰의 성공요인은 수없이 많다. 잡스라는 매력적인 인물, 수련한 외관 디자인, 아이튠즈를 통해 확보한 100만개의 음악ㆍ영상 콘텐트, 애플리케이션 보고 앱스토어 등이다. 콘텐트가 PC제조업체 애플이 세계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최근 광고 중에 ‘융합(convergence)’이 무엇인가를 묻는 광고가 있다. 그만큼 융합은 현대 비즈니스의 핵심테마 중 하나다. 융합을 이해하려면 ‘결합(combination)’과 비교하는 게 좋다. 결합은 두개 이상이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젓가락이 대표적 예다. 이때 중요한 건 결합 이후에도 원래 형태나 성질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하는 것은 결합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다. ‘1+1=2’가 아니라 플러스 알파를 기대하는 게 결합의 효과다. 이때 결합된 것들은 균등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쟁의 중심은 ‘다원화’

융합은 두개 이상이 관계를 맺어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마치 믹스커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커피ㆍ설탕ㆍ프림이 물을 만나 융합하면 프림커피라는 새로운 형태의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융합의 힘이다. 시너지를 넘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융합의 힘이다. 융합의 관점에서 융합된 하나하나는 의미를 가지며 나름의 역할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융합에는 주부와 보조부가 따로 없다.

이렇듯 융합이 결합과 다른 것은 모든 요소들이 핵심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팔기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게 아니라 둘 다 핵심이라는 얘기다. 핵심이기 때문에 단순히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도 기계 중심의 초기단계, 전자중심의 중간단계를 거쳐 소프트웨어와 콘텐트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 조차 콘텐트는 더 이상 외부의 일이 아니라 핵심경쟁력의 한축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확보해야 할 경쟁력 요소다.

스마트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융합은 더 이상 한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 산업에 걸친 공통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콘텐트(Content)-플랫폼(Platform)-네트워크(Network)-디바이스(Device)의 4단계 CPND구조는 ICT산업은 물론 현대 비즈니스의 핵심적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경쟁의 중심은 이제 ‘다원화’다. 문제는 ‘다원화’의 콘셉트를 결합이 아닌 융합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의 시대에 콘텐트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때론 융합의 한 축으로, 때론 융합의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서다.
류준호 서울과기대 연구교수 junhoy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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