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치 방값 내고 행복에 입주하다
두달치 방값 내고 행복에 입주하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75
  • 승인 2014.01.1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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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주거 ‘셰어하우스’의 비밀

돈이 없으면 쪽방 같은 곳에 갇혀 살 수밖에 없을까. 대한민국의 젊은층 상당수가 고시텔·원룸텔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주거취약계층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 대안이 있다. 셰어하우스다.

▲ 셰어하우스가 주거문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강남 신논현역 근처 원룸텔에 거주하는 김은영(가명·30)씨. 그가 거주하는 방은 4.95㎡(약 1.5평)가 조금 안 된다. 컴퓨터 테이블과 책장을 놓으면 딱 한 사람이 누울 자리가 나온다.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이곳 방값은 월 35만원이다. 주인아저씨와 친분을 쌓은 덕분에 3만원을 할인 받았다. 방 20개가 있는 이곳 원룸텔은 화장실이 하나다. 복도는 좁다 못해 미로 수준이다.

살 만한 곳으로 이사를 하려 했지만 화장실과 주방이 붙어 있는 원룸의 최소 보증금 500만원, 월세는 50만~60만원은 줘야 된다. 공과금·관리금을 합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좁은 방도 그렇지만 김씨는 이곳에서 ‘외로움’과 ‘불안함’을 느낀다. 한번은 새벽에 나갔다가 근처 편의점에서 괴한을 만나 다칠 뻔한 적도 있다. 몇발짝만 떼면 화려한 강남거리지만 원룸텔은 우울하기만 하다. 김씨는 이곳을 떠날 날만 꿈꾼다.

두달치 방값이 보증금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로 15분가량 떨어진 종로구 옥인동의 한 셰어하우스. 동네는 허름해 보이지만 집안 분위기가 다르다. 은은한 조명은 카페 분위기를 연상케 하고 집 한편에는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만한 다락방도 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테라스도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집 뒤편으로는 인왕산이 버티고 있고, 집에서 5분 거리엔 기름떡볶이로 유명한 통인시장이 있다. 옛 정취가 가득한 이곳 셰어하우스에는 슬로 라이프를 만끽하는 남자 넷이 살고 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이부터 프리랜서, 백수까지 각각 직업도 캐릭터도 다르다. 이 네 남자는 옹기종기 모여 밥을 함께 해먹고 새벽까지 14.15㎡(약 4.2평)의 넓은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많지 않다. 한달 방값은 2인 1실(9.04㎡·약 2.73평)이 37만5000원, 1인 1실(5.08㎡·약 1.53평)은 43만원이다. [※김씨가 사는 허름한 원룸텔보다 크기는 조금 크고 월세는 8만원 많다.] 넷이서 10만원씩 모아 식비·용돈·공과금을 모두 해결한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데 보증금은 두달치 방값이다. 2인 1실 보증금은 75만원이다. 사회적 기업 피제이티옥의 셰어하우스 우주(Woo zoo) 4호점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의 집’에 사는 4명의 우주인(입주인)들의 얘기다.

두 사례를 보면 비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삶의 질은 극명하게 갈린다. 문제는 많은 젊은층이 첫번째 사례인 김씨처럼 산다는 거다.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다소 저렴한 원룸텔이나 고시원을 택하고 있어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부분 고시텔·원룸텔의 방 크기는 평균 3.3㎡~3.91㎡(약 1~3평)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곳에 10~20명의 사람들이 화장실·주방을 함께 사용한다. 휴식을 취할 마땅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주거취약계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거취약계층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노숙인이나 비닐하우스 판자촌,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쪽방 거주자는 9㎡(약 2.7평) 내외의 단칸방에서 무보증 월세로 거주하며 부엌·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들을 말한다. 고시텔·원룸텔이나 쪽방이나 사정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주거취약계층과 같은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주거취약계층으로 분리되면 월세, 혹은 연료비나 의료비를 지원 받기도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도 못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나 아동복지시설 퇴소 대학생 등에 우선순위를 주기 때문에 일반 대학생들이 이곳에 들어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1인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의 니즈에 맞는 소형주택 대신 원룸텔·고시텔 등만 늘어나는 이유다.

합리적 비용으로 삶의 질 만끽 가능

요즘 셰어하우스가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주거문제와 맥이 닿아 있어서다. 셰어하우스는 기존 주택을 활용해 여러 세대의 1인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주거형태를 말한다. 방은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주방·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고시텔·원룸텔보다는 비싸지만 원룸보다는 저렴하다. 셰어하우스는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캐나다 등의 도심에는 보편화된 주거형태다. 주거비용이 높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셰어하우스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 셰어하우스 입주자는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2013년 초부터 셰어하우스가 하나둘씩 생기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에만 56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셰어하우스 전문업체인 보더리스재팬은 서울에 지점을 내고 지난해 1월 영등포점을 시작으로 셰어하우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2월엔 사회적 기업 피제이티옥이 서울 종로구 전농동의 한옥집을 개조한 ‘셰어하우스 우주’ 1호점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9호점과 10호점의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신청을 받고 있는 9호점 경쟁률은 4대1에 달한다. 10호점은 아직 공사 중이다.
두 업체 모두 1년여 만에 지점을 10개 가까이로 늘리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엔 부동산건축전문업체도 셰어하우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셰어하우스 ‘함께꿈꾸는마을’을 연 유성산업개발은 올 1월 말 송파구 문정동에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셰어하우스가 새로운 주거 형태로 주목받는 이유는 합리적 비용으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셰어하우스 우주(사회적 기업 피제이티옥)의 1인 1실부터 1인 3실까지 방값은 월 35만~65만원으로 그다지 비싸지 않다. 가장 비싼 방은 오픈을 앞둔 9호점(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포지역의 프리미엄아파트를 월 50만~65만원(2인 1실)의 셰어하우스로 변신시켰다. 이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10억원이 넘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처럼 거실은 대형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 영화관처럼 꾸몄다. 와인셀러에 신발건조기까지 갖춰져 있다. 보증금은 두달치 방값이다.

▲ 셰어하우스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거다. 사진은 보더리스하우스 홍대점과 마포점 입주자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사진=더스쿠프 포토]
‘함께꿈꾸는마을(유성산업개발)’의 사용료 역시 저렴하다. 서울 왕십리에 있는 1호점의 경우 3인실(27.3m²·약 8.27평) 35만원, 2인실(14.43m²·약 4.37평) 43만원, 1인실(9.9m²·약 3평)은 56만원이다. 곧 오픈할 예정인 문정동 2호점은 3인실(34.44m²·약 10.43평)의 월 사용료가 36만원에 불과하다. 넓은 거실과 주방은 절로 따라붙는 옵션이다. 꿈꾸는 마을의 보증금도 우주와 마찬가지로 두달치 방값이다.

모르는 사람과 갈등 빚을 수도

장점은 더 있다.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 셰어하우스 우주는 ‘창업가들을 위한 집(1호점)’ ‘슬로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의 집(4호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9호점)’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10호점)’ 등 1호점부터 10호점까지의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 당연히 각 지점에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일 확률이 크다.

셰어하우스 우주는 입주자 모집도 까다롭다. 온라인 신청과 면접을 거쳐 최종 입주자를 결정한다. 하우스 매니저가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 지, 지점의 콘셉트와 맞는지를 살펴보고 최종 결정한다.  보더리스하우스는 다양한 국적의 입주자를 받는다. 지점별로 일정 쿼터를 외국 국적의 입주자들만 받아 그만의 콘셉트를 확실히 하고 있다. 셰어하우스 입주자들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셰어하우스 우주 4호점 ‘슬로 라이프를 좋아하는 집’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이광호(29)씨는 “원룸에 살 때는 외로웠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며 “셰어하우스 생활 7개월차인데 내년에도 재계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창희 유성산업개발 대표는 “소득이 괜찮더라도 혼자서 99㎡(약 30평)짜리 아파트에 월세를 내며 살기는 버거울 뿐만 아니라 외로울 것”이라며 “셰어하우스는 월세가 저렴한데다 단절된 커뮤니케이션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새로운 주거문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갈등을 빚을 수 있다. 김정헌 피제이티옥 대표는 “남과 함께 살면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발생가능한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 입주자들을 선정하지만 만일의 경우 회사매니저가 개입해 입주자간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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