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엔저공포

▲ 엔저의 영향으로 2014년 국내 경제와 증시는 부진한 출발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결정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윤전7기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 경제와 증시를 괴롭혔던 엔저의 공포가 또다시 커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에겐 엔저공포를 극복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증시를 비롯해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는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일본의 엔저였다. 특히 국내 증시는 엔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일본중앙은행(BOJ)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공언은 지켜졌다. 일본 BOJ는 ‘양적ㆍ질적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했고 이는 엔저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글로벌 증시가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 국내증시는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2014년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결정된 미국의 테이퍼링 시행은 불확실성 해소로 해석되면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했다. 증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엔저였다. 엔저 영향으로 국내 수출 기업의 실적 부진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엔저가 진행되면서 제2차 엔저 공습의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엔저를 유발하는 원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엔저를 이야기하기 전에 환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환율은 두나라 통화의 상대적인 가치를 뜻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1997년부터 사용)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가 환율이 자유롭게 바뀌는 변동환율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율은 외환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외환의 공급이 수요보다 커지면 (자국)환율은 하락하고 통화가치는 상승(통화절상)한다. 반대로 외환의 공급이 수요보다 작아지면 (자국)환율이 상승하고 통화가치는 하락(통화절하)한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를 엔저에 대입해보자. 엔저는 일본 통화인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외환인 달러 통화량(공급량)보다 엔화의 통화량(수요량)이 많으면 엔ㆍ달러 환율은 하락하고, 엔화가치는 상승한다. 반대로 달러 통화량보다 엔화 통화량이 많으면 엔화가치는 떨어진다. 원ㆍ엔 환율에서는 달러 대신 원화를 대입하면 된다.

일본은 양적완화 정책 유지

엔저가 발생한 첫번째 이유는 일본정부의 양적완화 조치의 시행이다. 일본정부는 경제성장과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기 위해 BOJ를 통한 무제한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엔저 정책의 효과는 유효했다. 일본기업의 수출이 증가했고 내수소비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누렸다. 특히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2013년 1년간 57%가 급등했다. 게다가 이런 일본의 정책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구로다 BOJ 총재가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양적완화 조치를 계속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인터뷰에서 “금융완화 정책이 2년이 되면 끝나거나 자산매입 감액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며 “정책 자체가 기한이 한정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2%의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때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는 시장에 엔화의 공급량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란 의미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현재 5%인 소비세를 8%로 인상할 계획이다. 소비세 인상이 살아나고 있는 일본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소비세 인상으로 내수소비가 영향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재만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소비세 인상의 효과를 점검할 필요가 있어 당분간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하지만 4월 소비세 인상으로 소비경기와 기대 인플레이션이 부진할 경우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4월을 전후로 경기부양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3월 기업의 임금협상시즌을 앞두고 임금인상을 계속해서 압박하기 위해 엔화 약세를 통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것”이라고 밝혔다.

▲ [더스쿠프 그래픽]
엔저의 두번째 이유는 선물시장에서 엔화 매도량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엔화의 투기적 매도세는 2009년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회복과 미국의 테이퍼링 등의 영향으로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에서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시장에는 엔화의 통화량이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어나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엔화에 대한 투기적 순매도 계약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최근 4주간 평균치는 13만 계약에 달했다.

조병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다행히 엔화에 대한 투기적 매도 포지션이 소폭이나마 감소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쏠렸던 엔화 약세에 대한 심리가 일부부분 정상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번째 이유는 미국의 테이퍼링 시행에 따른 달러화의 강세다. 지난 12월 18일(현지시간) 미 연준(Fed)은 1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축소 시행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 공급되던 달러의 공급량은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달러 강세를 불러와 엔저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미국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테이퍼링이 시행될 경우 달러 강세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日 소비세 인상, 양적완화 부추길 듯

▲ 2014년에도 엔저기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사진=뉴시스]
엔저 현상은 우리나라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드려 수출 경쟁력을 약화할 공산이 크다. 이는 기업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로 번져 증시 하락의 원인이 된다. 올해초 국내증시가 하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우리나라와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HS 6단위 기준) 가운데 일본의 상위 100대 품목과 중복되는 것은 55개에 달했다.

게다가 이 품목은 국내 총수출의 54%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화학제품ㆍ자동차ㆍ조선ㆍ석유 제품의 경합도가 크게 상승했다. 수출 경합도가 가장 높은 석유제품의 수출 경합도는 지난해 1분기 0.917까지 상승했고 자동차ㆍ조선 등의 수송기계의 경합도도 0.65에서 0.647로 상승했다. 수출 산업의 실적 악화의 영향으로 국내경제 회복 가능성 역시 희박해 질 수 있다.

올해도 엔저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재만 연구원은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저가 지속될 것이란 시장의 신뢰가 형성됐다”며 “엔저기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엔저에 대한 외환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상수지의 과도한 흑자가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이 1월 9일 기준금리를 동결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외환정책도 사용하기 어렵다. 엔저에 대처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엔저의 영향으로 수출기업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피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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