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구한서 동양생명 사장

“내부 구성원들은 사명 바꾸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비전 재정립과 더불어 CI 작업만 하기로.”

동양생명은 지난 4년간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린 중견 생보사다. 업계 최초로 상해보험을 개발했고 생명보험사로는 처음으로 2009년 기업공개를 했다. 금융권 최초의 브랜드인 ‘수호천사’를 론칭한 회사이기도 하다. 동양그룹 사태 후 계열분리된 이 회사의 제2창업을 주도하는 구한서 사장과 1월 7일 오후 만났다.

✚ 이참에 회사 이름도 바꾸는 것이 국면 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사명 변경 가능성을 열어두고 저희 고객, 구성원 그리고 고객이 아닌 일반인 등 세 그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일반인들은 85%가 바꿔야 한다고 답했지만 고객들은 절반가량만 바꾸기를 바랐어요. 오래된 고객일수록 바꾸는 데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죠. 파이낸셜 컨설턴트(FCㆍ보험설계사)를 포함한 구성원들은 7대3으로 바꾸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보험은 신규 고객 창출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업종입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영업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고요. 그래서 비전 재정립과 더불어 CI(Corporate Identity) 작업만 하기로 했습니다.”

✚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숙제이겠습니다.
“신뢰를 얻는 덴 왕도도 첩경도 없습니다. 임직원들에게 저마다 열심히 주인의식을 갖고서 일하자고 말합니다. 수호천사 헌장대로 고객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길밖에 없어요.”

✚ 취임 후 보장성 보험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고 동양그룹 사태 속에서도 FC 수가 꾸준히 늘었습니다. 안정적 성장의 발판이 마련됐나요?
“보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보장입니다. 보장성 상품은 은행과 증권사엔 없는 보험사만 보유한 상품입니다. 보장성 상품에 치중해야 이익도 많이 나고 FC들도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요. 저축형 상품보다 팔기 어렵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소득 효과가 더 오래가죠. FC 조직 복원에 공을 많이 들여 부임 후 순증을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 보장성 영업 강화, 기업가치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 보장성 상품이 고객 입장에서도 가입할 만한가요?
“개인적으로 1997년 종신형 상품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입했습니다. 저축은 은행에 하지만 보장성 상품과 연금은 보험회사를 통해야죠. 보험사 간에 상품 비교를 해 볼 순 있겠지만 고객 입장에서도 보장성 보험에 가입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

✚ 대형 생보사와 은행계 생보사들이 저가형 상품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생보 시장에서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인가요?

“동양은 삼성ㆍ한화ㆍ교보 등 빅3보다 상품 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브랜드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상품 경쟁력은 더 높아요. 특히 어린이보험을 특화해 어린이보험 시장을 개척했죠. 상품 경쟁력이 높다는 건 회사의 마진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에요. 궁극적으로는 FC들의 능력에 크게 좌우될 거로 봅니다.”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최선

그는 부임 후 영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전국의 20개 사업단과 41개 센터를 순회했다. 당시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본사 팀장 전원과 3시간씩 연석회의를 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취합한 110여 건의 건의를 해당 부서에서 검토하도록 해 업무에 반영했다. “혼자 다니면서 들은 건의 사항을 메모해 전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왜곡될 수 있지 않습니까? 메모하는 게 꾀가 나기도 해 화상회의라는 꾀를 낸 건데 결과적으로 성과가 컸어요. 이렇게 두어달 돌다 보니 본사에서도 고생을 하는구나 하는 소리가 영업 현장에서도 나오더군요.”

그는 구성원과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동양증권 본사에 떨어져 있는 집무실을 옮겨 본사 근무자들과 동거하게 되면 자신의 공간부터 크기를 줄이겠다고 했다.

✚ 수평적 리더십도 비용이 따르지 않나요?
“기회비용이 들겠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구한서 사장이 올해 초 떡국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떡국을 배식하고 있다.[사진=동양생명 제공]
✚ 동양생명의 핵심 역량이 뭔가요?
“결재 단계를 줄여 의사 결정의 속도가 빠릅니다. 위임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새 상품을 내놓을 때도 상품 담당 임원이 상품을 만들면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바로 출시합니다. 외국계 회사의 경우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한 후 본사의 승인을 받는 데 1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찍이 영업 채널을 다각화했고 CMO(최고마케팅책임자)와 CRO(경영위험전문관리임원)를 두고 있는 것도 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IMF 체제 당시 생성된 위기극복에 능한 DNA, 구성원들의 빼어난 몰입 능력도 빠뜨릴 수 없죠.”
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력서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임원 면접에 이르는 과정에서 걸러진 만큼 맡은 보직에서 제대로 할 사람인지만 판단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재를 할 때도 서류를 잘 안 들여다본다고 했다.
“마주보고 스토리텔링 하듯이 보고하게 합니다. 그래야 포인트를 쉽게 파악하고 머리에도 남아요.”

✚ 독립경영을 하게 됐으니 CEO로서는 운신 폭이 넓어졌겠습니다.
“이사회 산하에 경영위원회를 설치했는데 위원장이 대주주인 보고펀드의 박병무 공동대표고 제가 위원입니다. 특별한 안건이 있으면 서로 합의하게 돼 있어요. 일상적인 경영은 저와 집행임원들 몫이죠. 1대 주주가 보고펀드지만 국민연금 등이 주요 투자자입니다. 이 점에서 국민들이 동양생명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저로서는 주주ㆍ고객ㆍ구성원들의 이익 극대화 외엔 신경 쓸 게 없습니다.”

석달에 한번씩 이력서 써라

그의 멘토는 작고한 그의 아버지다. 생전의 아버지는 그가 진급할 때마다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으레껏 하시는 이야기려니 했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그의 경영 좌우명이 됐다.
“보험 업종은 정직하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꼭 부작용이 생깁니다. 경영전략회의 때도 힘들지만 한 방향으로 정직하게 꾸준히 밀고 나가자고 합니다. FC를 무경험자 위주로 충원해 재무설계등에 대한 교육을 충실히 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아요.”

그는 날마다 액셀로 기록을 남긴다고 했다. 일기보다는 체크 리스트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석달에 한 번씩 자신의 이력서를 작성해 보라고 권한다.  “최근 석달 동안 한 일 중 이력서에 추가할 만한 게 없다면 나이를 떠나서 퇴보한 겁니다.”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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