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가 만난 프랜차이즈 CEO | 김하림 두리아치킨 대표

▲ 2014년을 제2의 성장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김하림 대표. [사진=더스쿠프 포토]
두리아치킨 브랜드의 뜻은 ‘둘이서 하나’다.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두리아치킨의 성장세가 가파르면 갑을 다툼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프랜차이즈에 ‘경종’이 울릴 것이다. 김하림 대표는 “2인3각 달리기처럼 두리아치킨 브랜드를 정직하게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민간식’ 치킨. 1970년대 대중화돼 40여년간 사랑받고 있는 아이템이다. 요리법도 다양하다. 그중 바비큐는 프라이드와 양념에 이어 등장했다. 1990년대 웰빙 영향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치킨 바비큐 브랜드 중 상위권에 거론되는 두리아치킨. 13년 롱런 비결이 궁금해졌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소통이 중요하죠. 고객ㆍ점주ㆍ본사간의 소통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모두의 만족도는 높아지죠. 프랜차이즈란 결국 점주와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실패없는 가맹사업자를 만들려고 노력한 게 롱런의 비결입니다.”

김하림 두리아치킨 대표의 평상시 옷차림은 캐주얼하다. 젠틀하게 양복으로 멋을 부릴 때도 있지만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성격상 캐주얼이 편하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형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그는 성장과정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그는 농산물 개방으로 농민 생존권이 위협받자 ‘농산물직거래 유통’을 시작했다. 농민운동의 일환이었는데, 수도권에 직거래 장터(매장)를 개설하고, 경기도 안성, 충북 괴산 등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했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에 12개 매장을 개설할 정도로 당시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런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남들의 따라하기’였다.

두번째로 선택한 유통사업은 콩나물이었다. 당시 국산 콩나물은 제대로 유통되고 있지 못했다. 수입콩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는 여기에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바로 항아리였다. “국내산 콩으로 항아리 콩나물을 재배한 다음 항아리에 담아 유통을 했어요. 맛과 품질에서 수입콩으로 재배한 콩나물을 앞지르면서 큰 인기를 얻었죠”

▲ [더스쿠프 그래픽]
콩나물을 유통하던 그가 프랜차이즈에 관심을 가진 건 15년 전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는 당시 창업을 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와중에 프랜차이즈에 대한 얘기도 들었는데, 대부분 평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를 찾기가 힘들까’ 싶더라고요. 한번 만들어 보자는 오기가 생겼죠. 그동안의 유통사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점주와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본사,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어요.”

아이템은 치킨으로 결정했다.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인데다 생계형 아이템이어서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쉬운 길을 거부했다. 소스부터 식자재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식자재 일일배송시스템도 만들었다. 자체 물류시스템을 갖추면서 김 대표는 가맹점에 공급하는 치킨과 식재료의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같은 매출을 올리더라도 두리아치킨 가맹점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대표는 2014년을 두리아치킨의 제2성장기로 정했다. 두리아치킨의 장점인 소스를 비롯한 메뉴개발에 신경을 더 쓰는 한편 가맹점의 매출상승을 위한 마케팅도 전개할 방침이다. 현재 두리아치킨의 가맹점은 전국 170여개다. 김 대표의 꿈은 두리아치킨을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고 장수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거다. ‘둘이서 하나’라는 브랜드명名처럼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성장’하는 거다. 힘든 꿈이지만 지켜볼 만하다. 
이호 더스쿠프 창업전문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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