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채널 흔드는 해외직접구입

▲ 지난해 배송대행업체 몰테일에서 구매 1위 해외사이트는 갭이었다.[사진=뉴시스]
해외 브랜드 제품은 국내에만 들어오면 가격이 뻥튀기하듯 비싸진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호갱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인다. ‘해외직접구입(해외직구)’가 늘고 있다.

# 서울시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은영씨. 그는 최근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파주점에 방문했다가 한 해외유명 브랜드의 부츠에 시선을 뺏겼다. 김씨가 눈독을 들인 부츠의 정가(백화점 기준)는 48만원. 하지만 이곳 프리미엄아울렛에는 50% 할인된 가격인 24만원에 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라인에서 가격을 검색한 김씨. 그런데 미국 온라인 쇼핑사이트인 아마존에서는 같은 제품이 120달러(약 12만7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해외배송료를 포함해도 15만원이 넘지 않는다. 김씨는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다’며 흠칫 놀란다.

#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김효진씨. 미국에 거주하는 블로거들을 이웃으로 등록한 그는 신제품이 올라오면 눈여겨봤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왔을 때 산다. 그는 최근 미국 LA에 거주하는 한 블로거를 통해 국내 백화점에서 40만원이 넘게 팔리는 고가의 가방을 10만원대에 구매했다.

삼성 스마트TV를 해외직구로 구입

▲ [더스쿠프 그래픽]
# 인천 연수구 사는 박나은씨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해외직구를 즐긴다. 다행히 해외 웹사이트 중엔 한국어 표기가 돼 있거나 한국으로 직접 배송을 해주는 곳이 적지 않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무료배송까지 해준다. 박씨는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비타민·샴푸 등 생필품을 구매한다. 가격은 국내 수입 가격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저렴하다.

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해외직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직구족族은 말 그대로 해외직구를 즐겨하는 이들을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여름 온라인쇼핑족 1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 직접구매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4.3%가 “해외 인터넷쇼핑몰이나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상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들의 해외직구 건수와 이용액도 늘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318만회, 2억4200만 달러에서 2011년 500만회, 4억3100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2012년에는 720만회, 6억4200만 달러로 급증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 배송대행업체(일명 배대지)로 알려진 몰테일의 2012년 매출은 200억원을 넘겼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몰테일의 법인인 메이크샵앤컴퍼니의 매출은 2011년 114억에서 211억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3년 예상 매출액은 무려 400억원이다. 매년 2배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 불고 있는 ‘해외직구 열풍’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외국에서 결제할 때 비자나 마스터 브랜드에 붙는 국제카드 수수료 1%를 내지 않아도 되는 비씨글로벌카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1년 발급되기 시작한 이 카드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400만좌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아마존에서 결제하는 건에 한해 배송비 무료행사를 진행해 해외직구족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해외직구족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한·미 FTA, 한·유럽연합(EU) FTA 발효로 관세장벽이 낮아졌음에도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대한상의가 소비자 1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91.3%가 “FTA 체결 이후에도 해외브랜드 상품가격은 동일하거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유럽 명품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려 소비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직구를 통한 제품구입은 물류배송비를 감안하더라도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현지 온라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면 절반 또는 그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다. 해외직구를 잘만 하면 국내에서 60만원 정도에 팔리는 고가의 패딩 제품을 약 20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가 하면 백화점에서 40만원에 팔리는 유명 브랜드 가방도 10만원대에 살수도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미국 최대쇼핑시즌인 2013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배송대행업체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삼성 스마트TV를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하려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몰테일 관계자는 “스마트TV 배송으로 최근까지도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며 “관세와 해외배송료를 포함해도 국내에서보다 100만원 가까이 저렴하다보니 소비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준상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요즘은 20대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모바일에 익숙한 30~40대도 해외직구를 한다”며 “가족 단위의 소비자들은 아이를 위한 옷이나 장난감을 비롯해 건강식품·주방용품까지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세일 시즌에는 국내와 비교해 80% 가까이 저렴한 것도 있다”며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로 몰리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해외직구에 뛰어드는 방식도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신용카드나 페이팔(인터넷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을 통해 결제한 뒤 국내 배송대행업체를 통해 제품을 받는 거다. 현지에서 제품구매부터 배송까지 대행해주는 구매대행 업체도 있다. 언어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시간을 절약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형태다. 해외 국가에 거주하는 유학생이나 한인들은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제품을 구매한다.

▲ [더스쿠프 그래픽]
한 소비자는 “미국 LA 등지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이 미국 현지 백화점이나 온라인몰에서 세일을 할 때마다 제품을 올린다”며 “패션 감각이 좋은 블로거 몇몇을 이웃으로 추가해 원하는 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들을 통해 구매하면 편하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해외직구 열풍이 식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배송대행업체들이 대형화되고 있다. 국내 최대 배송대행업체 몰테일은 미국에만 3개의 물류센터를 두고 최근에는 독일·중국·일본에도 물류센터를 세웠다.

배송업체의 서비스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현지에 물류센터를 두는 것은 기본이고 직접 상품검수까지 마쳐 제품을 국내로 보낸다. 빠르면 이틀 안에 배송을 해주고 최대 한달까지 상품을 무료보관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해외직구 방법도 제각각

이는 해외직구 생태계가 개선되고, 해외직구족이 더 늘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해외직구와 관련해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사전에 제품을 미리 사용해본 이들이 자세한 후기를 남기는 가하면 이들 커뮤니티에는 해외 사이트의 ‘핫딜’ ‘클리어런스 세일(Clearance Sale·마감 세일)’ 등의 할인정보가 빠르게 업데이트 된다.

해외직구가 늘어날수록 낯빛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곳은 유통업계다. 해외직구 대비 가격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김도현 국민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가장 큰 고민은 온라인몰과 가격경쟁을 해 이기기 어렵다는 거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해외직구라는 더 무서운 경쟁자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추후 해외직구가 더욱 확산되면 국내 소매시장이 잠식될 수 있었다”며 “이는 유통기업은 물론 국산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기업의 매출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해외 배송대행업체 몰테일은 미국에만 3개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LA에 있는 몰테일 카슨 센터. [사진=뉴시스]
하지만 해외직구가 현재의 유통망을 흔들기에는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직구·병행수입 등이 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병행수입이나 해외직구가 늘어난다고 해외브랜드 수입사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백화점 등의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통한 구매를 신뢰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국내 소매 유통업체들의 서비스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직구가 다양한 구매채널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직구, 모바일 쇼핑·홈쇼핑·아울렛이 모두 같은 개념”이라며 “가치 소비가 인기를 끌수록 기존의 고가라인 수입브랜드나 정통 오프라인 업체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해외직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이런 와중에 아마존의 국내 상륙 소식이 들려오면서 유통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확한 진출 여부와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업계 안팎엔 “한국에 법인을 세웠다” “일본과 독일에 진출한 것처럼 한국 내 사업자들이 통신판매를 하는 형태에서 그칠 것이다” 등 카더라 통신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직구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해외사이트 중 하나가 아마존”이라며 “어떤 형태로 진출하든 국내 유통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동희 성균관대(인터랙션사이언스학) 교수는 “아마존이 국내에 상륙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말을 이었다. “제아무리 아마존이라고 해도 몇몇 대형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는 한국의 독특한 온라인 마켓을 뚫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아마존으로선 아시아 시장진출의 교두보를 한국에 놓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마존 등장에 유통업체 ‘벌벌’

아마존의 앞선 기술도 유통업체를 위협할만 하다. 김도현 교수는 “아마존의 서비스를 한번쯤 사용한 사람이라면 아마존의 진출을 기다릴 것”이라며 “간소한 환불절차라든가 별다른 프로그램 설치가 필요없는 결제시스템은 국내 업체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기준으로 아마존 회원수는 1억7000만명을 돌파했다. 미국에서만 매달 1억1000만명이 방문한다. 이는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 수준이 아마존을 방문한다는 얘기다. 유통시장을 흔들 변수는 이처럼 수없이 많다. 모두 해외직구에서 파생된 변수들이다. 유통업체가 격변기를 맞고 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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