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통계 | 미 상위 1%, 소득증가율 95% 차지

▲ 최근 경기회복 국면에서 미국의 상위 1%가 전체 소득증가의 9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사진=뉴시스]

경기회복기 미국의 상위 1%가 소득증가의 95%를 차지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경제성장의 열매를 일부 고소득층이 따먹었다는 것이다. 경기는 개선되고 있다는데, 체감경기가 여전히 냉랭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미국에서는 기업의 이윤만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2000년을 기준으로 기업이윤은 3.5배 상승했지만 노동 소득은 겨우 50% 상승하는데 그쳤다. 다른 모든 경제지표는 여전히 부진한 모습이다. 가계 소득은 정체돼 있고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지난 20여년간 미국의 외식 산업에서 나타난 CEO의 평균 보수와 노동자의 실질 최저임금 추이를 살펴보자. 2012년 기준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년 동안 풀타임으로 근무하면 1만5080달러를 벌었다. 같은 기간 CEO가 받는 평균 보수는 옵션을 포함해 1180만 달러에 달했다. 788배 차이가 나는 엄청난 금액이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꼬박 1년을 쉬지 않고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을 CEO는 반나절만 일하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노동생산성이 788배의 차이를 보일 수 있을까. 경제학적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을 때 전미외식산업협회는 임금인상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미국의 극심한 소득양극화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논문이 지난해 발표됐다. 상위 1%의 소득 연구에 권위 있는 젊은 두 학자 토마스 피케티와 엠마뉴엘 새즈가 2012년 미국의 소득분포 분석 결과를 새롭게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2009~2012년 경기회복 국면에서 상위 1%가 전체 소득증가의 95%를 독차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2년 상위 10%와 상위 1%, 그리고 상위 0.1%는 각각 전체 소득의 50.4%, 22.5%, 11.3%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3년(2009~2012년) 경기회복 시기 미국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6% 늘어났다. 상위 1%는 가구당 평균소득이 31.4% 증가했지만 하위 99%의 평균소득은 0.4% 증가하는데 그쳤다. 결국 상위 1%가 경기회복의 열매 95%를 독차지했다는 얘기다. 나머지 99%가 5%를 나눠 가진 것이다. 2012년만 놓고 보면 상위 1%의 소득은 19.6%가 증가했지만 하위 99%의 소득은 겨우 1% 늘어나는데 그쳤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위소득의 비중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상위소득의 비중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상위 10%의 소득비중은 50.4%를 기록했다. 이는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19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역사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금융규제와 세제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경기침체에 따른 상위소득 비중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美 외식업 노동자-CEO 임금차 778배

1929년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빈부격차는 눈에 띄게 완화됐다. 당시 뉴딜정책에 따라 엄격한 금융규제와 진보적 누진세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1년과 2008년의 경기침체는 상위소득 비중을 일시적으로 하락시켰을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금융규제와 소득세 개편은 뉴딜정책에 비해 매우 온건한 수준의 정책 변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상위 1%의 소득비중은 20세기 들어 급격한 변동을 보였다. 1913년 근대적 의미의 소득세 제도가 시작될 당시 상위 1%의 소득비중은 18%였다.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에 비유되는 1920년대를 거쳐 대공황 직전에는 24%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경제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자본주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소득비중은 1970년대 9%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07년 금융위기 직전 다시 23.5%로 치솟았다. 결국 미국 상위 1%의 소득비중 추세는 전반적인 소득불평등 추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란 얘기다.

1993~2012년 19년 동안 미국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17.9% 증가했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0.87% 늘어났다. 하지만 상위 1%의 소득을 제외하면 평균 소득 증가율은 6.6%로 떨어진다. 연평균 0.34% 불과한 미미한 수치다. 같은 기간 상위 1% 소득은 86.1%, 연평균 3.3%가 증가했다. 결국 20년 동안 경제성장 수혜의 압도적인 비중을 상위 1%가 가져간 것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심각한 소득불평등은 최근 2차례의 경기회복 기간 견고한 거시경제 지표와 대중이 체감하는 경기가 큰 차이를 보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경기회복의 수혜가 상위 1%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국민은 경기회복을 전혀 체감하지 했다는 얘기다. 이른바 소득 없는 경기회복이다. 또한 2005년 이후 언론ㆍ학계ㆍ대중담론 등에서 상위소득과 양극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경기회복의 열매가 상위 1%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불평등의 역사적 추세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소득비중은 1995년 6.9%에서 외환위기 직후 6.6%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1999년부터의 상위 1%의 소득비중 상승률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다. 2010년 11.9%를 기록하며 영국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상위 1%의 소득비중만 놓고 보면 영미권 국가 다음으로 높고 상승 추세는 그 어떤 나라보다 급격하다고 할 수 있다.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6.2%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2010년 상위 1%는 소득증가분의 1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소득자 상위 1%는 종합소득 증가분의 34%, 근로소득자 상위 1%는 근로소득 증가분의 11%를 차지했다. 미국보다는 심각하지 않지만 소득의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소득불평등 확대가 사회경제적으로 효율적인지, 그리고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만약 효율적이지 않고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와 세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소득 중심의 성장전략 추구해야

▲ 공평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금융규제강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사진=뉴시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부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다. 과거 기업 정책에 따라 기업의 이윤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윤의 순환은 해외투자와 금융투자, 사내보유이윤 증가로 끝났다. 더 이상 기업의 호주머니가 국민경제의 블랙홀이 되는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 親기업 정책이 親가계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부자기업과 가난한 가계’ ‘임금 없는 성장’ ‘소득 없는 성장’ 등 거시경제 문제의 근원은 친기업 정책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정상화 과정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가계소득 증가→내수활성화→투자증가→고용증가→가계소득 증가의 선순환구조, 즉 소득중심의 성장전략을 추진해야한다. 그 첫걸음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임금인상이다. ‘공평한 성장(equitable growth)’이란 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이나 기득권이 아닌 산출물 생산에 기여한 모든 계층에게 돌아가는 성장을 뜻한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금융규제강화는 공평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3대 정책기조다.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norec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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