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 인 | 베일을 쓴 소녀

영화 ‘베일을 쓴 소녀’의 원작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소설 「수녀 The Nun」다. 드니 디드로는 문화계의 대부호이자 철학자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다. 그는 프랑스 랑그르의 부르주아 가톨릭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엄격한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에겐 ‘여자 소크라테스’라고 부를 만큼 애정을 쏟은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28세가 되던 해에 수녀원에서 정신병으로 죽는다. 드니 디드로 역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13세에 원치 않는 삭발을 당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예수회의 수도사가 되기 위해 파리로 건너간다.

▲ 베일을 쓴 소녀의 한 장면. [사진=뉴시스]
하지만 신앙 대신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하면서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다. 「수녀 The Nun」은 1760년에 쓰였지만 발행된 건 그로부터 36년이 흐른 1796년이었다. 이 소설은 당시 수도원의 해악을 폭로해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위험한 작품으로 간주됐다. 주인공의 노골적인 일탈 행동을 묘사해 선정적인 작품으로 치부되면서 오랫동안 금서 판결을 받았다.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건 1966년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감독인 자크 리베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2년간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기욤 니클루 감독이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영화화한 건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엄격하게 자라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베일을 쓴 소녀’는 사춘기 때부터 생각하고 준비한 프로젝트다. 기독교 집안에서 엄하게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교육과 신앙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신학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춘기 때, 펑크뮤직과 아나키스트들을 알아가면서 본능적인 감각들이 깨어날 무렵, 닥치는 대로 읽어 대던 책 중에 「수녀 The Nun」가 있었고, 이 책을 접하고서 나의 인생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 베일을 쓴 소녀의 스틸컷. [사진=뉴시스]
그는 이후 수녀원에 갇힌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화할지 고민하며 살았다. 다행히 영화는 그의 고민만큼 무게가 있다. 캐스팅도 적절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인공 수잔역을 맡은 폴린 에티엔은 기욤 니클루 감독이 보자마자 캐스팅을 결정했을 만큼 순백의 미를 뽐낸다. 청순하면서도 연약한 모습 뒤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연기도 일품이다. 수잔을 괴롭히는 원장 역할을 맡은 루이즈 보르고앙의 독기어린 연기는 같은 여자가 봐도 무서울 정도다.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충격적인 연기 변신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한다. 수녀원의 숨은 이야기. 그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소녀의 힘든 여정. 늦었지만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guhs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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