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다시 세우자

구글이 최근 2년간 벤처기업의 기술을 인수(M&A)하는데 사용한 금액은 170억 달러(약 18조원)다. 페이스북이 2012년까지 사들인 기술은 20개나 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이 벤처기업을 투자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이 다른 기업의 기술을 흡수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다. 창조경제를 이끄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대한민국이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 정부는 벤처캐피탈이나 엔젤투자자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디를 가든 요즘 화두는 ‘창의성’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창의성을 논의하느라 분주하다.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논의되는 창조경제가 국가수준의 창의성이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어려운 게 아니다. 국가차원의 창조자산(인적ㆍ물적ㆍ자본적 자산)을 국민적 창조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창조경제를 실현했던 국가를 살펴보면 된다.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ㆍ독일ㆍ미국ㆍ일본이다. 이들의 창조경제를 살펴보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1997년 영국은 토니 블레어 내각이 출범한 후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창조경제를 추진했다. 흥미로운 것은 창조경제 주관부처가 문화미디어체육부였다는 점이다. 영국이 무너진 제조업을 대신할 신사업으로 문화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영국의 대중음악과 영화의 수출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2년 영국의 GDP(국내총생산)의 6%는 문화창조산업에서 나왔다. 경제유발효과만 3조63억 파운드(약 5227조원)에 이른다.

민간시장 재량이 창조경제 핵심

영국이 문화예술산업으로 창조경제를 이뤘다면, 독일은 굴뚝산업으로 창조경제를 실현했다.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이나 소재의 경쟁력을 활용한 것이다. 기업이 갖고 있는 창의력을 활용해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었고,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린 셈이다. 주목할 점은 독일이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제조업을 양성하면서도 첨단산업과 경계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유는 단순하다. 독일이 지향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어서 제조업 혹은 첨단산업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 [더스쿠프 그래픽]
영국과 독일이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을 뒷받침하는 네트워크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이런 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양성기관을 세우는 등 인풋(투입요소)을 두루 갖췄다는 얘기다. 여기에 산업혁명(영국)을 거친 것이나 히든챔피언(독일)이 많은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창조적인 활동은 기업이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가 지원하며, 창조활동이 비즈니스 가치를 갖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서 비롯된다. 기본적으로 이런 구조가 갖춰져야 창조활동의 결과물이 특허와 신기술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첨단산업으로 창조경제를 구현한 미국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창조경제 핵심은 첨단산업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실리콘밸리다. 미국에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수많은 산업단지가 철저하게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돌아간다.

미국 창조경제의 특징은 두가지다. 첫째는 위험을 철저하게 분산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창업자가 사업에 실패를 하면 100% 본인 책임이다. 법적책임이 크다 보니 파산신고를 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위험을 분산시켜 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엔젤투자자’다. 엔젤투자자의 기본적인 역할은 벤처기업과 대기업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들은 벤처기업으로 하여금 대기업이 살 만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수요란 시장가치가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그런 수요를 흡수하는 주체가 대기업인 것이다.

사람들은 제품이 창의적이면 곧바로 수요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제품이라고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산업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근 IT산업의 유망주로 떠오른 3D 프린터는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 등장했다. 3D 프린터라는 개념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3D 프린터로 사업에 도전했고, 실패했다. 그런 역사가 하나 둘 쌓이면서 3D 프린터가 대중에게 알려졌고,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엔젤투자자는 벤처기업의 기술이나 제품이 비즈니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세심하게 따져본다. 시장가치가 있는지 보는 셈이다. 확신이 있다면 엔젤투자자는 창업자에게 초기 창업 자금을 투자하고, 이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성해 개미(일반투자자)의 투자를 이끌어낸다. 크라우드 펀딩은 전문적인 펀딩회사가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소액으로 투자를 받는 방법이다. 향후 사업실패의 리스크를 다수에게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다.

▲ [더스쿠프 그래픽]
미국의 창조경제에서 나타나는 두번째 특징은 회수시장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회수시장이란 M&A(인수합병)를 뜻한다. 엔젤투자자는 벤처기업의 기술을 대기업에 매각하려고 한다. 혹자는 생태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IPO(기업공개)를 위해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은 모든 기업의 꿈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 게 아니다.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국내에서는 약 12년, 미국에서는 15년 넘게 걸린다. 그동안 벤처기업들은 자금과 인력의 한계를 겪으며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엔젤투자자도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엔젤투자자가 벤처기업의 기술을 대기업에 매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M&A 효과는 다양하다. 엔젤투자자는 벤처기업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대기업은 벤처기업의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경쟁력과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M&A를 통해 얻은 투자금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또 다른 기술개발에 착수한다. 구글이 최근 2~3년 동안 벤처기업 100여개를 인수한 것이나 페이스북이 지난 1년간 20~30개의 벤처기업을 사들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M&A시장이 발달된 덕분에 미국 벤처기업들은 기술을 매각할 수 있는 판로를 확보하게 됐다. 결국 이런 생태계가 미국의 산업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에도 창조경제를 실현한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의 교토京都시다. 일본의 기업들은 국내 기업과 같이 수직계열화의 특성을 보인다. 모기업이 수십개의 계열사와 하청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산업구조에서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교토는 대기업과 협력기업 간의 기술지도가 활발하다. 일례로 자동차 생산기업 도요타가 하청기업을 상대로 기술지도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두 기업은 효율이 상승해 원가를 절감한다. 그 가치가 1000만원이라고 한다면 도요타는 하청기업으로부터 그만큼의 가치를 회수하지 않는다.

▲ 창조경제의 핵심은 민간시장에 재량을 주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이런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래전 교토가 갑을甲乙의 횡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교토 상인과 기업이 갑을구조를 타파했고, 그 힘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특정 기업의 시장의존도를 줄이고자 다양한 판로를 모색했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토 시내에 위치한 대학이나 중소기업과 교류하며 새로운 벤처기업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소형모터생산기업 일본전선이다.

정부의 역할은 생태계 통합자 구축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로 창조경제가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액셀(지원)과 브레이크(규제)를 동시에 밟고 있다. 과도한 기업 규제와 간섭으로 창조경제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민간시장의 재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가 무위無爲를 얘기했던 것처럼 정부가 시장에서 한발 물러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부부처 간의 연계를 높이고, 대학ㆍ연구소ㆍ산업 간의 긴밀함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연구를 위한 R&D(연구개발)나 단기적인 성과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손을 떼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생태계 통합자를 만드는 것이다. 벤처캐피탈이나 엔젤투자자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창조경제 2년,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 도움말=이홍 광운대(경영학) 교수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