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4 | 이 사람들의 선택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가 ‘삼성 위기론’을 지피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둔화로 삼성이 예전처럼 고공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삼성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경영성과만이 아니다.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신경영 선언(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보다 독한 뭔가가 필요하다.

▲ 삼성 위기론은 제2의 신경영 선언이 나오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던 지난해 10월 30일 저녁. 잔치를 마련한 주인이 등장했다. 그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재무장하라.” 승자의 여유나 예의를 차린 겸양이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비장했다. 이날 기념행사는 위기로 시작해 위기로 끝났다.

‘이건희 회장의 시선은 향후 10년을 향한다’는 세간의 말은 괜한 게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갑오년 새해 첫날부터 흔들렸다. 1월 2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거래보다 4.52%(6만2000원) 하락한 131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130만원 초반대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3개월만이다.

주가가 4% 넘게 빠지면서 이날 시가총액은 192조9621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시총(202조949억원)과 비교하면 10조원이 하루아침에 증발한 것이다. 삼성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서다. 1월 7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9조원, 영업이익 8조3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 분기 대비 각각 0.14%, 18.31% 감소했다.

시장의 눈은 영업이익에 쏠렸다. 증권가가 전망한 시장예상치 평균 영업이익(9조7000억원)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어닝쇼크였다. 한편에선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반론이 나오긴 했지만 삼성전자 위기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시장은 삼성전자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의 3분의 2가 IM사업부(IT기기ㆍ모바일)에서 나온다. 문제는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든 데다 단말기의 중저가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점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예전처럼 높은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 [더스쿠프 그래픽]
당장 IM사업부의 실적을 상회할 만한 뚜렷한 동력이 없다는 건 삼성전자에게 치명적이다. 사업이 편중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를 예견한 듯 2010년부터 5대 신수종 사업(태양전지ㆍ자동차배터리ㆍ발광다이오드ㆍ의료기기ㆍ바이오)을 추진했다. 사업이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성과는 요원하다. 이 회장을 고민에 빠뜨리는 것은 경영성과만이 아니다.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경제민주화가 삼성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비정규직 양산 논란 등 각종 이슈에서 삼성이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의 연장선상으로 사회책임경영이 강조되면서 삼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뛰어난 경영성과는 물론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공헌에 참여해야 함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직원 자살사건은 삼성의 그늘이 짙다는 걸 보여준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사에서 두가지를 약속했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 달성과 사회봉사활동 전개다. 약속의 절반은 지켰고, 절반은 지키지 못했다. 아직 시간은 있다. 2012년 이 회장은 취임 25주년을 맞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금 삼성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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