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버스와 밤, 그리고 문화

대한민국의 밤이 친절해졌다. 24시간 영화관 상영은 물론 애견카페ㆍ미용실ㆍ 빵집까지 24시간 영업을 한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숍도 계속 늘고 있다. 한 대형 커피전문점은 전체 매장 중 25%가 24시간 매장일 정도다. 서울의 모든 지역에선 새벽 2~3시 늦은 시간에도 버스가 다닌다.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며 퇴근하던 지갑 얇은 야근족에겐 ‘희망버스’나 다름 없다. 

◇고상한 올빼미 夜문화에 홀릭= 대한민국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굳이 밤낮 가릴 필요는 없다. 늦은 새벽시간까지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다. 쇼핑을 하고 머리를 자를 수도 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밤이 이곳에 있다.

▲ 새벽 시간 동대문 지역엔 생기가 돈다. 이곳 상점은 대부분 동이 틀 때까지 문을 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패션회사에 근무하는 박은영(28)씨. 박씨는 금요일이면 항상 자정까지 근무한다. 하지만 택시를 이용해 귀가하기보다 금요일 밤을 즐긴다. 일단 회사 근처의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 근처로 향한다. 이곳 패션쇼핑몰은 새벽 5시까지 문을 연다. 근처 음식점, 커피전문점, 화장품 가게도 마찬가지다 대형 패션쇼핑몰 안에 있는 영화관은 아침까지 영화를 상영한다. 헬로apm 앞 타로카드 가게에서는 새벽 5시에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박씨는 택시비로 쓸 돈으로 영화관람에 커피 한잔, 거기에 쇼핑까지 즐긴다. 일석삼조다.

▲ [더스쿠프 그래픽]
동대문뿐만 아니라 강남 지역도 밤문화가 발달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신논현역 근처에 있는 한 파리바게뜨 매장은 24시간 운영한다. 조금 떨어진 학동 사거리 쪽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애견카페도 있다.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상영하는 건 기본이다. CGV 강남점은 2012년 6월 1일부터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영화관’ 콘셉트를 내걸고 평일·주말에 관계없이 24시간 내내 영화를 상영한다. 이용객도 많다. CGV 관계자는 “CGV 강남점의 경우 전체 관람객의 10%가 밤 12시 이후 관람객”이라며 “상권 특성상 새벽까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밤 문화는 외국인들도 인정할 정도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서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2년간 근무하다가 몇달 전 고향인 프랑스로 돌아간 벵상 듀퐁(30)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있을 때 강남에 거주했다.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면 즐길거리가 많았다. 밤이면 조용해지는 유럽과는 딴판이다. 24시간 내내 영화를 볼 수 있고 밤새 문을 여는 커피숍, 패스트푸드 전문점, 편의점도 많다. 이곳 미용실은 새벽에도 문을 연다. 재미있는 곳이다.”

그의 말처럼 24시간 영업하는 국내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늘고 있다. 현재 맥도날드 347개 매장 중 291개가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전체의 80%가 넘는 매장이 24시간 운영중이다. 롯데리아도 2013년 기준 1157개 매장 중 37개 매장이 ‘24시간 운영 체제’로 돌아간다. 24시간 운영하는 커피전문점도 점점 늘고 있다. 2013년 기준 탐앤탐스 전체 매장 396개 중 98개, 엔제리너스 커피는 845개 매장 중 116개 매장이 24시간 운영 매장이다.

24시간 운영매장이 증가하는 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탐앤탐스 관계자는 “24시간 운영매장은 매년 10~15개씩 증가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야간 활동 인구가 늘어난 게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번화가의 경우 새벽 늦게까지 놀다가 커피전문점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많다”며 “요즘에는 밤낮 관계없이 공부, 모임 등을 하는 이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과거 밤문화는 술문화로 여겨질 정도로 새벽까지 여는 곳은 술집이나 노래방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고 간편한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게 가능해졌다. 대한민국의 밤문화가 고상해졌다. 

◇ 6300명 꿈 실은 夜한 올빼미 버스=새벽녘까지 일하는 직장인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심야택비시를 지원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비용절감’을 꾀할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해 등장한 심야전용버스가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 평균 승객은 6300여명이다.

▲ 늦은밤에도 심야전용버스 정류장은 승하차하는 이들로 붐빈다.[사진=뉴시스]
서울 종로 지역에서 회사를 다니는 박정범(33)씨. 그의 집은 강서구 등촌동에 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박씨는 늦으면 새벽 2~3시에 끝난다. 회사에서 택시비를 따로 지원해주지 않아 월 택시비로만 15만원 이상 쓴다. 편의점에서 값싼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박씨. 200만원 정도 받는 월급쟁이 박씨에게 저축은 언감생심, 택시비는 부담 그 자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야전용버스(이하 올빼미 버스)를 이용하면서부터다.

올빼미 버스가 야근족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요금이 저렴해 주머니가 얇아진 직장인에게 제격이라서다. 교통카드 기준 1850원인데 이는 택시심야시간 기본요금(3600원)의 절반가량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6300명, 대당 평균 143명 정도 탑승하는 꼴이다. 서울 지역 웬만한 곳은 모두 지나간다는 것도 장점이다. 종로와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서울 내 9개 노선이 방사형 네트워크로 연결돼 이동 가능 범위가 넓다.

올빼미 버스는 지난해 4월 2개 노선(N26·강서~중랑, N37·은평~송파)을 3개월 동안 시범적으로 운행했다. 3개월 시범 운행 기간 총 이용객수는 22만명, 하루 평균 이용객수는 2000명 정도였다. 노선을 확대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는 88.4%에 달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7개 노선을 추가해 현재 총 9개 노선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13~10월 12일 올빼미 버스를 모니터링한 결과, 승객 중 64.6%는 일반인과 직장인이었다.
 
▲ [더스쿠프 그래픽]
대리기사(23.5%)와 학생(11.9%)이 뒤를 이었다. 이는 늦은 시간 귀가하는 직장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 대한민국의 근로자 1명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번째로 길다. OECD 평균(1776시간)보다 314시간 길다. 그런데 직장인 중 상당수는 야근을 하더라도 교통비를 지원받지 못해 울며겨자먹기로 택시를 타거나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잔다. 직장인들이 올빼미 버스의 등장을 환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북구 우이동에서 서울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병윤씨는 “가끔 야근을 하는 것도 억울한데 택시비까지 내 돈으로 썼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하지만 배차시간이 너무 길어 버스 안은 항상 콩나물시루 같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 게시판에는 심야전용버스의 배차 간격을 줄여 달라는 요구가 많다. 노선을 새로 신설해 달라는 요청도 많이 올라온다.

현재 심야 전용버스 대수는 45대, 배차간격은 40~45분이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교통정책관 버스정책과 노선팀 관계자는 “심야 전용버스의 증차는 여러 문제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조만간 배차 간격을 조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선 증설 또는 운행 경로 변경 등을 장기 모니터링을 통해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야한 대한민국, 이젠 올빼미 버스가 밝힌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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