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권리금보호법안 실효성 논란

▲ 임차인의 점포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부동산 시장의 최대 이슈는 점포 권리금이다. 정치권은 업계에선 통용되지만 법적 권리가 아닌 점포 권리금을 법망 안으로 끌어들여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일환으로 상가권리금보호법안도 제출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점포 권리금 관행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 자릿세가 이어져온 것이란 설도 있고, 한국전쟁 직후 종로시장 통에서 좋은 자리를 먼저 잡은 상인에게 다른 상인이 “다 팔면 자리 좀 빌려 달라”며 성의를 표시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1960~1970년대 급속한 도시화로 상가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권리금을 주고받는 게 관행이 됐다는 거다. 점포 권리금의 문제는 이것이 법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점포 임대차 계약은 일반적으로 2년이다.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임대료를 조정한다. 이 때문에 재계약을 앞두고 건물주가 건물을 매매하는 경우 새 건물주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가라는 통보를 할 수도 있다.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고 하면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럴 경우 임차인이 부담한 권리금은 고스란히 사라진다. 다음 임차인에게 받아야 하는 권리금은 건물주가 “내 건물 내가 알아서 쓰겠다”고 주장하는 순간 폭탄으로 돌변한다는 얘기다.

주택 전세금이나 상가 보증금, 토지 매매금 등 부동산과 관련해 거래되는 돈은 법에 그 규정이 명시돼 있다. 얼마에 사고팔았는지 정부에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권리금만은 예외다.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임차인 간의 거래관행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현행법상 건물주가 임차인의 권리금을 물어줘야 할 책임이 없다. 법이 보호해주지 않으니 당연히 세금도 내지 않는 우리나라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지하경제다.

때문에 건물주와 권리금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소송 등 법적 대응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최근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리금 문제 이외에도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쫓고 임차인이 형성한 권리금을 임대인이 약탈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는 어떨까. 일단 임대차 계약기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다. 프랑스의 임대차 계약기간은 기본 10년, 영국은 7년, 일본은 기간 약정이 아예 없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정서상 건물주가 세입자를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상가를 양도ㆍ양수할 때도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한달 이상 건물과 점포의 가치를 평가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외에도 상인들의 장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상가권리금보호법안은 외국의 상황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임차인이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도 법적 보장을 받지 못했던 관행을 개선해 권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명문화하는 게 법제화의 핵심이다. 법안은 임대차 계약종료시 기존 임차인이 새 임차인과 점포 이전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권리금을 받는 절차와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점포 권리금 평가 어려워

권리금 보장을 위한 계약서 작성도 의무화했다. 기존 임차인과 새 임차인이 권리금을 주고받았을 경우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건물주에게 통지하는 거다. 또 권리금을 지급한 새 임차인은 관할 세무서장에게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이는 새 임차인이 권리금 보호를 받기 위해 해야 할 의무조치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권리금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건물주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나쁜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법안은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할 수 없게 했다. 특히 임대차 계약종료 후 1년 이내에 건물주가 직접 기존 임차인이 했던 영업과 동일한 영업을 할 경우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보고 손해배상청구를 가능하도록 했다. 또 권리금을 ‘상가건물의 시설이나 설비, 거래처나 구매처에 대한 권리, 상가건물의 장소적 이익, 영업적 노하우와 그 밖의 영업권의 대가로 수수되는 금전’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형성되는 점포 권리금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의문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조차 권리금을 실제로 감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 난색을 표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2014년 1월 1일 시행)조차 임차인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거다.

기존 법은 소규모 점포(환산보증금 4억원 이하)에 대해 5년간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해왔다. 계약기간이 너무 짧을 경우 임차인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 바뀐 법에선 이를 대형 점포로 확대했다. 환산보증금 액수에 관계없이 최소 5년간은 재계약을 거절당하지 않고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언뜻 실효성이 커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월세 인상률 상한선(9%)’은 종전처럼 소형점포에만 적용되도록 놔둬서다. 건물주가 월세를 2~3배씩 올리면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임차인이 없다. 개정법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주면서 건물주에게는 그걸 무력화할 ‘임대료 폭탄’을 그대로 허용한 셈이다.

▲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점포는 재계약 때 월세가 2배씩 오른다.[사진=뉴시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상권은 재계약 때 월세를 2배로 올리는 게 공식처럼 돼 있다. 5년을 버텨도 문제다. 그 후엔 건물주가 언제든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고려하거나 매각을 할 경우 권리금을 날리게 된다.

그럼 임차인이 5년간 점포를 운영하면서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까. 소상공인진흥원이 지난해 임차인 1만490명을 상대로 월 순이익을 물어본 결과, 100만원 미만이 27%, 100만∼200만원이 29.7%, 200만∼300만원이 23.9%였다. 응답자의 80.6%의 월 순이익이 300만원 미만이었다.

환산보증금도 문제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은 ‘보증금+(월세×100)’이란 공식의 환산보증금을 기준으로 임차인 보호에 차등을 두고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 3억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2억5000만원, 광역시 1억8000만원이었던 걸 올해부터 각각 4억원, 3억원, 2억400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정부는 이로써 서울지역 상인 90%가 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에선 적용대상이 35%도 안 될 거라 말한다. 90%라는 정부 통계가 외진 골목 상권까지 다 포함한 수치기 때문이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권리금도 없고 오히려 임차인이 나갈까봐 건물주가 전전긍긍하는 점포들까지 계산에 넣다 보니 정작 분쟁이 많은 지역의 상인들은 배제됐다는 얘기다. 
 
월세 인상률이 더 큰 문제

올해 서울지역에서 보증금 1억원, 월세 260만원에 점포를 얻는다고 가정하자. 환산보증금은 ‘1억원+(260만원×100)=3억6000만원’이다. 환산보증금 기준 4억원 이하의 점포를 구했으니 월세 인상률 상한선 9%가 적용된다. 건물주가 계약 기간을 1년으로 했다. 매년 재계약 때마다 9%씩 월세를 올릴 경우 2년만 지나면 월세는 308만9000원, 환산보증금은 4억890만원이 된다. 3년째 재계약부터는 ‘임대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환산보증금 같은 구분선이 없다. 가령 전세보증금 5000만원의 다세대주택 세입자든 10억원 이상의 강남 아파트 세입자든 모두 똑같은 보호를 받는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보호 범위를 제한하는 건 상인의 영업권을 주거권만큼 중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장경철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2002c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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