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M&A에 숨은 ‘겉과 속’

재벌그룹이 인수ㆍ합병(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오너 3세가 주요 주주로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M&A가 한창이다. 표면적 이유는 사업조정. 하지만 속내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는 동시에 3세의 그룹 내 지배력 강화 차원으로 보인다.

▲ 삼성과 현대차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사업 조정에 한창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 복귀하며 신수종 사업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2월 의료기기업체 ‘메디슨(Medison)’을 인수했다. 신수종 사업 중 하나인 의료기기 사업 강화 차원에서다.

#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는 “사람들이 매일 여러번 사용할 정도로 유용한 기술과 서비스를 창조하겠다”고 말했다. 단순 인터넷 검색을 뛰어 넘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인터넷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다. 구글은 2014년 1월 실내온도 조절장치 업체 ‘네스트랩(Nest Lab)’을 3조4000억원(32억 달러)에 인수하며 스마트 홈사업에 진출했다.

삼성ㆍ현대차 2세→3세 전환 시기

기업 인수ㆍ합병(M&A)은 기존 사업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사업 진출을 위해 활용되는 경영기법이다. 뛰어난 기업을 M&A해 성장하는 전략은 이제 보편화됐다. 국내기업의 M&A가 늘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기업결합 건수(매출 2000억원 이상)는 2009년(360건)부터 늘기 시작해 2012년 543건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540건을 가뿐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M&A는 사업 강화의 목적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 최근 국내시장에서 보이는 M&A의 흐름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M&A와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M&A다.

▲ [더스쿠프 그래픽]
재계는 현재 창업주(1세대)에서 그룹을 물려받은 2세가 자녀(3세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시기에 있다. 국내 1ㆍ2위 그룹인 삼성과 현대차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ㆍ이부진 호텔신라 사장ㆍ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으로 그룹 경영권이 넘어가고 있는 단계에 있다. 현대차 역시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더스푸크 그래픽]
이 때문에 두 그룹에서 일어나는 M&A와 기업 분할 등 사업 조정은 3세에게 그룹을 물려주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풀이된다. M&A업계 한 전문가는 “과거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투박하면서 갈등(법적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반면 지금은 M&A가 활용되며 매끄럽게 사업을 정리해 넘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9월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했다. 삼성에버랜드는 11월 급식사업을 물적 분할했고, 건물관리 사업을 에스원에 매각했다. 전문가들은 이건희 회장이 정리가 되지 않은 사업을 그룹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에 몰아넣었다가 다시 분할하는 방법으로 ‘3세 구도’를 정할 것으로 분석한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다.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25.1%)는 이재용 부회장이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지분 8.37 %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핵심 사업인 전자와 금융 사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부진 사장은 레저ㆍ건설, 이서현 사장은 패션ㆍ광고 사업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 [더스쿠프 그래픽]
현대차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 사업 조정이 한창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띠고 있다. 이중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기아차 1.75%에 불과하다.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선 현대차ㆍ기아차ㆍ현대모비스 3개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은 1월 16일 합병을 발표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엠코의 최대주주(25.06%)다.

정 부회장은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추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현대엠코는 합병 전 그룹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성장한 회사다. 전문가들은 일감몰아주기 이후 합병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현대엠코ㆍ현대엔지니어링 합병법인은 상장하거나 현대건설과 추가 합병(우회 상장)을 통해 기업 가치를 다시 한번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M&A 통해 일감몰아주기 규제 벗어나

이런 M&A를 통해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엠코의 지분을 각각 10%, 25.06%를 보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이들 부자의 지분은 약 16%로 줄어든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공정위는 2014년 2월부터 자산 5조원 이상 그룹의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상장사 30%)이고, 내부거래액이 매출의 12% 이상인 기업의 경우 규제에 나선다.

▲ [더스쿠프 그래픽]
사실 재계는 M&A를 통해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2013년 초부터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M&A를 통해 매출 규모를 늘려 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중을 줄인다는 것이다. 물론 M&A 대상은 내부거래 비중이 낮은 계열사다.

SK그룹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SK C&C는 2013년 5월 중고차 매매업체 SK엔카 네트워크를 합병했다. SK C&C는 정보기술(IT)외 사업부문 확대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기 위한 M&A로 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 C&C 지분 38%를 보유하고 있다. SK C&C는 이번 M&A로 내부거래 비중을 65%에서 40% 후반대로 줄였다.

앞서 삼성에버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 일가가 46.0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거래가 거의 없는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인수하고, 내부거래가 많은 급식사업을 매각하면서 내부거래 비율을 대폭 낮췄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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