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학자의 눈에 비친 철도민영화

▲ 철도노조와 진보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2월 4일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앞에서 철도파업에 참가했던 철도노조원들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나는 미국생활 3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경제학자다. 오랜만에 한국땅을 밟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하철’이었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신속ㆍ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철도를 정비하겠다고 나선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가장 잘 돌아가는 것이 철도 같은데, 왜 민영화를 들먹여서 긁어부스럼을 만들까.”

미국생활 30년 만에 ‘외국인 교수’로 귀국한 지 1년 남짓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게 바뀌었는데, 그중 관공서나 고객상담직원의 태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 미국의 관공서ㆍ고객상담직원은 친절하긴 하지만 지극히 사무적이어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서류에 하찮은 하자라도 있으면 규정에 맞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

반면 한국의 직원들은 규정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고객의 사정을 먼저 이해하고 편의를 봐주려 애썼다. 이런 일처리 방식에는 리스크가 없지 않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호의를 베푸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고객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지난 몇주간 이어진 철도노조파업과 그 수습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처음 ‘철도민영화 반대’라는 대자보를 봤을 때 필자는 ‘정부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인상 깊은 철도에 왜 손댔을까

미국에서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없는 중소도시에만 살았던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편리하게 이용한 게 지하철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미국에 돌아가면 지하철이 가장 그리울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서울의 지하철만큼 깨끗하고 안전하며 신속ㆍ정확한 건 찾기 힘들다.

▲ [더스쿠프 그래픽]
가난한 유학생 시절 필자는 미국에 막 도착한 한국 유학생들이 자동차를 구입하는 걸 도와준 적이 있다. 연식이 7년~10년 정도 되는 중고차를 보러 다니면서 배운 표현이 ‘It ain’t broke, no fixit!’이다. 어법에 맞는 표준어로 고쳐쓰면 ‘If it isn’t broken, don’t fix it!’인데, 오래된 중고차를 별 이유 없이 손보면 더 못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가장 잘 돌아가는 것이 철도 같은데, 왜 민영화를 들먹여서 긁어부스럼을 만들까.”

필자의 눈에 정부와 철도노조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다. 철도민영화 가능성에 대해 정부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노조 측은 ‘민영화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며 맞섰다. 아무래도 정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코레일의 부채규모, 부실경영, 철도직원들의 높은 연봉을 연일 언론에 흘리면서 민심이 노조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정부는 아마도 철도노조파업을 계기로 코레일의 경영구조를 바꾸겠닫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경제학자로서 소견을 말하자면 민영화엔 장단점이 있다. 원칙적으로 비영리 집단인 정부가 운영하는 것보다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운영하면 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철도 같은 공공서비스 산업은 이윤추구보다 중요한 선행가치를 갖고 있다. 시민의 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연한 세상 위해 한발씩 물러서야

지난 30년~40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규제를 완화하고 자유경쟁체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긍정적이지 않았다. 일례로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정부가 금융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자유시장경쟁을 과도하게 유도한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득 양극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대기업들은 유례 없는 이윤을 지속적으로 남기고 있는 반면 노동자ㆍ서민ㆍ중산층의 가계는 날로 피폐해진 것이다.

▲ 철도파업은 끝났지만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의 철도노조 파업을 보고 지난 4년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철도사고를 찾아봤다.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를 여러번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2012년 11월 부산지하철에서 40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밖엔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기록을 볼 때, 철도직장이 이른바 ‘철밥통’이라면 정부가 그 철밥통을 깨부술 이유가 없다. 되레 그 철밥통을 다른 직종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옳다. 

그럼에도 정부는 철도파업에 참여한 직원을 중징계해서 차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불법파업’의 대책으로 삼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인지는 필자가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의 강경책이 ‘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그 또한 긍정적인 면이 있으리라. 다만 그 의지를 재벌그룹과 정부 고위 관료에게 먼저 펼치는 게 어떨까 싶다. 파업사태에서 승리한 정부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물러난 패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게 아니냐’는 인상만은 주지 않았으면 한다.

‘원칙고수’ ‘시장경쟁 자본주의’와 같은 서구적 가치에 ‘믿음’ ‘나눔’의 우리네 정서를 가미하면 진정한 선진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서로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를 갖는다면 보다 유연하고 능률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전부일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pjeo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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