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 조순 전 부총리는 경인방송 더 스쿠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세계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남유럽 재정위기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경제의 회복속도는 생각보다 더디다. 많은 사람이 ‘영웅적인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위기가 심각하다. 조순(84) 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를 만나 글로벌 경제와 한국의 미래를 물었다.

 

유럽발(發) 재정위기에 전 세계가 휘청이고 있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성’이었다면 이번 재정위기는 ‘만성질환’이 터진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는 ‘백신’에 의존해 버티던 세계경제는 면역력을 상실한 채 헤매고 있다.

문제는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만한 대안도, 인물도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영웅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십은 실종된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급성질환’을 해결하는 데 너무 많은 백신(긴급자금)을 투입한 탓에 세계 각국의 곳간까지 말라 버렸다.

먼 나라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사정도 신통치 않긴 마찬가지다. 체감경기는 쌀쌀하기 그지없다. 치솟은 물가는 서민경제를 압박하고, 집값은 떨어지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이제 두말하면 잔소리가 됐다. 서민경제 곳곳에서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엔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유럽·중국시장이 얼어붙자 수출에 의존하던 국내기업들은 비상경영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자금난 때문에 문을 닫는 중소기업도 많다. 좌표를 잃은 대한민국호(號)에 필요한 건 뭘까.

올 6월 26일 국가 원로 조순 전 부총리를 서울 서초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나 해법을 물었다. 그는 “비상(非常·긴급사태)시기에는 비상한(非常·뛰어난)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는 특유의 낮은 톤으로 냉정한 현실을 더 냉정하게 짚었다. 미국경제의 미래부터 물었다.

- 미국경제의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더딘 것 같다.
“예상했던 일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는 금융위기이자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국경제에는 수많은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제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특히 공정하지 못한 경제였다.”

-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 빠르게 양적완화를 실시해 최악의 상황은 피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발등의 불을 껐을 뿐이다.”

- 미봉책이었다는 말인가.
“돈을 푼 효과는 금융부문에만 있었다. 미국경제 전체를 회복 국면에 올려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경제당국은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며 샴페인을 미리 터뜨렸다. 미국경제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 회복이 지연되면 ‘더블딥’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경제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선각자의 새로운 시도 필요”

- 미국도 문제지만 남유럽 재정위기는 더 심각해 보인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재정을 방만하게 썼다. 정부든 민간이든 모두 그랬다. 그런데 유럽연합(EU) 역시 돈만 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남유럽 재정위기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다. ‘돈만 풀면 된다’는 식의 단기처방으론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조순 전 부총리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현재 상황은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을 겪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조금 순화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1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글로벌 경제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해 남유럽 재정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출구전략’이 화두였다. 세계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뿌린 돈(확장적 재정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금씩 햇살이 들던 시장엔 다시 냉기가 흘렀다. 조 전 부총리는 이를 “더블딥 현상”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난국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다.

 

- 전례 없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세계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어왔다. 그때마다 혜안을 가진 ‘선각자’가 나타나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이를 발판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가령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을 겪을 때, 경제학계에선 메이나드 케인즈, 정책분야에선 ‘뉴딜 프로젝트’가 나왔다. 문제는 현재 경제 상황이 그때보다 훨씬 좋지 않은 데,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경제당국의 능력(能力)·지력(智力)·덕성(德性)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세계 각국 정부의 리더십,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 한편에선 G20 정상회의가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G20 회원국은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다. 겉으론 ‘잘 해보자’며 손을 맞잡을지 모르겠지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 하지만 글로벌 리더십이 흔들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몇 가지 호재가 있었지 않나. 그리스가 연정구성에 성공한 건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 세계경제가 파국을 면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그리스의 연정구성이 아니다. ‘그리스에 구제금융이 지원되느냐’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 국민이 제대로 일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저축을 해야 한다. 문제는 그리스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렉시트 파장 크지 않을 것”

-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리스 유로존 잔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세계경제가 더 위축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경제 규모는 고작해야 유럽 전체의 2~3%다. 물론 ‘그렉시트(Greece+Exit)’가 단기적으로 혼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큰 파장이 없을 것이다.”

- 남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사로 독일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독일도 자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속이 타들어갈 것 같다.
“최근 메르켈의 말을 분석하면 이렇다. ‘독일의 능력도, 자원도 한계가 있다. 우리가 도우면 얼마나 돕겠나.’ 옳은 말이지 않은가. 독일은 크고 강한 국가다. 그러나 한계도 많다. 지금 중요한 건 독일의 선택이 아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 스스로 회생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 중국의 역할도 관전 포인트다. 국제금융시장은 중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화끈한 경기부양책을 내놓길 바라고 있다.
“중국은 세계경제를 살릴 용의도, 그만한 능력도 없다.”

 

- 무슨 뜻인가.
“중국은 자신들이 충분히 성과를 올릴 자신감이 있을 때 베푸는 성향이 있다. 쉽게 다른 국가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여태껏 그래왔다.”

- 중국경제가 예년만 못하다는 건가. 중국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하는가.
“그렇지 않다. 중국경기가 하강 국면에 있는 건 맞지만 경착륙하지는 않을 거다.”

- 어떤 이유로 그렇게 보는가.
“중국의 제12차 5개년 계획에는 ‘중국은 이제 내수 위주로 간다’고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유럽 경제위기로 수출이 이전보다 부진해도 적응을 잘 할 것이고, 큰 타격을 받지도 않을 전망이다.”

-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부동산 버블은) 많이 꺼진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도 수그러들고 있다. 중국의 버블은 지금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

- 중국경제가 연착륙한다면 한국으로선 희소식이다.
“당연한 말이다. 중국경제를 떼어 놓고 한국경제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 한국경제는 중국만큼이나 미국·유럽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다. 미국·유럽의 경기둔화에 대비해 이제는 새로운 플랜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그 대안으로 동북아 역내수요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중국이 핵심이겠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동북·동남아시아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면 ‘자가발전’할 수 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중·일 FTA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부 당국자나 한국 사람들은 FTA만 하면 한국에 득(得)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미신에 불과하다. 수출을 늘리면 수입도 늘려야 한다. 그러면 대외의존도가 더 커지고, 국내 고용사정은 어려워진다. 정부가 이번에는 콜롬비아와 FTA를 체결했는데, 거리가 멀리 떨어진 국가와 FTA를 해봤자 별 효과가 없을 거다. 가까운 나라와 체결해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중·일 FTA는 바람직하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3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세계경제의 20%에 달한다. 실제로 한·중·일 FTA의 효과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인구 16억명, GDP 12조 달러의 경제통합체가 아시아에서 탄생한다. EU(GDP 약 16조 달러)·북미자유무역지대(NAFTA·GDP 약 14조 달러)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효과도 크다. 한중일 FTA로 20%에 불과한 한·중·일 3국의 역내교역 비중이 NAFTA(39%)를 넘어설 전망이다. 더불어 서비스시장 개방에 따른 서비스산업 발전, 환경·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의 협력 확대도 예상된다. 그러면 한·중·일 3국은 미국·유럽경기에 지금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유럽의 무역의존도가 역내교역을 통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때문인지 조 전 부총리는 “한·중·일 FTA를 체결할 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국내 농수산업 분야를 보호할 수 있는 특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일본도 그렇게 할 게 분명하다.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 한·중·일 FTA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봐서도 안 된다. 한·중·일 3국 사이엔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많다. 가령 독도, 조어도(센카쿠열도), 4개 도서(쿠릴열도·북방 4개 섬)의 영토 문제가 그렇다. 이런 문제가 한·중·일 FTA를 계기로 풀릴 수 있다. 그러면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중·일 FTA는 정치적 의미도 크다.”
 

▲ 조 전 부총리는 한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본지가 인터뷰 전 보낸 사전질의서도 꼼꼼하게 읽고 준비를 했다. 사진은 조 전 부총리가 사전질의서에 기록한 메모.

- 이제 나라 안쪽으로 질문 방향을 바꾸겠다. 서민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물가도 많이 올랐다. 곳곳에서 ‘살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서민경제의 기본은 고용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서민이 살지 않겠는가. 물가도 중요하다. 물가가 오르면 고용을 제 아무리 많이 해도 소용없다.”

FTA는 가까운 나라와 체결해야

 

조 전 부총리는 물가관리를 정부의 첫째 과제라고 생각한다. 2008년 한 세미나에서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인플레이션은 세금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세금이다.” 물가관리의 중요성을 세금에 비유한 것이다.

한국의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기관은 한국은행이다. 한은의 수장은 조 전 부총리의 애제자 김중수 총재다. 김 총재에 대한 조 전 부총리의 평가다. “해박하고 경험이 많다. 대학총장(한림대), 경제수석비서관, OECD 대사까지 지내지 않았나. 머리가 좋은데다 노력도 많이 한다.” 스승의 눈에 비친 제자의 물가관리 성적표는 어떨까.

- 현 정부는 이른바 ‘MB목록’까지 만들면서 물가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배추·무 등 농산물과 과일값이 오른 것은 정부 책임이 아니다. 최근 강원도 강릉에 다녀왔는데, 배추 한포기 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후 변화 탓이 큰 것 같다.”

- 하지만 한은이 물가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2010년 국내경기가 회복세에 있을 때 금리를 인상하지 않은 건 실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물가관리는 잘 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정책은 합격점이다.”

- 아쉬운 점은 없는가.
“김 총재가 ‘우리가 물가관리를 이렇게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조금 아쉽다.”

조 전 부총리에겐 또 다른 애제자가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다.(※ 독자편의상 조 전 부총리를 스승, 정 전 총리를 제자라고 칭한다.) 얼마 전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고문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스승은 흔쾌히 수락했다. 고문이 뭘 해야 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이 연구소는 제자가 올 6월 18일 창립한 ‘동반성장연구소’다.

- 정 전 총리를 주축으로 설립된 동반성장연구소의 고문을 맡았던데.
“최근 창립식을 했다.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은 몰랐다. 성대한 장(場)이었다. 중요한 것은 ‘오라고 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왔다. 우리 국민의 현재 정서를 보여주는 듯했다.”

- 조 전 부총리는 일전에 “동반성장은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말한 적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대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또 얼마만큼 중소기업에 나눠주느냐는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했다. 동반성장연구소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를 내세운 건 아닌가. 기업 이익의 분배만이 아니라 균형성장이라는 넓은 관점이 필요해 보인다.
“동반성장은 여러 문제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무엇보다 동반성장연구소의 기본 방향이 중요해 보인다. 동반성장의 방향을 잘 세우고, 그 방향대로 꿋꿋이 가야 한다. 동반성장은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구호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1988~1990년)로 재직할 때도 중소기업을 위한 메뉴가 많았다. 그러나 상당히 부실했다. 많은 중소기업 CEO는 자신들을 도와주는 방안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조 전 부총리는 농림업의 예를 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과일 맛은 최고다. 세계 어디에서도 그렇게 맛있는 과일을 먹기 어렵다. 과일산업을 잘 육성하면 수출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기농·특수작물은 개발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더라.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 농산물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 무엇 하느냐’고 말이다. 그는 아쉬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남한 인구가 5000만명에 불과한 데 어떻게 내수산업을 육성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5000만명은 적은 인구가 절대 아니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국가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내수산업은 육성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내수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고용 문제가 해결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가져야 한다.

- 국가경제는 물론 민생까지 침체에 빠져 있는데, 정치권에선 ‘색깔 논쟁’만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원로로서 쓴소리를 한다면.
“색깔론은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논쟁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라다.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데….”

- 문제는 색깔 논쟁에 한번 불이 붙으면 정작 필요한 논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색깔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와 배경이 그렇지 않은가.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인 스스로 ‘색깔 논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말부터….”

- MB정부의 5년이 이젠 끝나간다. 여러 평가가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런대로 잘 돌파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국가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옳은 말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니까, 이렇게 만들겠다’고 공언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모호한 말로 모든 걸 얼버무렸다. 처음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콘셉트로 내세우더니, 나중엔 친(親)서민이라고 하더라. 그럼 서민은 국민이고, 부유층은 국민이 아닌가.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구체적인 방향이 없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 이런 맥락에서 차기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한국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고, 이렇게 만들겠다’는 신념과 사명감이 확고해야 한다. 단순하게 선거에서 이길 생각만 하면 안 된다.”

 

▲ 조순 전 부총리는 경인방송 더 스쿠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는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가족은 국가의 벽돌”이라고 했다. 벽돌이 쌓여 건물이 되듯, 가족이 모여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사진은 조 전 부총리와 대담하고 있는 성태원 더 스쿠프 편집국장.

-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앞으로 5년이 중요할 듯하다. 새 지도자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비상한 사람이 나와야 비상한 일을 할 수 있다. 비상한 일을 해야 비상한 공을 세운다. 출마를 선언한 예비 대권후보 가운데 능력·지력·덕성 삼박자를 갖춘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 차기 대권후보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평이나 느낌을 말해 달라.
“문재인 의원은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박 위원장은 천하가 다 알고 있지 않나. 안 원장은 그전부터 조금 알았다.”

- 최근 안 원장이 한번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 차를 함께 마셨다. 아주 신중한 사람이다. 호감을 가졌다.”

- 어떤 면에서 신중하다고 느꼈나.
“대선에 입후보를 ‘한다, 안 한다’는 얘기를 일체 꺼내지 않더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너무 신중하다보니 얘기를 하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신중해 보였다.”

리더의 능력은 위기의 순간 판가름 나는 법이다. 훌륭한 리더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못난 리더는 상황을 모면하는 데만 힘을 쓴다. 조 전 부총리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중국 전한(前漢) 때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말을 빗대 설명했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 국가 원로도 지금 비상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세계가, 나라가, 서민경제가 위태롭다. MB정부의 ‘5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다음 리더는 과연 비상한 자일까.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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