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칼 또 무뎌지나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솜방망이 처벌’의 재연이라는 비난이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2월 11일 같은 재판부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과거 관행처럼 선고되던 ‘3-5법칙’이 다시 등장했다. 재벌총수의 기업범죄를 엄벌하기 시작한 건 불과 2~3년 전. 그 이전에는 총수들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을 감형 이유로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해 왔다. 이때 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아 ‘3-5법칙’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9년 8월 ‘삼성 특검’을 통해 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2개월 뒤 사면 조치됐다. 정몽구 현대차ㆍ기아차그룹 회장도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돈을 빼돌려 계열사에 손실을 입힌 혐의로 2007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돼 풀려났다. 2011년 수백억원대 회사돈을 횡령ㆍ배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도 지난해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2년 말부터 ‘집행유예 판결로 총수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자 법원은 총수들에게도 엄격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 직격탄을 맞은 이가 바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그는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됐다. 이후 최태원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구자원 회장 등 여러 총수들이 잇따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2월 11일 서울고법 형사5부는 김승연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구 회장에게도 같은 형량을 선고하면서 또 다시 ‘3-5법칙’이 적용됐다. 하지만 ‘김 회장과 구 회장 사건의 경우, 실제 피해가 없거나 피해액을 모두 공탁해 회복된 점, 피해자들과 합의된 점 등을 고려하면 과거의 기업범죄와는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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