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내면서도 가격동결한 오뚜기의 힘

지난 3년에 걸쳐 3번의 리뉴얼을 했다. ‘맛이 신통치 않다’는 평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원 6인방’은 동고동락을 서슴지 않았다.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했음에도 가격은 되레 낮췄다. 소비자는 이 ‘착한 라면’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오뚜기 진라면의 얘기다.

▲ 오뚜기가 라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지난해 식품업계를 놀라게 만든 일이 있었다. 오뚜기가 라면시장에서 2위에 올라선 것이다. AC닐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오뚜기는 지난해 라면시장에서 13.5%의 점유율을 기록해 11.7%에 그친 삼양식품을 따돌리고 2위로 뛰어 올랐다. 오뚜기가 연간 점유율에서 삼양라면을 제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흥미로운 건 라면은 오뚜기의 주력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뚜기의 전공은 케첩·마요네즈와 같은 소스류와 카레 제품이다. 삼양식품의 주력은 매출 비중의 82.3%를 차지하는 ‘면제품’이다. 오뚜기가 라면시장 2위에 등극하자 식품업계가 깜짝 놀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전공’으로 ‘전공’을 따돌린 셈이라서다. 더구나 오뚜기는 삼양식품(1961년), 농심(전 롯데공업주식회사 1965년)보다 훨씬 뒤인 1987년 청보라면을 인수해 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다.

▲ [더스쿠프 그래픽]
오뚜기의 돌풍은 ‘기본에 충실하면 시장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맛과 가격만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오뚜기 진라면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진라면 봉지면은 약 2억개 팔렸다. 진라면 용기면은 전년비 35% 늘어난 5000여만개가 판매됐다. 철만 되면 신제품이 쏟아지는 라면시장에서 1988년 론칭한 ‘구닥다리’ 진라면의 매출이 늘어난 이유는 ‘맛’과 ‘품질’에 있다.

오뚜기는 진라면의 올드한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지난 3년간 세차례에 걸쳐 리뉴얼을 진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건강에 좋지 않은 ‘나트륨 함량’을 대폭 줄인 거다. 2010년 1970㎎(용기면·110g 기준)에서 2012년 1540㎎으로 줄여 품질을 개선했다. 여기에 값비싼 ‘하늘초 고추’를 활용해 매운맛(진라면 매운맛)을 더했다. 기존에 없던 쇠고기 맛 프레이크를 추가하고 당근·대파·버섯·청경채·고추 등 건더기 양을 늘린 것도 눈에 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런 변화는 오뚜기 연구원 ‘6인방’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게다. 이들 연구원 6명은 ‘진라면의 환골탈태’를 위해 무려 3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특히 ‘진라면은 맵지 않다’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6명 전원이 고추를 입에 달고 다닌 일은 유명한 일화다. 진라면에 딱 맞는 고추를 찾아내기 위한 생체실험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선택한 게 ‘하늘초 고추’다. 다행히도 지금의 진라면(매운맛)은 예전보다 더 맵고 깔끔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3년 연구 끝에 매운맛 찾아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참깨라면 봉지면의 추가 론칭이다. 1994년 론칭한 참깨라면은 용기면(컵라면)만 있었다. 하지만 ‘봉지면을 출시해 달라’는 고객의 소원수리(?)를 받아들여 2012년 7월 새 참깨라면 봉지면을 세상에 내놨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난해에만 3200만개나 팔렸다. 같은 기간 참깨라면 용기면 역시 전년 동기비 66% 늘어난 2700여만개가 팔려나갔다. 오뚜기 관계자는 “맛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한 진라면과 2012년 새롭게 출시한 참깨라면 봉지면이 인기의 원동력”이라며 “고객의 니즈에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다”고 말했다.

▲ 지난해 라면시장 규모는 사상 첫 2조원을 돌파했다. 업체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사진=뉴시스]
원동력은 또 있다. 오뚜기는 각종 라면의 맛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면서도 가격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진라면 봉지면(720원)은 2008년 4월 이후 단 한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 2월 750원이던 라면값을 720원으로 인하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원재료와 부재료 가격이 잇따라 상승하며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라면의 주 소비층이 서민인 만큼 경기침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뜻에서 가격을 동결했다”고 말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 장기화 때문에 중저가 식품에 소비가 많이 쏠렸다”며 “오뚜기가 새롭게 리뉴얼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 게 소비자 니즈에 부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원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간 건 진라면과 참깨라면 덕분”이라며 “오뚜기가 더 잘한 건 기회가 왔을 때 라면사업에 제대로 집중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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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2위 탈환 가능할까
‘불닭볶음면’으로 오뚜기 잡겠다

삼양식품이 10여년 가까이 지켜온 2위 자리를 오뚜기에 내준 이유는 뭘까. 하얀국물 라면의 반짝 인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2011년 팔도의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은 하얀국물 라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삼양식품은 나가사끼 짬뽕의 인기에 힘입어 2012년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도 했다.  문제는 하얀국물 라면의 인기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거다. 2012년 7위까지 올랐던 나가사끼 짬뽕 순위는 지난해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사진=뉴시스]
삼양식품이 당분간 오뚜기에 빼앗긴 2위 자리를 재탈환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라면시장의 2·3위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들 업체의 히트상품 출시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오뚜기가 자금력을 동원해 가격 프로모션을 밀어붙여 2위 굳히기에 나서면 삼양식품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삼양식품이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거라는 반론도 있다. 우원석 키움증권 연구원은 “하얀 국물 라면의 부진으로 지난해 상반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며 “하지만 하반기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삼양식품의 지난해 3·4분기 시장점유율이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삼양식품이 2012년 4월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10월 한달간 매출이 65억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라면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가사끼 짬뽕의 월 최고 매출 100억원에 도전할 만한 빠른 증가세다.

우 연구원은 “현재로선 오뚜기와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아 삼양식품으로선 해볼 만한 게임”이라며 “오뚜기가 2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발판으로 2위 자리를 탈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불닦볶음면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월 평균 매출 60억원을 올리고 있다”며 “라면시장에서 신제품이 월평균 30억~40억원의 매출만 나와도 대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닭볶음면과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한우특+뿔면’ 등 신제품 효과로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15% 신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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