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핸드백 마에스트로’ 박은관 시몬느 회장

▲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시몬느의 성공에 대해“가격 경쟁력을 잃은 국내 봉제업에 우리의 기획ㆍ개발력 및 디자인 능력을 융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낸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6개 글로벌 브랜드에 제품 공급
최근 5년 연 25% 이상 매출 신장
해외 7개 공장에 2만8000명 근무

㈜시몬느는 명품 핸드백을 만든다. 생산한 핸드백은 전량 수출한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가 해마다 발표하는 ‘글로벌 럭셔리 마켓’ 집계에 따르면 이 회사의 세계 명품 핸드백 시장점유율은 9%에 이른다. 미국시장 점유율은 30%에 육박한다. 국내 명품 핸드백 시장의 5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사실상 세계 최대의 명품 핸드백 회사이다.

다만 이 회사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16개 글로벌 명품 핸드백 브랜드에 자사 제품을 공급한다.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코치 같은 브랜드다.[※유럽 명품 브랜드의 경우 해당 업체와의 계약에 따라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DKNY엔 28년째 핸드백을 납품한다.

시몬느가 하는 ODM이란 제조는 물론 핸드백 소재의 개발, 품질 관리에 고객사의 핸드백 디자인 개발에도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ODM의 비율은 약 60%, 나머지가 주문 받은 사양대로 생산만 하는 OEM 물량이다.시몬느 측은 올해 매출액을 8억1000만 달러(약 8100억원)로 전망했다. 전망치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실적(6억4000만 달러) 대비 26% 성장세다. 이 회사는 최근 5년간 연간 25~30%씩 성장했다.

이민수 시몬느 전략기획실 부장은 “이변이 없는 한 2016년엔 매출액 10억 달러(1조원)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핸드백만 수출해 ‘1조원 클럽’에 가입하겠다는 것이다. 시몬느가 만드는 핸드백은 납품가의 평균 8배에 해당 브랜드 소비자에게 팔린다. 시몬느의 성공은 동국대ㆍ건국대ㆍ숙명여대 등의 MBA 과정에서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시몬느는 어떻게 세계 최대의 명품 핸드백 업체가 될 수 있었을까. 이 회사 박은관(59) 회장은 “가격 경쟁력을 잃은 국내 봉제업에 우리의 기획ㆍ개발력 및 디자인 능력을 융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낸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 [더스쿠프 그래픽]
그는 핸드백 OEM 업체 ㈜청산의 수출부장으로 있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미국의 명품 핸드백 시장을 뚫으려 현지 백화점에서 구한 DKNY 제품을 재현한 핸드백 6개를 만들어 미국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소재로 국내 최고의 장인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그는 DKNY를 찾아가 이탈리아제보다 30% 싸게 납품하겠다고 제의했다. “진짜 한국에서 만들었느냐”며 놀라워하던 바이어는 다음날 다시 찾아가자 난색을 표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 곤란하다”는 것. 마케팅ㆍ영업 부서에서 제동을 건 탓이었다. 이틀 후 다시 바이어를 찾은 그는 “3대째 핸드백을 만든다는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 시작할 땐 나처럼 맨땅에 헤딩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당신네 같은 고급 디자이너 라인의 첫 아시아 파트너가 되면 왜 안 되느냐고 따졌죠. 5~10년 후면 유럽에서 소요 물량을 충당하기 어려워 질 거고 아시아도 10~20년 후면 생산기지가 아니라 명품 핸드백 시장이 될 테니 나와 손잡고 이 기회에 아시아에 교두보를 확보하라고 설득했어요. 작게 시작하면 실패해도 피차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우겨 결국 120개 주문을 받아왔습니다.”

그로부터 27년, 그의 예언대로 중국은 글로벌 명품의 주요 소비시장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 명품의 29%를 중국인이 구매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가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분야의 산업)로 통하는 제조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막차를 타느냐고 말했다. 그는 조회시간에 창업 멤버 15명에게 “남들은 막차라고 하지만 우리가 곡괭이질 해 땅을 파고 길을 닦으면 그건 우리 길”이라고 ‘선언’했다.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보다 배짱(gut)이 더 중요합니다. 창업이든 투자든 주어진 여건에서 실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적기에 제대로 해야 합니다. 반면에 요즘 세상에 남들은 모르는 비밀 정보란 없어요. 제가 인문학(독문학)을 전공한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감수성도 일종의 경쟁력입니다. 우리 업종은 생각이 자유롭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분야죠. 만일 금융이나 건설 분야에서 창업을 했다면 잘 안 풀렸을지도 몰라요.”

그는 연중 5개월을 해외에서 보낸다. 한때는 한 해의 절반은 출장을 다녔다. 2001년 9ㆍ11테러 후엔 연간 11번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동안 미국 호텔에 묵은 날수를 합산하니 4년6개월이나 되더라고 말했다. “미국엔 마케팅과 영업을 하러, 유럽은 소재 개발차 갑니다. 동남아는 우리 공장이 있어서 가고요.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의 속성상 현장을 보지 않고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 가야 거기 일에 집중하게 되고 보이는 것도 더 많죠. 출장을 떠나면 현장에 가는 도중에도 얻는 것들이 있어요. 자유롭게 생각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새 구상도 하게 되죠.”

1999년 명품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 진출할 때도 난관이 있었다. 회사 내부의 반대에 부닥친 해당 명품 브랜드 사장은 이탈리아제 핸드백과 시몬느 제품을 각각 5개씩 섞어 직원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한국산은 안 된다”고 주장했던 참가자들이 이탈리아 명품이라며 고른 5개에 시몬느 핸드백이 3개 포함됐다.

▲ 회사 이름 시몬느는 박 회장 부인의 애칭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명품에 도전한 이유가 뭔가요?
“중저가 제품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 더, 전 직장인 청산의 바이어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저 나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대학 선배이기도 한 그 회사 사장이 제가 독립할 때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그분이 ‘내 바이어는 건드리지 말라’ 하신 일도, 그분과 ‘청산의 기존 바이어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적도 없지만 그렇게 할 거라는 믿음이 둘 사이에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고급 핸드백을 겨냥하게 됐죠.”

✚ 시몬느의 경쟁력은 뭔가요?
“우리 회사에 대해 ‘가격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시장경쟁력은 뛰어나다’ ‘시몬느의 최대 강점은 예측가능성이다’고들 합니다. 우리와 거래하면 가격은 홍콩 등의 경쟁사보다 비싸지만 납기 준수 등으로 비용이 절감돼 고객사에 상대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거죠. 소재 개발, 디자인, 품질 관리 면에서 우리의 소프트웨어적 능력이 이들에게 유용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요. 소재 개발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영역을 커버하다 보니 시몬느는 핸드백 공장이 아니라 풀 서비스 회사로 불립니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파트너랄까요?”

✚ 핸드백 디자인 개발에도 일부 참여하면 고객사는 뭘 합니까?
“브랜드의 포지셔닝 및 정체성 관리, 스토리 및 판타지 만들기, 유통, 마케팅 및 광고 등이예요. 서로 잘하는 일을 고객사와 나누어 하는 거죠. 재주는 시몬느가 부리고 돈은 고객사가 버는 게 아니냐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 내로라하는 16개 글로벌 브랜드와 거래하는데 고객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도 있지 않나요?
“내부에 방화벽이 잘 쳐져 있어 독점적 위상 유지와 보안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들 브랜드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이익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다는 거죠. 이 일이 시스템적으로 가능하도록 회사 안에 다양한 바이어들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설 쇼룸을 만들지 않았고 고객사와의 상담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밀봉해 보관합니다.”

시몬느는 윈윈 ‘콜라보레이션 파트너’

시몬느는 국내에서는 핸드백의 샘플만 만든다. 더 이상 명품 핸드백을 증산할 길이 없어 해외로 공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순차적으로 진출했다. 지난해 11월엔 베트남에 두 개의 공장을 새로 준공했다. 이들 공장의 종업원 1만명에 기존 베트남 공장 두 곳의 인력을 합치면 현지 종업원 수가 2만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시몬느의 주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전체 7개 공장의 근무 인력은 2만8000여명에 이른다. 본사 및 해외 파견 인력은 310명.

“명품백 수요가 늘어나는데 서울 근교에서는 공장을 지을 땅도, 인력도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는 절대 안 된다는 고객사를 어렵사리 설득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습니다. 공정을 표준화한 덕에 해외에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죠.”

시몬느는 2012년 자체 브랜드 0914를 선보였다. 여태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년엔 플래그십 매장(해당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서울에 열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갈 예정이다. 매장 개장 예정일은 9월 14일이다.

0914는 1984년 9월 14일이라는 날짜에서 유래한 작명이다. 부인 오인실씨와 11년간 사귄 끝에 백년가약을 맺은 박 회장은 결혼 전 미국 유학을 떠난 그녀와 3년가량 만나지 않았다. 운명의 그날 9월 14일은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오후 근무를 제낀 그는 경복궁을 어슬렁거렸다. 전날 밤 꿈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는 옛 한국일보 빌딩 앞 지하에 있던 커피점 준을 찾았다. 그 당시 향 좋은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로 연애 시절 그녀와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 그녀가 들어섰다. 그가 앉은 쪽을 향하던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한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운명적인 만남이랄까요? 카르마적인 인연의 끈을 잡은 듯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 이듬해 5월 결혼했습니다.” 그는 이 날짜에 대한 애착에서 집에서 사용하는 비밀번호도 이들 숫자의 조합을 포함해 구성한다고 말했다. 당신, 이데아, 이상형이라는 뜻의 시몬느라는 회사 이름은 결혼 전부터 그가 불러온 그녀의 애칭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 0914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뭡니까?
“한국에 주민등록을 둔 한국적인 브랜드입니다. 10년 전이었다면 제조 실력도 부족했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가 낮아서도 론칭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이제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패션 브랜드를 내놓을 수 있는 나라로 봐요.”

✚ 일반적으로 명품의 조건이 뭐라고 보나요?
“고품질, 디자인의 독창성, 높은 브랜드 인지도 외에 역사적ㆍ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써 광고를 쏟아 붓는다고 단기간에 명품이 될 순 없어요.”

“한국적 정체성 지닌 핸드백으로 승부할 터”

✚ 30년 가까이 핸드백을 만들어 오셨는데, 여성들이 핸드백 특히 명품 핸드백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요?

“우선 남들에게 과시하기에 좋은 아이템입니다. 옷이나 신발은 보여주기가 좀 그렇죠. 어떤 사회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가 럭셔리 핸드백을 사는 건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살고 싶은 삶 간의 간격을 메우는 작업이다’. 둘째 과시성 아이템으로서 옷이나 장신구에 비해 효율적입니다. 같은 옷을 파티 때마다 입고 갈 수는 없죠. 좋은 핸드백은 연중 들어도 흉이 안 되고 오히려 그 백에 대한 애착으로 받아들여지죠. 셋째 여성은 백을 자신의 몸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소품으로 여긴다는 거죠.”

시몬느는 2012년 서울 가로수길에 세계 초유의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BAGSTAGE)를 열었다. 이곳에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무임대료 매장도 꾸몄다.

✚ 꿈이 뭔가요?
“여태 남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이제 자화상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엔 무대 뒤(back stageㆍ시몬느의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와 동음이의어다)에서 일했는데 이제 무대에 올라 한국적 정체성을 지닌 제대로 만든 핸드백으로 승부하고 싶어요. 최소 15년은 걸릴 거예요. 제 생애 중엔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겠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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