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쉰들러 적대시하는 이유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을 지키기 위해선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사진=뉴시스]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지배구조상 핵심계열사다. 하지만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지분 20.03%,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0.93%를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두 회사를 잃는 것은 현대그룹이 사실상 해체되는 걸 의미한다.

현대그룹 소유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순환출자와 피라미드출자구조다. 순환출자는 계열사간에 출자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피라미드출자는 작은 회사가 출자단계의 가장 위에 있고, 큰 회사가 아래에 있는 구조다. 총수는 하나의 회사(순환출자구조) 또는 최상위 회사(피라미드출자구조)만 지배하면 계열사 돈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1999년 말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ㆍ현대증권’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총수 일가는 그룹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하고,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여 2001년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변경됐다. 총수 일가가 현대엘리베이터만 지배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 회장은 2006년 이후 지배권 강화를 위해 물류계열사 현대로지스틱스를 이용했다.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일부를 현 회장과 현대글로벌(현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 64%)에 매각해 현 회장이 현대로지스틱스를 확고히 지배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로지스틱스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해 추가적인 순환출자(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가 형성됐다. 현 회장은 현대글로벌의 지배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 [더스쿠프 그래픽]
2011년부터 현대그룹의 순환출자구조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은 현대상선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 17.16%만을 보유하고 있었고, 현 회장의 지분 역시 미미했다. 현대상선 경영권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건 2006년께다.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최대주주 정몽준 의원)이 현대상선의 지분 27.7%를 인수한 것이다. 현 회장 일가는 자금동원 능력에 한계가 있었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현대상선 출자액이 자산총액의 50%를 초과하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적용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가 되면 지주회사 체제 내에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고, 순환출자구조도 허용되지 않는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매각하고,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현대그룹 전체 지배권을 위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을 직접 취득하지 못하고,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우호주주를 끌어들였다.

이런 지주회사 문제는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지배하는 피라미드출자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총수 일가는 자금동원 능력이 없기 때문에 피라미드출자구조를 활용했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출자구조를 ‘현정은 회장 일가→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 등 계열회사’의 구조로 변화시켰고, 각 출자단계에서 순환출자구조를 이용해 지분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을 잃는 것은 그룹이 해체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현 회장은 현대상선을 지키기 위해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더욱 안정적으로 지배해야 했다. 또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현대엘리베이터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주주인 쉰들러를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연구소 회계사 ybchae@cgc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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