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 현대그룹과 쉰들러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벌써 10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대그룹과 쉰들러그룹이 10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다. 쉰들러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다. 현대그룹 측은 쉰들러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우려한다. 반면 쉰들러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현정은 회장 측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누구 말이 맞을까.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는 현대상선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런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지분 23.73%ㆍ파생상품을 통한 우호지분 포함시 36.73%)다. 현대엘리베이터만 지배하면 현대상선을 넘어 그룹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배력이 약해서다.

현정은 회장 측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총 48.36%(최대주주). 현정은 회장 자신이 1.17%,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6.11%, 그룹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이 21.25%, 4.32%, 우리사주조합이 8.6%를 보유하고 있다. 약한 지분구조 탓에 현 회장 측은 또 다른 주주를 신경쓸 수밖에 없다. 2대 주주(30.93%) 쉰들러다. 글로벌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쉰들러는 벌써 10년째 현대그룹과 ‘으르렁’거리고 있다. 대체 이유가 뭘까.

두 그룹의 만남은 정몽헌 현대그룹 전 회장이 살아있던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그룹이 현대차ㆍ현대중공업ㆍKCC 등 범凡현대가로 계열분리되기 전 상황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룹의 주력사업이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김대중 정부는 외자유치를 유도했고, 현대그룹에선 현대엘리베이터가 그 대상이었다. 1999년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와 만나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설립을 논의했다. 하지만 2000년 정몽헌 회장의 영令으로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의 협력 관계가 정리됐다. 현대그룹은 계열분리됐고, 현대상선ㆍ현대엘리베이터ㆍ현대아산ㆍ현대증권 등을 거느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런 상황은 참여정부 들어 진행된 ‘대북송금특검’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대북송금특검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 세상을 떠나면서다. 부인 현정은 회장이 총수에 올라 수습에 나섰지만 현대그룹의 위기는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 현정은 회장의 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늘리며 그룹 경영권을 위협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빼앗기면 그룹 지배가 사실상 어려워, 현 회장으로선 ‘경영권 방어’를 위한 복안이 필요했다. 이때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인 세력이 1990년대 말 협력을 논의했던 쉰들러다. 현 회장은 2004년 2월 알프레드 쉰들러(Alfred N. Schindler) 쉰들러 회장과 합의해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간 인수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0%를 매입하고, 승강기 사업부문을 인수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터졌다. KCC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5% 지분 공시룰(5% 이상 보유자 지분 변동시 신고 의무)’을 위반해 관련 지분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인수 포기를 선언했고, 현대그룹과 쉰들러의 파트너십은 약해졌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방어한 현대그룹에 쉰들러는 ‘불필요한 존재’에 불과했다. 

LOI 계약해지 둘러싼 양쪽의 동상이몽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는 LOI를 체결한지 1년여 만인 2005년 10월 계약을 해지했다. [※ 참고: 물론 두 회사가 계약을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해지한 건 아니다. 국내 독점규제ㆍ공정거래법상 두 회사의 계약은 체결될 수 없었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내 승강기 시장점유율은 42%에 달했다. 쉰들러의 시장점유율(2004년 인수한 중앙엘리베이터ㆍ4~5%)을 합치면 46~47%에 달해 반독점에 해당했다.] 하지만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3월 쉰들러는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매입하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

여기서 현대그룹과 쉰들러의 시각이 엇갈린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LOI 계약을 해지한 건 KCC로부터 지분을 매입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쉰들러는 “현대그룹 측이 먼저 계약 파기를 제의했다”며 “우리는 현대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이 내용은 현정은 회장에게 보낸 서신에 담겨 있다”고 반박했다. 쉰들러가 밝힌 서신의 내용이다. “… KCC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이는 현정은 회장이 지닌 KCC 위협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계속해서 현정은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 현대엘리베이터는 ‘M&A’를 다툼의 이슈로 내세우고 있고, 쉰들러는 ‘국내 재벌의 절대적인 지배력과 소액주주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쉰들러 제공]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KCC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는 등 그룹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쉰들러가 핵심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했다. 그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는데,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쉰들러를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우려와 달리 현대그룹과 쉰들러는 이렇다할 갈등을 빚지 않았다. 관계가 악화된 것은 2010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부터다. 현정은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상선의 지분 7.75%를 보유한 현대건설 인수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중공업(현대상선 보유 지분 23.78%)과 현대차가 연합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KCC가 그랬던 것처럼.

양측 싸움의 쟁점은 ‘파생상품’ ‘유상증자’

이때 쉰들러가 현대그룹에 전략적 파트너로서 의견을 전했다. “자금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무리해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파트너로서 현대그룹 순환출자구조로 발생하는 구조적 약점을 개선하는데 6억 달러(63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고려해보겠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대그룹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당시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사업 매각을 전제조건을 제시했다”며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사업을 매각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현대그룹과 쉰들러의 파트너십은 그렇게 무너졌다.

이후 두 그룹의 갈등은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케이프포춘ㆍ넥스젠캐피탈ㆍNH농협증권ㆍ자베즈ㆍ대우조선해양ㆍ마켓벤티지 등 6개 금융사와 파생금융계약을 맺고 이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13%)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하고 있다. 그 대가로 현대엘리베이터는 6개 금융사에 투자금에 대한 이자와 현대상선 주가 변동에 따른 원금손실분을 보상해야 했다. 이 부분을 쉰들러가 꼬집고 나선 것이다.

쉰들러는 2011년 11월 현대엘리베이터가 체결한 파생금융계약을 승인하는 이사회 의사록과 파생상품 계약서 등 회계장부를 공개하라는 2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쉰들러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체결한 파생금융계약은 현대상선의 지분율을 높여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대엘리베이터의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 회장 등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쉰들러 측은 특히 파생상품계약으로 인한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쉰들러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상품 관련 평가손실액은 2008년 287억원, 2009년 840억원, 2011년 1812억원, 2012년 430억원으로 나타났다. 쉰들러가 2012년 11월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상품 신규ㆍ연장 금지를 골자로 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한 세번째 소송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 등 국내 재벌그룹의 특성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안 된다”며 말을 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그룹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브랜드 힘이 컸다는 것이다. 쉰들러가 이로 인한 이익은 챙겼으면서 똑같은 이유로 발생하는 손실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쉰들러는 2013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의 160만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신주발행유지 청구소송도 걸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두 번의 유상증자(2012년 10월 870억원 규모, 2013년 2월 970억원 규모)를 실시했다. 올 2월 말에는 217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예정이다.

쉰들러는 “유상증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독단적 결정으로 현대상선의 자금지원과 현대그룹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판단된다”며 “이로 인해 주당가치가 희석됐고 주주들의 의결권 역시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우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이 35%에서 30%로 낮아졌고 1억5500만 달러(1648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2월 말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우리의 지분은 21% 정도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쉰들러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고, 신주발행유지청구소송은 진행 중이다. 쉰들러는 올 1월 ‘파생금융상품으로 입은 손실은 현대엘리베이터에 배상해야 한다’며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이사진을 상대로 7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쉰들러, ‘적대적 M&A’ 가능할까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를 반대하는 이유는 ‘위기감 조성→주가 하락→유상증자 규모 축소→현대엘리베이터 자금난 유발→승강기사업부 매각’이라는 복심이 있지 않고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결국 인수ㆍ합병(M&A)을 위한 또 다른 전략인 셈이다”고 주장했다.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은 최근 국내 엘리베이터 사업 계획과 관련 “현대엘리베이터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돼 금융당국이나 채권단이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면 인수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과 투자금의 100%를 대손처리하고 5년가량을 기다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의 최종 목적은 승강기 사업에 대한 적대적 M&A로 보고 있다. 쉰들러는 “적대적 M&A는 없다”며 “출자는 주주로부터 나오지만 의결권은 현정은 회장 등 총수 일가(지배주주)에게만 주어지는 현대그룹의 구조적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대적 M&A’를 이슈로 내세운 현대그룹과 ‘국내 재벌의 절대적인 지배력과 보호받지 못하는 소액주주’를 강조한 쉰들러의 10년 전쟁. 과연 이 다툼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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