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시대’ 진짜 올까

글로벌 시장에서 태블릿PC가 인기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영향력을 체감하기 어렵다. 5~6인치 스마트폰인 패블릿의 인기가 높고, 태블릿PC를 PC 대용으로 활용하기엔 환경이 불편해서다. 그런데 북미시장에서는 태블릿PC가 중소형 TV시장을 잠식했고, 점차 노트북PC 대용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시장의 흐름을 벗어나지는 못할 듯하다.

▲ 한국 소비자들은 태블릿PC보다 5~6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인 패블릿을 많이 사용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2000년 가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콤덱스(Comdex) 쇼가 열렸다. 이날 무대를 빛낸 주인공은 PC시장의 강자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MS가 선보인 제품은 ‘윈도우 XP 태블릿PC’. 기업용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제품으로 기존 노트북이나 PC처럼 워드나 파워포인트 등 MS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앱)과 인터넷이 구동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태블릿PC가 펜과 종이를 대신한다는 점이었다. MS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태블릿PC의 개념을 보여준 셈이었다.

▲ 북미시장을 중심으로 태블릿PC는 중소형 TV시장을 잠식한 데 이어 PC와 노트북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진=뉴시스]
MS가 두번째 태블릿PC를 선보인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2006년. ‘윈텔(Win-Tel)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MS와 인텔이 손을 잡고 울트라 모바일 PC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2006년 MS의 오리가미(Origamiㆍ종이접기) 프로젝트에 의해 개발됐다. 태블릿PC의 화면은 10.2인치에서 7인치로 작아져 휴대성이 높아졌다. 두번째 태블릿PC 역시 앞선 제품과 같이 기업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안드로이드 진영 역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태블릿PC를 인접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0년 출시된 애플 아이패드와 2011년 나온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를 살펴보자. 두제품은 MS와 인텔이 취한 전략(기업용ㆍ업무용)과 달리 ‘개인용’ ‘엔터테인먼트용’에 초점을 뒀다. 덕분에 애플의 아이패드는 아이폰의 앱,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는 스마트폰용 앱을 연동할 수 있었다.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가 스마트폰의 속성인 ‘개인용’ ‘엔터테인먼트’를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기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때문에 콘텐트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고객의 욕구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폰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면서 태블릿PC의 만족감을 제공한 거였다. 이런 이유로 태블릿PC는 스마트폰의 보완적인 기기로 여겨졌다. 태블릿PC는 시력이 좋지 않은 노년층이나 IT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도 큰 화면의 스마트폰을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줬다.

어찌 됐든 시장은 태블릿PC가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사할 것으로 기대했다. 태블릿PC가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혁신제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태블릿PC는 스마트폰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태블릿PC의 성장 속도가 더디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블릿PC는 스마트폰처럼 폭발성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언급한 것처럼 초기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는 스마트폰의 보안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태블릿PC 탄생 주역은 MS와 인텔

그런 태블릿PC가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태블릿PC가 와해성 제품(Disruptive Product)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와해성 제품이란 현존하는 기술이나 제품을 완전히 뒤엎는 신기술ㆍ제품ㆍ서비스를 가리킨다. 과장이 아니다. 북미시장의 경우 태블릿PC가 초소형 TV시장을 잠식한 데 이어 PC와 노트북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엔 엔터테인먼트 중심인 TV시장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태블릿PC가 TV의 개인화와 능동적인 TV시청을 원하는 시청자를 사로잡은 셈이다.

지난해 국제전자제품(CES) 박람회에 참석한 글로벌 통신사 버라이즌 IPTV사업부문 담당자 마이트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TV는 이제 하나의 앱일 뿐이다. 버라이즌 IPTV 시청자 중 TV가 없는 가정이 20%를 넘어섰다. 이런 움직임으로 볼 때 적어도 20인치 미만의 미국 TV시장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으로 전환됐다.”

최근 발표한 소비자조사기관 닐슨의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닐슨은 “태블릿PC와 같은 기기를 TV처럼 사용하는 ‘제로TV 홈’을 시청률 조사에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블릿PC의 중소형 TV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제 태블릿PC가 와해시킬 수 있는 주요 시장은 MS와 인텔이 과거에 시도했던 PC와 노트북이다. 하지만 태블릿PC가 PC와 노트북 시장을 대체하려면 뛰어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있다. MS 오피스와 같은 업무용 SW를 갖추는 거다. 이렇게 가능하다면 태블릿PC는 기존 MS와 인텔 기반의 PC나 노트북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는 MS 오피스로 대표되는 MS 윈도우 기반 업무용 SW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기기와 OS를 독립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클라우드를 통해 MS 윈도 기반의 업무용 SW의 핵심인 MS 오피스를 사용하거나 유사한 다른 SW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PC와 노트북에서 MS 오피스를 사용하는 것만큼 편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 업무용 SW가 기존 MS 오피스와 사용성의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기능과 성능을 제공하면서 사용자들이 MS 오피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은 태블릿PC가 PC시장을 와해시키지 못했지만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의 업무용 SW가 MS 오피스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어서다. 최근 출시된 태블릿PC 키보드와 마우스는 태블릿PC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일부 대학교와 기업은 PC와 모니터 대신 모니터만 설치해서 태블릿PC와 쉽게 연결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노트북과 PC시장은 굳건해 보인다. 하지만 와해될 시작점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MS가 모바일 중심의 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한 것이나 인텔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 진입을 추진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시장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 사용자들의 스마트폰 이용 행태가 글로벌 시장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5~6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인 패블릿을 많이 사용한다. 패블릿은 태블릿PC의 특징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모두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기능과 성능이 뛰어난 패블릿 때문에 태블릿PC의 확산이 늦어지고 있다.

PCㆍ노트북 시장 잠식 눈앞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안드로이드 OS에 편중된 것도 태블릿PC 시장의 확대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안드로이드 기반이 애플 진영에 비해 태블릿PC 전용 앱 수준이 낮아 사용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기관과 금융기관이 MS 윈도우 OS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도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 확산을 막는다.

▲ [더스쿠프 그래픽]
북미시장의 경우 중소형 TV는 상당부분 태블릿PC로 대체됐고, 노트북PC도 태블릿PC로 전환됐다. 태블릿PC의 성능이 높아지고 관련 에코시스템(스마트폰 생태계)이 확산될수록 이런 경향은 앞으로 강해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한국시장에서 태블릿PC의 확산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태블릿PC가 확산되면 PC와 TV는 일부 기능이나 크기에 특화된 형태만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신동형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sdh0604@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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