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⑦

“쉿! 이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마. 당신만 아는 비밀이야.” 누군가 당신의 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믿을 건가 외면할 건가. 필자 같으면 외면할 거다. 귓속말은 ‘진심’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진짜 리더는 귓속말에 흔들리지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왕족이지만 세도정치의 견제로 밑바닥 생활을 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아침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였다. 이때 평소 이하응의 강직한 성품을 흠모하던 남산골의 한 더벅머리 총각은 자신의 쌀을 아껴 매일 대원군댁 대문 앞에 놔두곤 했다. 대원군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더벅머리 총각의 청빈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항상 총각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날만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대원군의 아들 고종이 임금 자리에 오른 것이다.
 
대원군은 섭정을 명분으로 최고 권력자 지위에 올랐다. 대원군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삼정승·6조판서·참판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이들에게 어젯밤까지만 해도 대원군은 별 볼일 없는 난봉꾼에 불과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의 최고의 권력자가 됐다. 대원군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큰소리로 이렇게 명령했다. “여봐라! 남산골의 그 총각을 불러오너라!” 신하들은 의아해했다.

▲ [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떤 보복조치가 떨어질지 몰라 마음 졸이고 있는 가운데 난데없이 남산골의 총각을 불러오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더벅머리 총각이 도착해 대원군 앞에 엎드렸다. 대원군은 긴장하고 있는 총각에게 가까이 올 것을 지시했다. 그는 총각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그러자 총각이 얼굴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대원군 나리,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천하의 대원군 나리께서 그런 해괴망측한 말을 하시다니 실망입니다. 당장 말을 취소하십시요!” 그는 멈추지 않았다. 대원군의 면상에 침을 뱉고 문을 박차며 밖으로 나갔다. 대원군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얼굴에 묻은 침을 닦고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신하들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원군과 어떤 관계이기에 천민 출신인 더벅머리 총각이 대원군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는지 기이할 따름이었다.

다음날 남산골의 더벅머리 총각 집 앞에는 정승· 판서들이 보낸 쌀가마·비단들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대원군이 총각에게 속삭인 말은 이랬다. “여보게, 총각. 오늘 밤은 내가 권력을 잡은 은전으로 자네 모친에게 내 수청을 들게 하는 게 어떨까?” 평생 수절한 과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총각으로선 대원군을 질책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 일화는 귓속말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일단 속삭이는 행위 자체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한다.

TV에서 종종 정치인의 귓속말 장면이 나오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귓속말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사리분별력을 잃을 소지가 많다. 수많은 경영회의에 참석해 보면 공개회의석상에선 정작 난상토론이 벌어질 뿐 제대로 된 ‘결정’은 내려지지 않는다. 실제 의사결정은 쉬는 시간이 내려진다.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면 이를 듣고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대원군의 사례처럼 귓속말로 나눈 이야기로 내린 결정은 그릇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경영진이라면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만 듣고 의사결정을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주식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작전세력은 객장에서 남이 듣게끔 옆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이거 당신만 아는 비밀인데 그 주식 대박 나.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김우일 글로벌대우자원개발 회장 wikimokg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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