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안전 정부보고서 단독입수

국내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시스템에 ‘경고등’이 켜졌다. 더스쿠프가 심상정(정의당) 의원실에 의뢰해 단독입수한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약칭 PSM평가)’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화력발전소 26곳 중 절반 이상인 15곳의 공정안전상태가 ‘Mismanagement(보통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화력발전소의 도급협력업체가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더스쿠프가 PSM평가 보고서를 정밀 분석했다.

■ 공정안전평가 P등급(우수) 발전소 26곳 중 1곳뿐
■ 공정안전 전문가 “발전소라면 S등급(양호)은 받아야”
■ M등급(보통 이하) 비율 2005년 17.64%→2013년 64.28%
■ 도급·협력업체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 국내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뉴시스

2012년 3월 15일 오후 10시57분께. 한국 중부발전 보령화력발전소의 1ㆍ2호기 건물 지하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다음날 오전 10시께야 잡혔다. 전기실과 기계실 내부를 모두 태운 후였다. 50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1호기도 멈췄다. 화재원인은 합선.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로부터 불과 12일이 흐른 3월 27일 오전 10시51분께. 화재가 났던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사고가 터졌다. 5호기 보일러를 수리하던 건설근로자들이 ‘가설물’에서 추락하면서 2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전고용노동청은 그해 4월 보령화력발전본부와 사내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안전조치 위반사항만 273건에 달했다. 화재가 발생한 발전기의 압력용기는 안전검사를 아예 받지 않았다. 사망사고가 우려되는 작업현장에는 안전난간조차 없었다. ‘안전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이 꼭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화력발전소라면 S등급은 받아야”

그런데 여기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보령화력발전소는 정부(고용노동부)가 실시하는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평가(이하 PSM평가)’에서 2005ㆍ2008년 ‘양호하다(S등급)’는 판정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9조의2에 의해 실시되는 ‘PSM평가’는 공정안전자료ㆍ공정위험평가서ㆍ안전운전계획ㆍ비상조치계획 등을 분석한 결과다. 고용노동부가 4년에 1번씩 평가한다. 유해ㆍ위험설비를 보유한 사업장(발전소)은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등급은 P(Progressiveㆍ우수), S(Stagnantㆍ양호), M+(Mismanagement+ㆍ보통), M-(Mismanagement-ㆍ불량)다. 이런 PSM평가에서 두차례나 S등급(양호)을 받은 보령화력발전소가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PSM평가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더스쿠프 그래픽]

충격적인 건 국내 화력발전소의 PSM평가 결과다. 더스쿠프가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 의뢰해 단독입수한 국내 화력발전소 26곳의 ‘PSM평가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P등급을 받은 곳(마지막 평가년도 기준)은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소 1곳(2010년)뿐이었다. S등급은 10곳, M등급 이하는 15곳이었다. 화력발전소의 57.69%가 ‘Mismanagement(공정안전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중 한국동서발전 일산열병합발전소(2012년)ㆍ동해화력발전소(2013년), 한국남동발전 분당복합화력발전소(2013년)의 등급은 ‘M-(불량)’로 밝혀졌다.

심상정 의원은 “이번에 입수한 PSM평가결과 보고서는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가 미흡하다는 걸 잘 보여 준다”며 “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를 방치한다면 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공정안전관리 전문가는 “화력발전소라면 최소 S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M등급 이하의 발전소가 많다는 건 공정안전관리가 부실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건 추세다. PSM평가등급이 해마다 하락하고 있어서다. [※ 참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PSM평가등급은 2006년까지 P, S, M 세개였다. 2007년 ‘M-’가 신설돼 네등급으로 변경됐지만 기존 M등급을 ‘M+’ ‘M-’로 나눈 것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 이에 따라 더스쿠프는 PSM평가등급 추이를 ‘세등급’으로 살펴봤다. 참고할 건 또 있다. PSM평가는 4년에 한 번꼴로 실시된다. 때문에 발전소마다 PSM평가를 받는 시기가 다르다. 이런 이유로 PSM평가가 가장 많이 실시된 2005년, 2009년, 2013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PㆍS등급 줄고, M등급 크게 늘어

PSM평가결과 추이를 보면, 2005년 11.76%에 달했던 P등급 비율은 2009년과 2013년 0%로 떨어졌다. S등급은 2005년 70.58%에서 2013년 35.71%로 반 토막 났다. M등급은 같은 기간 17.64%에서 64.28%로 크게 늘어났다. PㆍS등급 비율은 줄어든 반면 M등급은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법ㆍ제도가 정한 안전기준을 현장에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박두용 한성대(기계시스템공학) 교수는 “법과 제도, 그리고 현장 사이에 존재하는 ‘안전 갭’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 [더스쿠프 그래픽]

한 공정안전관리 전문가는 “PSM을 심사하는 기준치는 기술의 발전, 사회적 요구에 따라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PSM을 이행하는 사업장(발전소)의 안전관리기술 또는 안전의식수준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며 “심사기준은 세걸음씩 가고 있는데, 이행수준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도급ㆍ협력업체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거다. 정부는 최근 PSM 이행상태를 평가할 때 사업장의 ‘도급ㆍ협력업체 안전관리’ 부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참고: 실제로 2012년 PSM의 평가항목별 배점기준이 조금 변경됐다. 자체감사 비중을 줄이는 대신 ‘안전작업허가 및 절차’ ‘도급업체 안전관리’ 비중을 조금 높였다.] M등급 비율이 지난해 껑충 뛰어오른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박두용 교수는 “M등급 비율의 증가를 통해 발전소의 도급업체 관리시스템과 안전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엿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스쿠프가 26개 화력발전소의 PSM평가보고서 228쪽을 분석한 결과, 1068건의 지적이 있었다. 이 가운데 39건이 도급업체의 안전관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건수는 적지만 내용은 심각하다. 12개 발전소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았다. “화력발전소들이 도급협력업체와 공정안전정보, 폭발위험성 관련 자료를 공유하지 않는다. 교육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도급ㆍ협력업체는 ‘안전사각지대’

5개 발전소는 ‘도급업체 근로자들이 독성ㆍ인화성물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잦은 도급업체 변경으로 공정안전관리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현장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도급업체 근로자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협력업체도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8개 발전소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비상사태 시 대피처ㆍ대피방법ㆍ공정안전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를 위한 위험성 교육이나 사후관리시스템이 부실한 발전소는 11곳에 달했다.

심상정 의원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불산누출사고, 현대제철 당진공장 질식사고 등 최근 발생한 산업안전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 도급ㆍ협력업체 근로자들”이라며 “폭발성ㆍ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화력발전소의 도급ㆍ협력업체 관리가 부실한 점은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사업장에선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불산이 누출됐다. 하도급업체 직원이 사망하거나 다쳤다(왼쪽). 심상정 의원은 “PSM평가결과를 보면 도급업체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실제로 최근 발생한 대형사고엔 도급ㆍ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사업장에선 지난해 두차례 불산이 누출됐는데, 두번 모두 하도급업체 직원이 사망했다. 대림산업 여수화학공장에서도 지난해 3월 사일로(석탄저장고) 보수공사 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는데, 대부분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국내 화력발전소가 도급ㆍ협력업체를 위한 공정안전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력발전소가 위험물질을 취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더스쿠프가 단독입수한 ‘화력발전소 유해ㆍ위험물질 리스트’를 보면, 국내 26개 화력발전소는 75종에 달하는 유해ㆍ위험물질을 취급한다. 이 가운덴 수소ㆍ염소ㆍ수산화나트륨ㆍ하이드라진ㆍ치아염소산나트륨ㆍ암모니아 등 폭발이나 가열이 됐을 때 사람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물질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화공안전 전문가는 “민간기업의 화학공장과 비교했을 때 화력발전소가 유해ㆍ위험물질을 덜 사용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화재나 폭발사고가 발생하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고 꼬집었다.

PSM평가결과에 대한 화력발전소 측의 반응은 다양하다. 먼저 ‘발전설비가 오래됐기 때문에 공정안전관리를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변명이다. 심상정 의원실이 정부로부터 입수한 ‘2001~2013년 화력발전소 고장정지현황’을 보자. 1970년대 만들어진 영동화력발전소(한국남동발전)는 13년간 고장정지건수가 8건, 정지기간은 3일에 불과하다. 비슷한 시기에 준공된 울산화력발전소(한국동서발전)는 고장정지건수가 39건, 정지기간은 63일이다. 반면 1999~2007년 건설된 당진화력발전소(한국동서발전)의 고장정지건수와 정지기간은 54건, 41.07일에 달한다. 발전소 수명과 고장정지의 인과관계가 약하다는 얘기다. 심상정 의원은 “공정안전관리 부실의 원인을 ‘발전소 노후화 문제’에서 찾으면 곤란하다”고 전제한 뒤 “진짜 문제는 각 발전소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화력발전소의 고장정지건수는 적고, 정지기간은 길지 않다’는 반박도 내놓는다. 민간화학공장이나 다른 발전소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2001~2013년 화력발전소의 고장정지건수는 연평균 44.5건, 정지기간은 32.3일이다. 2011~2013년 3년간 화력발전소에서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건수는 9건, 과태료는 132건, 시정명령은 501건에 달한다. 국내 화력발전소가 생각만큼 ‘안전지대’에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화공안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관리ㆍ감독이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상정 의원은 “PSM평가결과를 보면 정부 감독이 느슨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보령화력발전소, 의문의 S등급
 

▲ [더스쿠프 그래픽]

정부와 발전소 측은 다른 논리를 편다. ‘정부평가가 깐깐하기 때문에 M등급 비율이 많은 것 아니냐’는 거다. 과연 그럴까.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언급했듯 2012년 3월 보령화력발전소(한국중부발전)에선 큰 사고가 두번이나 터졌다. 그중 한번은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지방노동청이 대대적인 감사를 했고,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발전소는 사고가 터진 지 9개월 만인 2012년 12월 17~18일 PSM평가를 받았는데, 결과는 뜻밖에도 ‘S등급(양호)’이었다. 한국중부발전 관계자는 “사고를 수습한 뒤 PSM평가를 잘 받기 위해 노력했고, 알찬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망재해 발생사업장,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사업장은 ‘M-등급’ 수시선정 대상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대형사고가 터진 발전소의 안전시스템ㆍ안전의식이 불과 몇개월 만에 ‘양호한 수준’에 올라섰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보령화력발전소의 2001~2013년 고장정지건수는 37건, 정지기간은 103.7일에 달한다. 정지기간은 국내 화력발전소 가운데 가장 길다. [※ 참고: 2위는 63.23일 정지된 한국동서발전의 울산화력발전소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 잠재적 부상자 300명이 나온다는 법칙이다. 공정안전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말이다. 특히 유해ㆍ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더욱 그렇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까지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의 깐깐한 점검, 이게 필요할 때다. 공정안전관리는 과할수록 좋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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