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3사의 ‘R&D 경제학’

▲ 대기업 우산 없이도 꾸준히 성장하는 중견기업은 생각보다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누가 ‘대기업 우산’ 아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했던가. 여기 기술력만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중견기업들이 있다. LED 부품업계의 간판 ‘서울반도체’, 자동차 부품업계의 숨은 강자 ‘우리산업’, 화학소재업계의 절대강자 ‘솔브레인’이 그들이다. 이들 3사의 ‘위대한 도전’을 살펴봤다.

1992년 매출이 약 10억원이던 이 기업. 10년 후 매출은 30배로 늘었다. 다시 10년 후엔 또 30배가 증가했다. 매년 3배 이상 성장했다는 얘기다. 현재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섰고, 매출 기준으로 글로벌 업계 5위다. 더구나 부동산 투자, 일감 몰아주기, 문어발식 경영으로 올린 매출이 아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LED 핵심부품만 만들고, 그것만 팔아 기록한 것이다. 대기업 계열사 얘기가 아니다. 올해 자력으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LED 부품생산기업 서울반도체의 얘기다.

대기업들의 각축장으로 알려진 업종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경쟁력으로 탄탄한 실적을 내는 중견기업들이 있다. 물론 생산한 제품이나 부품을 대기업에 공급하는 협력적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경쟁관계가 되기도 한다. 서울반도체가 대표적이다. 

기술력 있으면 대기업에도 큰소리

LED 시장은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주도한다. LED가 기술집약 산업인데다가 반도체와 떼기 어려운 분야라서다. 세계시장 점유율(2011년 기준)을 봐도 일본 니치아(16.7%), 삼성전자, 유럽의 오스람(8.0%), LG이노텍(7.1%)이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서울반도체가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언리미티드’가 LED패키지 매출을 기준으로 선정한 글로벌 LED기업 순위로 따지면 LG이노텍을 제치고 4위가 된다. 한 업종에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을 앞지른 보기 드문 사례다.

대기업 계열사가 모회사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반도체의 경쟁력은 더 크다. 실제로 삼성과 LG는 그룹 계열사가 아닌 서울반도체로부터 휴대전화와 TV에 들어가는 백라이트유닛(BLU)을 공급받는다. 서울반도체가 “오스람ㆍ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이 고객사로, 완제품은 만들지 않고 LED 부품만 생산하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과는 경쟁관계도 협력관계도 아니다”고 조심스러워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울반도체가 을乙의 위치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반도체는 삼성과 LG가 LED 사업을 꾸리면서 자사 인력을 빼가자 ‘부정경쟁방지법’을 근거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서울반도체가 대기업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은 1만1000개에 달하는 특허다. 특허 수만이 아니라 LED 제조 관련 물질, 디자인, 시스템, 공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10월 미국전기전자학회가 서울반도체의 특허경쟁력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14위로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업 초기부터 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결과다. 이런 경쟁력을 발판으로 완제품까지 생산ㆍ판매할 수 있겠지만 서울반도체는 LED패키지 분야만 고집하고 있다. 글로벌 업계 1위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한우물만 파겠다는 게 서울반도체의 전략이다.

대기업 그늘을 뚫고 빛을 내는 중견기업은 또 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전기차 관련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우리산업’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버튼식 브레이크 시스템과 전류 센서는 GM의 모든 차량에 탑재돼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 S’에는 고전압히터를 공급한다. 현대차 K5, 제네시스 등에 장착된 라디에이터 시스템을 납품하는 곳도 우리산업이다. 일본 최고의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덴소는 우리산업의 경쟁사인 동시에 고객사다. 우리산업의 경쟁력 역시 ‘R&D’에서 나온다. 연간 100억원(인건비 포함)을 R&D에 투자하고, 전체 인력(약 300명)의 30%가 연구인력이다.

우리산업 관계자는 “경영진의 R&D 투자에 관한 의지는 회사 전체를 뒤흔들 만큼 강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2000년 초반 사소한 클레임 때문에 미국 델파이에 납품할 물량이 전량 소각처리 된 적이 있다. IMF 이후라 타격이 컸다. 그때 인력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70명에 달하던 R&D 인력은 거의 줄이지 않았다.”

우리산업은 친환경자동차 시장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다. 10여명의 연구원은 자동차부품연구원에 입주해 국책과제 등을 수행하면서 선행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산업 관계자는 “친환경차 시장이 뜨고 내연기관차 시장이 작아지면 기존 부품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가 새로운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다양한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경쟁ㆍ협력 주도할 수 있어야

화학소재 생산업체 솔브레인도 주목할 만하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2차전지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화학소재를 생산하고 있어서다. 솔브레인의 주력제품은 주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재료 분야에 쓰이는 식각액(특정 부위를 깎아낼 수 있도록 부식시키는 용액), 2차전지 전해액(전기를 유동 이온 형태로 전도하는 용액) 등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반도체 재료 식각액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95%로 수년째 부동의 1위다. 2차전지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소재의 시장점유율은 50% 수준이다. 반도체 생산기업은 너나 할 것 없이 솔브레인의 제품을 쓰고 있고, 디스플레이ㆍ2차전지 생산기업은 둘 중 한곳이 솔브레인 제품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제품경쟁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다. 덕분에 지난해 매출은 약 64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02년보다 10배가량 늘었다.

솔브레인의 성장 원동력도 과감하고 적절한 R&D투자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공장부지 4배 규모의 땅을 매입해 LCD 디스플레이용 식각액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수백억원을 투입해 스마트폰 화면 유리를 얇게 가공할 수 있는 화학 소재를 개발했다. 최근에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에 적합한 신규제품 개발에 성공, 알찬 투자결실을 맺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 우산 아래 있어야 먹고살 수 있다.’ 현실적인 말이다. 대기업 협력업체에 한번 등록되면 ‘먹고 살 걱정’을 잠시 접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이후가 문제다. 대기업 물량에 의존할수록 포트폴리오는 단순해진다. 대기업이 가격을 후려쳐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을의 저주’에 빠지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반도체, 우리산업, 솔브레인 3사의 질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 우산을 걷어내도 업력과 기술력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들이 장착한 R&D 실탄, 이젠 국내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중견기업 3사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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