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사 ‘라인의 후유증’

▲ 역대 정부의 ‘인사’는 코드인사가 아닌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사진=뉴시스]
현 정부엔 ‘반박(反朴ㆍ반박근혜 인사)’ 인사가 없다. 대부분 ‘친박(親박)’이거나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세력을 넓히기 위해 ‘스크럼’을 짜거나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활동을 하느냐다. 안 그럴리 있겠는가. 파벌은 정부에도 있다. 등잔 밑이 늘 어두운 법이다.

“220V에 110V 꽂으면 탄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드인사를 문제 삼자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 반박했던 논리다. 대통령과 철학이 맞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다는 걸 표현한 거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운영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며 코드인사를 주문한 바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손발이 따라주지 않으면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역대 어떤 정부도 코드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표현만 ‘고소영 인사’ ‘수첩인사’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코드인사는 보통 ‘친노’ ‘친박’ 혹은 ‘MB맨’이라는 식으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계파가 나눠진다는 얘기다. 충분한 능력이 있고, 특별한 도덕적 흠결이 없는 상태에서 ‘코드’를 공유하는 인사가 대통령을 도와 국정운영을 잘 하면 사실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역대 정부가 이런 코드인사를 추진했음에도 전선이나 콘센트가 타버리는 일이 지속됐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인재’라고 발탁했지만, 비리문제로 얼룩져 낙마하거나 능력이 기대감에 미치지 못해 경질되거나 혹은 인사권자의 국정운영 철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단 거다.

‘인사 대참사’를 빚었다고 비판받는 현 정부의 코드인사는 콘센트뿐만 아니라 집까지 태울 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초대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사 참사는 서막에 불과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차관 내정자 등은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병역비리, 위장전입, 성접대와 무기 거래 브로커 경력 등 다양한 자격미달 조건들이 드러나면서 줄줄이 낙마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박 대통령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인사를 결정하는 특유의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최소한의 검증도 제대로 못해 인사 참사를 부른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을 내치지 않고 그대로 임명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런 코드인사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드러났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막말과 불통으로 비판이 끊이지 않던 인물이다. 당연히 ‘대통령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윤 전 대변인을 앉히는 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한번 쓴 사람은 계속 쓴다’며 청와대 대변인에 앉혔다. 결과는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순방하던 중 여자 인턴사원 성추행 파문을 일으키며 경질됐다. 논란이 있는 인사를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썼다가 제대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이후 ‘내 사람’을 앉힌 데 대한 후유증은 줄줄이 이어졌다. 윗사람 눈치만 보는 탓에 ‘무소신의 극치’라는 딱지와 함께 세금탈루 의혹까지 있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올해 1월 카드사의 고객정보유출 사건 이후 국민 여론이 책임자 문책으로 이어지자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고 말해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모래 속의 진주’라며 박 대통령이 극찬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은 올해 2월초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 2차 피해는 어민”이라는 발언을 해 결국 해임됐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인사는 ‘영포회’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강부자(강남 부자)’ 등 철저한 개인인맥 중심의 인사와 ‘회전문’ ‘보은’ 인사로 유명하다. 자질은 어땠을까. 당시 박우순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MB정부의 인사청문 대상자들 중 82%가 세금탈루에서부터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 병역기피, 논문표절까지 ‘5대 의혹’에 해당하는 의혹들을 받았다. 당시 ‘범죄자들만 골라서 장관자리에 앉히려 하느냐’는 말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MB, 측근 인사 폐해 종합판

당연히 인사 실패로 이어졌다. 정권 초기였던 2008년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한 박은경 환경부장관 내정자가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아니다”고 했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2009년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김석기 경찰청장이 각각 스폰서 의혹과 용산참사 책임 등을 이유로 낙마했다. 2010년엔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내정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내정자가 낙마했다. 2011년엔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낙마했다.

MB의 코드인사는 등용에만 그친 게 아니다. 정권 말기인 지난해 1월에는 여야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에도 설 특별사면을 강행해 부정축제, 금품선거, 정치공작 등의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장광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55명을 사면했다. 한편 MB의 경제 멘토로 통하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언론특보 역할을 하며 MB의 당선을 도왔던 김인규 전 한국방송 사장 등 측근 129명에겐 무더기로 훈장을 수여했다.

이런 MB식 인사가 아무 문제없을 리 없었다. MB정권 당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비정상적인 권력의 집중으로 인해 ‘왕차관’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박영준 전 차관은 MB 퇴임 후 원전비리에 연루돼 최근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또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국정원장까지 맡았던 원세훈 전 원장 역시 MB 퇴임 후 국정원 조직을 이용한 대선 개입 혐의와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받고 공사 인허가를 도와준 혐의를 받았다. 대선 개입 혐의는 벗었지만 금품을 받은 혐의는 유지돼 현재 구속상태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2012년 7월 미결수로 구금됐다가 형이 확정됐지만 지난해 9월 구금 중에 형량을 다 채워 석방됐다. 

반면 참여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MB정부처럼 인사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비리에 연루된 인사는 대부분 골라내서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와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가 임명절차가 잘못되거나 인수위 참여인사라는 이유로 낙마한 게 전부다. 5년을 통틀어서다.

다만 코드인사를 대놓고 주장했지만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 인사를 앉혀 인사에 실패한 유형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민경제를 살리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중과는 달리 재벌 이익을 더 많이 대변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참여정부 말기에 검찰총장에 임명됐음에도 MB정부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그 대표적인 예다.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 인사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사진=뉴시스]
인사에는 개인감정이 안 섞일 수 없다. 또 마음이 잘 맞고, 능력까지 갖춘 인재가 등용되면 인사권자의 든든한 언덕이 되기도 한다. 인사에서 단순히 친분에 의한 임명이라고 반대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다만 이런  인사가 실패로 이어진다면 이후의 후유증이 너무 크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와 MB정부의 지지율 변화를 보면 정권 초기 인사 실패가 나타났을 때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 다. 초기 인사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국민의 지지 위에 국정운영을 하려면 능력과 자질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이창원 한성대(행정학) 교수는 “미국의 경우 연방수사국 신원조회, 세무조사, 공직자 윤리위원회를 통한 개인신상을 엄격한 인사청문 시스템을 통해 검증한다”며 “때문에 같은 낙하산 인사라 하더라도 반발이 적다”고 설명했다.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사 실패 막으려면 사전 검증해야

위에서 보듯 고위공직자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주요 원인들은 대부분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비리를 저질렀다든지 하는 도덕적 흠결에 대한 것들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런 인사만 피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는 거다. 이창원 교수는 “그러려면 후보자를 추천하고 선임하는 인사 주체가 공직을 전리품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 여겨야 한다”며 “그래야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골라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거다.

조선 숙종 때 신하들이 마땅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숙종은 이렇게 말했다. “태조(이성계)께서는 망해가는 나라(고려)에서 인재를 뽑아 조선을 창업했다.” 알고 보면 숨은 인재는 많다는 얘기다. 근데 왜 요즘 정치판에선 인재가 보이지 않을까. 철학은 없고 코드만 있어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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